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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1999년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유체 이탈, 도플갱어, 예지몽, 인체자연발화, 공중 부양 등등 불가사의한 능력이나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정기 구독하던 소년잡지에 매달 그런 기사가 한 꼭지는 실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도 역술이나 점, 단학 따위가 판을 치고 있었다. 한강 다리가 무너지거나 IMF 사태로 대량 실직이 일어나는 등 예측 불허의 현실 속에서 다들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 때라 그런 비과학적인 말들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런 말들에만 솔깃해서였겠지만,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예언들은 죄다 비관적이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었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그의 대표적인 예언시는 그해가 다가오면서 점점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예언이 빗나가면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2012년 ‘춤추는 말의 숫자에 달린 원이 아홉 개가 되는 때, 고요한 아침으로부터 종말이 올 것’이라는 그의 예언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 예언을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가 십억 회가 넘어가면 지구 종말이 온다는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는데, 예언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이현령비현령의 사후 추정이라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는 없을 것이다.
말춤이라서 말세인가?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다. 소설가로서 나는 예언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이 언어여야만 한다는 게 더 흥미롭다. 어떤 예언가가 환상 속에서 미래의 뭔가를 봤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지식 수준에 맞춰 언어로 표현해야만 한다. 실제로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모를까, 그걸 언어로 변환한 이상 그 진의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번역까지 된다면 왜곡은 피할 길이 없다. 결국 예언은 그 형식 때문에 빗나갈 가능성이 많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잠자는 예언가 에드거 케이시는 독특하다. 그는 예언할 때면 마치 잠든 것처럼 누운 채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 마음의 눈 앞에 펼쳐진 책을 그대로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예언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지각변동에 대한 예언을 많이 남겼는데, 그중에서 지진으로 미국 서부 해안과 일본열도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예언은 굳이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지 않고 지질학 책만 읽어도 알 수 있다. 그와 우리 사이에는 남들 눈에도 보이는 책을 읽으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언이 언어의 형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유명한 예언가로는 권태훈이 있다. 단학의 스승이었던 그는 1999년 남북한이 통일되면서 백인 중심의 서구 문명이 끝나고 한국, 인도, 중국 등 소위 ‘황인종’이 이끄는 새로운 문명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황백전환기’에 대한 예언이었다. 예언의 형식이 언어이므로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에 대한 예언이 이처럼 달라진다. 그래서 백인 예언가에게는 지구 종말의 해로 여겨졌던 1999년이 한국의 예언가에게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해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예언가들이 저마다의 성장 배경과 지적 능력에 따라 1999년을 해석했듯이 우리도 각자만의 1999년을 경험했다. 내게도 1999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그해 여름, 외삼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나는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늘 가던 종교 코너에서 명상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제목이 붙은 책들을 들춰보는데, 누군가 넣어둔 책갈피처럼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펼쳐 보니 ‘Welcome! THE MOMENT in Seoul Center’라는 제목과 함께 “신과 채널링하는 줄리아가 7월 서울을 방문합니다. 당신의 인생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세요. 신이 직접 대답합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의 전화번호로 문의하세요”라고 인쇄돼 있었다.
그때의 일을 이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그해 여름부터 시작된 한 여학생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한 학기 내내 짝사랑하던 그녀에게 마침내 내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그녀는 고백을 받아들이는 대신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때가 2학년 1학기 종강 파티가 끝난 밤이었고, 그 쪽지를 본 게 그다음 주였다. 나는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여학생, 그러니까 지민을 만나 교보문고에서 나왔다. 시간이 흘러 먼 훗날이 되면 씨랜드 화재 사고와 영화 〈매트릭스〉와 신이 내놓은 몇 가지 대답과 기나긴 사랑의 시작으로 기억될 여름이 될 테지만, 그때는 여느 여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여름이었다.
외삼촌이 근무하던 출판사는 세종문화회관 뒤쪽 골목에 있었다. 오래전, 유명 입시학원이 있던 건물이라고 들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기억할 만한 게 없는, 평범한 건물의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에폭시로 마감한 복도를 지나 출판사 간판이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외삼촌이 일하는 작은 방이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양팔에 토시를 끼고 원고를 교정하는 외삼촌의 모습은 한쪽 눈에 루페를 끼고 시계를 고치는 장인처럼 보였다. 우리는 외삼촌이 권하는 대로 책상 앞 탁자에 앉았다.
“요새 학교는 어떻니?”
