아이, 가져야 할까?
― 강혁진
“아이, 가져야 할까?”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혼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매년 방콕과 도쿄를 찾았고, 단둘이 하는 여행에서 결혼의 기쁨을 발견했다. 2세를 갖는 일은 두 사람이 해야 하는 많은 일 중 후순위였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와 나라가 많았고, 매년 가야 할 도시와 나라가 있었다.
주변에서 “아이는?”이라고 물으면 으레 “내년에”라고 답하곤 했다. 새해가 되어도 ‘내년에’라는 쉽고 간단한 답을 내세우며 아이 갖는 것을 미뤄왔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더 이상 여행을 다닐 수 없었다. 여행은커녕 사람들과의 만남도 힘들어졌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고민하게 된 데에는 우리의 생물학적 나이도 한몫했다. 당시 아내는 30대 후반, 나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부인과에 가보면 우리 정도는 그리 나이가 많은 부부는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이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이를 가지기에 이른 나이도 아니었다.
아이를 갖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하는 것’부터 난도가 높았다. ‘왜 아이를 가져야 하지?’라는 의문부터 해결해야 했다. 정작 나는 ‘과연 한 생명을 내 마음대로 시작해도 될까?’라는 근본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내 한 몸, 내 인생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누군가를 낳아 잘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아이를 가진 건 아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논리적이고 합당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이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것 같았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을 함께 나누던 아내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결국, 아내가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이를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떤 얼굴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를 우리의 아이를 갖기로 했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긴 했다.
2021년 7월, 드디어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났다. 임신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자신의 육아 경험을 떠올리며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밤잠이 부족할 것이다, 네 인생은 이제 끝이다, 아들이라니 넌 이제 망했다 등 각양각색의 조언과 경고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법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오히려 궁금해졌다. 어느 정도기에 그렇게들 말하는 건지.
아이를 키운 지 이제 20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처가의 도움을 받아 육아를 함께 하고 있기도 하고, 효자라고 부를 만큼 아이가 순하기도 한 덕이다. 그럼에도 체력적인 어려움이나 시간의 부족함을 느끼기도 한다. 대신 아이를 키우며 만나는 행복의 강도와 빈도가 생각지도 못하게 크고 높다. 쌍둥이를 낳은 지인이 해준 말이 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느꼈던 행복의 최대치가 100이라면 아이를 낳은 후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는 1,200 아니 20,000 정도는 될 거라고.
그 말의 진가를 새삼 느끼고 있다. 아이의 깔깔대는 웃음이, 나의 몸에 닿는 작은 손짓이, 자면서 내는 새근거리는 소리가 내가 가진 행복이라는 그릇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주고 있음을 매일 느낀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아, 아들 보고 싶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럴 때면 핸드폰 배경화면에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거나 사진첩을 열어 찍어둔 사진들을 본다. 이만큼 나에게 큰 웃음과 충만한 행복감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그 때문인지 ‘과연 내가 한 생명을 내 마음대로 시작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다. 이제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 생명을 소중히 키워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숙제가 앞선 질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 숙제를 푸는 것이 앞선 질문에 답하지 못한 내가 해야 할 최선의 행동이자 의무라 믿는다. 질문에 답하지 못한 부채감이 숙제에 대한 책임감을 키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은 숙제다. 앞으로도 매일 기쁜 마음으로 숙제를 풀 듯이 아이를 대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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