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사노라면 굳이 살아지니라.
삶은 구슬과 같다.
금간 구슬도 고요히 아름다운 법이다.
꿰어두어라.
나는 할머니들 곁에 앉아 그것을 배웠다.
동화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면서
이불 속에 누워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불깃을 끌어 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60년대 시골 마을 집집에는 농로에 물 흐르듯
무명옷차림의 이야기가 흘렀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생각난다.
그 시절을 어떻게 어우러져 사셨을까?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지금껏 기억에 남은 이야기들 중심으로 글을 꿰었다.
대부분 비온 뒤 물꼬 터지듯 편편 기억들을 받아 적었으나 그중 너댓 개 구슬은 많이 부서져 온전치 못했다. 주변 어른들께서 몇몇 조각난 이야기를 이어붙여 주셨다. 그도저도 안 되면 내 속의 여자아이와 함께 안개 낀 기억을 더듬으며, 그날들의 향기나 슬픔을 주워 엮기도 했다.
그 옛날 마실꾼 할머니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
달 같은 할머니
할무니 애렜을 때도 달이 저라고 컸어요?
아먼 시방하고 똑 같었재
할무니는 추석에 뭐 했어요?
우리 아바님 지달렸재
할무니도 아부지 있어요?
그라재 아배 없이 난 사람이 있다냐
으디서 지다렸어요?
동네 앞에 사에이치 비석 있지야 전에는 거그 큰 소낭구가 있었는디 거그서 지달렷재
할무니 혼자요?
아니 우리 성허고 동상허고 항꾼에 지달리재 아바님은 저녁에 해가 지우러야 오싱께 혼자 지달리면 무서와 그때는 할무니도 똑 너 같이 생겠어야
할무니가 나랑 똑같었어요?
그라재 할매도 너같이 열 살일 적 있었고 열한 살일 적도 있었니라
와~ 최고 이상허네
이상헌 거이 아니라 사람은 다 애기로 나서 할아부지 할무니가 되는 거시여
그럼 나도 나아중에 할무니가 돼요?
안 그라믄 좋재 좀도 좋재 그란디 누구나 다 그리 된단다 악아
할무니는 추석날 되먼 머 했어요?
우리 아바님은 먼 데 장사 다니신께 집이를 잘 못 오세 글다가 추석 되먼 우리 댕기도 끊고 저구릿감도 끊어서 가꼬 오셌재 우리 아바님이 사온 국사로 엄니가 밤새와 추석빔 맹글어 주먼 그 옷 입고 달맞이 허고 강강술래도 뛰고 그랬재
그때는 할무니도 여기 팔뚝 살이 흘렁흘렁 안 했어요? 다리도요?
아이고 이노무 새깽이 그때는 할매 살도 희고 탄탄했재 너마니로
진짜로 할무니가 열 살일 때가 있었다고?
아먼 진짜재
할무니 그란디 왜 달은 안 늘그고 계속 그 때랑 지금이랑 똑 같어요?
금메마다 달은 안 늘근디 어찌 사람은 이라고 못 쓰게 되끄나이
할무니 못 쓰게 안 되얐어요 달 같이 이뻐요 참말로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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