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왜 사회적 자유주의인가?
나는 이 책에서 사회적 자유주의를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적 자유주의란 인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이지만, 인간의 자유를 인간의 사회성에 기초한 자유, 즉 사회적 자유로 본다는 점에서 사회적 자유주의이다. 여기서 사회성이란 인간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에서 자기를 성찰할 줄 아는 특성으로서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개인들이 일체감을 형성하고 서로를 보완하는 상호협력을 수행하면서 결국 각자의 한계를 극복한다. 따라서 사회적 자유란 개인의 자유라는 면에서 외적 강제나 내적 강제 없는 자아실현을 의미하면서도 타인과의 일체감과 상보성을 통해 실현되는 ‘협력적 자아실현’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자유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보존본능과 이로 인한 자기중심적 욕구에 기초한 개인적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설정한 자기중심적 자유주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는 모순적이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에 기초한 개인적 자유는 외부로부터 아무런 방해 없는 욕구 충족을 의미하지만, 타인과의 대립과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 실현은 타인의 자유 실현을 침해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중심적 자유주의는 개인적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도 항상 이를 제한해야 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기중심성에 기초한 지금까지의 자유주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는 제한적 자유주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제한된 자유 역시 경쟁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는 점에서 경쟁의 승자와 패자가 나누어지듯 결국 자기중심적 자유주의는 소수의 자유와 대다수의 부자유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 결과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은 재산, 권력, 명예를 독점하며 자신의 목표와 선호를 실현할 뿐만 아니라, 우월감에 빠져 자신보다 뒤처진 사람들을 무시하고, 반대로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생존 위기는 물론 열등감에 허덕이며 삶의 의미마저 지키기 어렵게 된다. 이에 반해 사회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성에 기초한 자유는 일체감과 상보성을 통한 타인과의 협력을 전제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자유 실현은 타인의 자유 실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자유 실현이 필수적 조건이 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적 자유주의는 자기중심적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기중심적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정치이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사회적 자유주의 앞에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과거에 사회적 자유주의라고 지칭된 자유주의의 한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비록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강조하지만,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와 ‘사회적 자유’ 개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에,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용어상의 혼동이 생기지 않을 경우, “새로운”이란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가히 경쟁 사회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거의 모든 사회적 영역이 경쟁으로 구조화되었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영역에서 수행되는 개인적 활동은 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얻으면 남은 잃고, 내가 이기면 남은 패배하는 제로섬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이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곧바로 내신 성적을 위한, 특목고에 가기 위한, 그리고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으로 탈바꿈하면서 나의 모든 노력은 타인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노력으로 변질된다. 이는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A+를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상대 평갈 상황에서는 단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학을 마치면, 취업을 위해 경쟁하고, 사업가가 되어도 경쟁하고, 자영업자가 되어도 경쟁하고, 생산자든 판매자든 소비자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단지 열심히 노력한다기보다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경쟁한다. 정치적 영역도 마찬가지다. 승자독식의 구조하에서 모든 정치인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경쟁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여가나 문화생활에서도 경쟁한다. 낚시가 취미인 사람은 단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경쟁하고, 노래방에서조차 노래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높은 점수를 얻으려 경쟁한다. 당연히 모든 스포츠는 경기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가 갈리지만,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 분야에서도 등수를 매기는 대회가 넘쳐 난다. 이런 점은 한가하게 TV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은 흔히 시합과 경연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가 교육, 경제, 정치, 문화적 영역에 참여한다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행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경쟁으로 강조점이 이동한다. 더구나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지는 제로섬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흔히 경쟁적 상황이 펼쳐진다. 남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가족끼리도 친구끼리도 동료끼리도 서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할까? 물론 경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경쟁은 사람들에게 자기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고, 그만큼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위해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승자는 우월감을 만끽하고 패자는 열등감에 시달리며,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경쟁이 소수의 자유와 대다수의 부자유를 낳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경쟁 일변도의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정치, 경제, 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 경쟁을 제한하거나 경쟁이 낳은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수많은 정치적 시도가 등장했다. 하지만 경쟁의 제한은 이것이 자유의 침해라는 비판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경쟁이 낳은 폐해를 최소화한다 하더라도 경쟁 관계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는 항상 사후적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그 결과 경쟁을 제한하려는 정치적 시도 자체가 오히려 제한된다든지, 경쟁의 폐해가 최소화될 수 있기에 오히려 경쟁이 정당화되는 역설적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경쟁의 제한이나 사후적 조치만이 아니라, 경쟁 영역 자체를 축소하면서 이를 협력적으로 재구조화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