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늘날 한국의 양적으로 확대된 직업들과 복잡한 사회구조의 중심에는 수 세기 동안 한반도를 지배하다가 20세기를 전후하여 극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던 위계 서열의 원리와 패턴이 강한 울림을 남기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경제 발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어왔다. 이들은 산업화가 근대사회의 결정적인 기준점이며 근대 한국의 사회 계층화는 주로 계급 차이에 따라 이뤄진다는 확고한 관념을 전제하고 있다. 이 접근법이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사회의 변동을 평가하기 위한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을 간과하고 있다. 조선왕조1392~1910의 사회 계층화를 지배한 기준인 사회 신분이 그것이다. 이것을 결정한 것은 출생이고, 두드러지게 한 것은 관료제였다. 조선의 관료제는 실제에 있어 단순히 국가를 상징하는 것을 넘어 세습적인 사회 신분을 강화하고 제련하는 현장이었다. 이 힘으로 정치권력을 독점하여 지배력을 보호했던 견고한 귀족의 이익에 기여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할 때 한국 근대 개막기 관료제의 역할에 대해 연구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반에도 관료제는 계속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관료제의 발전은 조선 시대와는 반대로 귀족 지배를 강화하는 대신 오히려 약화시켰다. 그러나 이 변화는 한편으로 전근대 질서에 대한 통념 속에서 은폐되어 있던 사람들인 조선왕조의 제2 신분집단을 드러나게 하고 부상시키는 심오한 효과를 가져왔다. 정부와 민간 사회에서 귀족과 평민 사이의 세습적, 폐쇄적 층위를 차지하고 있던 제2 신분집단은 다음과 같은 부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역관譯官, 율관律官, 의관醫官, 산관算官 등 중인, 지방 관아의 일상 사무를 담당한 향리, 첩의 자식 및 후손으로서 거대한 인구로 인해 잠재적 사회 세력이 된 서얼, 서북인, 무반은 가계에 기반하여 그들을 영구적으로 귀족의 아랫자리로 보낸 사회 기강과 조직 속에 관료제의 위계에서나 사회적 위계에서 수백 년간 종속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그러나 19세기 말~20세기 초, 비중화非中華 세계의 침입에서 시작해서 이후 1910~1945년까지 일제 식민화에 의해 생겨난 정치적 혼란과 지적, 제도적 중요도의 재구조화로 인해 제2 신분집단 구성원이 새로운 관료제 질서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들은 재능, 재산, 정치적 혼란, 시대에 대한 예리한 인식 등에 의존하여 신분상승의 경로를 밟아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근대 시기의 성취와 능력이라는 기반에 의존했다. 이로 인해 관료적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의 근본적 변화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다. 결국 지배 엘리트로서 새롭게 입지를 구축하여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타 분야, 즉 정치, 교육, 사업, 나아가 문화, 학문, 예술의 영역에까지 진입하고, 종종 그것을 지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발전이 가지는 함의 속에는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주제들이 다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사회 위계의 문제이다.
어떤 문명을 이해하거나 인류 자체의 집단적 경험을 조명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회 위계를 중심에 두는 것은 거기에 불평등의 처리 방식, 특권에 접근하는 길, 주된 윤리-종교 체계의 영향력, 공동체의 질서, 사람들의 상호작용 등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윤리적 관심이 포괄적으로 걸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위계는 사회학적 스케치로서 특정 시대 특정 문명의 성격, 가치체계,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기본적인 특징들을 드러낸다. 사회 위계를 시간 경과에 따라 검토하는 것은 근본적인 변화를 조망할 수 있는 강력한 렌즈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현저하게 다른 환경으로 전환 중인 사회―예컨대 한국의 19세기 말 제국주의 침략기나 일본 식민지배 시기―가 직면하는 핵심 사안은 특권과 기회불평등의 안착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반드시 급작스런 사회혁명으로 극적변동이 일어나지는 않은 곳이라 하더라도 획기적인 역사적 전환기에는 그러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계급 형성과 갈등에서 역사의 원동력을 찾은 마르크스 자신부터 시작해서 근대 세계의 징후를 해석한 많은 사람들이 사회계층화의 역학에 대해 언급했다. 막스 베버의 위대한 공헌은 물질적 인과관계를 넘어서서 사회적 행위와 지배가 지위집단 등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범주화와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한 그의 고집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우월성을 이용하여 불균형한 영향력, 심지어 강압적인 권력까지 행사하는 집단인 엘리트들의 복잡한 순환이라는 사회발전의 과정과 그 파장에 대해 상세히 논의했다. 여기에 제2 신분집단의 중요성이 있다. 그들의 전근대적 기원과 발전은 조선 시대 사회적 위계의 작동을 요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후 이들의 엘리트로의 성장은 20세기 초 한국 사회구조의 전면적이고 심오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상의 것들이 한국의 근대적 전환의 성격을 구체화하고 결정했다.