노란색 플라스틱 쟁반에서 믹스커피가 든 잔을 내려놓으며 외삼촌이 말했다. 옆에 앉은 지민과 내가 무슨 사이인지 궁금하지만 참는 눈치였다.
“지난 금요일에 종강했어요.”
“벌써 종강할 때인가? 시간 참 잘 가는구나. 여름방학 계획은 세웠어?”
“글쎄요. 지금 도서관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는 거 말고 별다른 계획은 없어요.”
“같은 과 동기생이라고 했나요? 이름이? 아, 지민씨는 무슨 계획이 있나요?
나는 그녀가 “조카분은 저랑 따로 할 일이 있어요”라고 말할까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행히 지민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대답을 했다. 둘이 있을 때와 달리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게 지민의 성격이었다.
“대학생의 여름방학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인데.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보낸다면 금상첨화겠고. 참 보기가……”
외삼촌이 뭔가 더 말하려는 걸 내가 얼른 막았다. 알든 모르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건 나의 성격이었다.
“이 친구가 궁금해하는 게 있는데 외삼촌은 아실 것 같아 제가 데리고 왔어요.”
“궁금한 게 뭔가요?”
외삼촌은 커피를 마셨다. 나도 커피를 마셨다. 그 맛은 어제 마신 것처럼 입안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커피를 입에 머금고 나는 지민에게 고갯짓을 했다.
“얘가 그러던데 선생님은 해방 뒤에 출간된 책은 다 읽지는 못했어도 한 번씩 만져보기는 하셨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찾는 책도 만져보셨나 싶어서요.”
지민이 말했다.
“제목이 뭐예요?”
“‘재와 먼지’라고 하고요. 작가 이름은 지영현이에요.”
외삼촌은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이미 충분히 섞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옆에서 보면 두꺼운 알이 하얗게 보이는 안경을 쓴 외삼촌이, 아직은 사십대였던 외삼촌이, 평생 책만 읽은 가난뱅이 책벌레 외삼촌이, 꼼꼼한 교열자로 유명했으나 인터넷과 검색기가 교열을 대체하면서 20세기와 함께 쓸모가 사라진 외삼촌이 자기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1974년인가 75년에 제1회 『여성현대』 장편소설 현상 공모에 당선된 작품, 맞죠?”
“맞을 거예요. 공모전에 뽑혀서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럼 그 소설이 맞겠네. 그 소설이 왜 궁금한가요?”
“이 친구 엄마가 쓴 소설이래요. 그런데 집에 책이 한 권도 없는데다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어서 읽어보질 못했다네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외삼촌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도 할 거야. 그 책은 출간되자마자 판매금지를 당하면서 서점에서 사라졌거든.”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집에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왜 판매금지를 당한 거죠?”
지민이 물었다.
“그 소설의 기본적인 발상이 1972년 10월이 시간의 끝이라는 것이었거든요. 10월유신에 대해서는 학생도 배웠겠지요? 박정희가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유신헌법을 만든 일 말이에요. 그때 대학교가 모두 휴교에 들어갔는데,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소설에 녹아들었던 것 같아요. 나는 출판문화에 관심이 많아 판금된 책이라면 천금을 줘서라도 구해 읽었어요. 그 책도 출판사에 문의해서 손에 넣었죠. 첫 문장이 아직도 기억나요. ‘1972년 10월을 우리는 시간의 끝이라고 불렀다.’ 그 말이 검열관의 비위에 거슬렸을 수도 있어요.”
“그 한 문장으로 판매금지가 결정될 수 있단 말인가요?”
“군부가 판매금지를 시킬 때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요. 그게 독재정권이 하는 일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해요. 정권이 싫어하는 게 뭔지를. 그렇게 독재정권하의 사람들은 스스로 내적 검열관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탓에 판매금지된 책을 구해 읽어보면 가끔 어리둥절할 때가 있어요. 『재와 먼지』가 대표적인 경우죠. 지민씨라고 했나요? 지민씨 엄마는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에요. 요즘으로 치자면 『재와 먼지』는 SF나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시간여행 혹은 시간의 종말을 다룬 소설이었거든요. 당시로서는 꽤 특이한 소설이라 줄거리가 다 기억이 납니다.”
외삼촌이 들려주는 줄거리를 듣고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소설에는 미래가 없는 한 연인이 등장한다. 어느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서로 공유하는 시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시간의 종말이란 세계의 종말은 아니고, 둘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을 뜻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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