한국 근대와 전근대의 제2 신분집단
근대성의 문제는 가까운 과거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있어 핵심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 탐구 작업은 세계의 서로 다른 지역에 대해 각기 다른 형태를 띤다. 비록 유럽의 역사가들이 유럽의 근대적 감각의 발달 과정에서 비서구 문명과 접촉한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연구는 여전히 유럽 내부 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의 다른 지역의 학자들, 특히 식민지 팽창의 희생물이 된 사회의 학자들은 근대성에 대해 고찰할 때 이러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외부 충격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설명해야만 했다. 폴 코헨Paul Cohen이 지적했듯이, 적어도 미국의 중국사 학자들에게 이러한 학문적 불균형은 내재적 과정의 이해 대신에 외부 충격을 강조하고 중국의 최근 역사에서 중대한 계기가 된 변화를 ‘근대화’ 패러다임 안으로 몰아넣어버리는 경향을 야기했다. ‘근대화’ 패러다임이란 서양의 사례에서 도출된 적절한 발전이라는 준거에 비추어 중국사의 발전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을 낳은 문화적, 지적 편향들이 ‘근대성’이라는 용어 자체를 탑재했기 때문에 코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 개념이 가치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지나친 것 같다. 충격-반응, 근대-전통, 선진-후진이라는 이분법이 실제로 너무 안이하게 쓰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까운 과거에 여러 문명에서 대체로 외부 세력이나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서 포괄적이고 전례 없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근대’로 귀결된 역사적 시대를 설명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것은 근대성의 특성을 어떤 종류의 후진적인 ‘전통’으로부터 일거에 탈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난 2세기간 전환의 정도와 형태가 가진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서구식 근대화 개념에 대한 비호감이 이해는 가지만, 그로 인해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포기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두루 적용되는 최근의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지도 않고, 또한 한국의 경험이 이 지구적 과정 속에서 어떻게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지도 말하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보편사로 귀결될 수 있다. 근대성과 한국적 근대성 양자의 역사성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근대성 개념으로 보편주의 패러다임의 함정을 피하면서도 이러한 과제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 연구도 (관례를 따라) 한국에서 근대성의 탄생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로 대표되는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의 위협에 대한 제도적 대응과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여 정부의 책임 영역이 갑작스럽게 증가하고 그것이 관료기구의 규모 및 복잡성을 급속하고도 실질적으로 증대시키는 폭발을 야기한 결과, 국가의 형태가 기능에 맞게 변화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이익을 강화하는 지배구조가 모식되는 과정에서도 지속되어, 경찰과 같은 광범위한 강압적 메커니즘에 의해 뒷받침되는 전례 없는 국가의 확장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구조 변형은 관료 선발과 승진의 오랜 패턴을 빠르고 극적으로 뒤엎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록 이 과정은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요인에 따라 진행되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국인 중에서 새로운 집단이 관료 조직의 상층부로 진입하는 것에 친화적이었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는 정부 기관의 테두리 밖으로 확산되어 사회 위계의 재편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재편된 사회 위계가 경제, 문화 및 사회적 행위로부터 주요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또 그것을 자극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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