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
‘왜’는 학문의 존재 이유다. 학자 집단인 우리는 ‘왜’를 풀기 위해 존재한다. 탐구가 우리의 임무이자 사명이다. 사회현상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나는 사회과학자로 평생 살았고 전문학술서 세 권을 출판했다. 세 권 모두 특정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 책은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이 책은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탐구이고, 그 해답으로 ‘서울대 10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여기에는 꽤 긴 논변과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책을 읽어 주시길 당부드린다.
내가 ‘교육계’라는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나의 책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을 출판한 이후다. 이는 한국 지식계와 대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책으로 식자층에는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유학파의 헤게모니를 대학의 글로벌 위계 속에서 파헤친 이 책은 한국사회학회 올해의 책,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경향신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 책의 출판 이후 나는 여러 학문단체와 교육단체의 초청으로 대학/학문 개혁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지배받는 지배자’는 부르디외의 계층이론에서 지식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지배층은 경제자본을 지배하는 자본가 계층과 문화자본을 지배하는 지식인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를 포스트식민/트랜스내셔널 상황에서 비틀어 미국 유학파 지식인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명명했다. 한국 대학과 학계를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여러 대학/학술 관련 단체와 더불어 현 대학/학문 정책에 대해 비판했지만 어떤 ‘유의미한 변화’도 없었다. 그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 대학, 학문, 교육의 모순을 비판했지만 한국 교육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 교육의 현실을 비판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미국 박사학위가 없으면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자리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한국 대학과 학계는 여전히 학벌 중심의 네트워크가 판치고 있다. 곧 보편의 이윤이 아니라 특수의 이윤이 지배한다.
교수임용 과정에서 영어 논문 출판 중심의 ‘평가권력의 독점’ 때문에 한국 박사, 프랑스 박사, 독일 박사, 일본 박사 등이 대학에서 자리를 잡기가 극도로 어렵다. 학계에 진입하자마자 엄청난 상징 폭력과 견디기 힘든 모욕을 경험한다. ‘실력주의의 외피’를 쓴 평가가 특정 언어영어로 출판되어야 한다는 것은 구조적 불공정과 불평등을 뜻한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한국 대학과 학계를 상대로 피지배 지식인들의 ‘집단적 투쟁’이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이 나름 사회활동도 하고 언론에 기고도 하고 논문을 출판하여 대학/학문 개혁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자 하였다. 수년 동안 ‘교육계라는 바닥’에 들어가서 어떤 인물들이 어떤 정책과 철학을 가지고 어떤 실천을 하는지를 참여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인류학적 접근에서 내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한국의 대학과 교육개혁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개혁 의지가 없다. 이너서클 사람들은 지배 지식인 계층이다. 개혁의 필요성과 다급함을 못 느낀다. 또한 어떻게 개혁할지 방법도 이론도 없다. 이런 문제들은 교육학에서도 사회학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부르디외, 듀이, 비고츠키, 애플 등의 학자들 책을 읽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육의 모순에 대해 정말 깊이 고민하고 공부해야만 그 답이 나온다. 끝까지 파고들어서 연구해야만 답이 나온다.
나의 세부전공이 교육사회학과 지식사회학이지만 ‘교육계’라는 바닥은 나에게 낯선 곳이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교육계의 외부에 위치해 있었고 외부자적 시선을 유지해 왔다. 교육계라는 바닥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교육계는 관료 조직, 전문가 조직, 시민운동 조직 등에 속한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이 나름대로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여러 인맥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곳이다. 수십 년간 교육계에서 입지를 다진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협력해 왔다. 다른 어떤 사회와 마찬가지로 ‘원수’도 많고 ‘친구’도 많은 곳이다. 교육계에 원수도 없고 친구도 없는 나는 인류학적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인류학을 한다는 것은 원수는 만들지 않고 친구를 만드는 데 그 방법론적 특징이 있다. 그 집단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인류학의 목표라면 친구를 만들지 않고서 내부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아웃사이더에서 인사이더로 변하는 과정이 인류학 하기의 과정이다. 나의 ‘교육계에 대한 인류학’은 학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도대체 교육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라는 실천적인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교육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교육계 인사들인데 이들은 한국 교육의 심각한 문제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다. 교육계 내부를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교육계라는 바닥은 대단히 큰 곳이고 다양한 이해관계, 조직, 사람들이 존재하며 상충하는 해석과 갈등이 존재한다.
한국 교육계에 대한 의견과 평가는 다양하며 때로는 충돌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관점, 의견, 평가,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상충하지만 이들은 하나의 사실에 모두 동의한다. “한국은 교육지옥이다.”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객관적으로 이를 입증한다. 교육 때문에 국민 모두가 너무 힘들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다른 나라는 그럼 교육지옥이 아닌가?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의 한·중·미·일 4개국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 중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말한 학생이 80.8%나 되었다. 반면 중국 학생은 41.0%, 미국 학생은 40.4%, 일본 학생은 13.8%였다. 김 교수는 또한 한국 학생들이 과제를 할 때 협력하지 않는 가장 이기적인 학생들이라는 것을 통계로 보여 주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민’이 아니라 ‘전사’를 기른다. 이 연구가 보여 주는 것은 한국 교육이 정말 지옥이라는 것이다. 교육 여건이 나라마다 달라서 기초적인 교육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저개발국을 제외한다면 적어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라고 부르는 나라들에서 교육지옥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도달한다.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
이 책의 반은 여기에 대한 대답이며, 나머지 반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다. 한국 교육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있음을 인정함에도 나는 교육체제를 다른 방식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는 해석과 의견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리적 세계’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을 사물Thing처럼 대하라”고 말했다. 뒤르켐에 대한 논쟁은 지난 10여 년간 있었고 뒤르켐이 말한 사회적 사실은 주로 우리의 규범적 세계 또는 도덕 세계를 일컫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학체제는 ‘사회물리적 인프라’라는 점에서 뒤르켐의 관점과는 다르다. 한국 교육의 최대의 문제는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병목’현상 때문에 일어난다.
사회‘물리적’ 세계로서의 한국 교육체제에 대한 이해는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교육문제에 급진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학벌의식이 아닌 지위권력을 독점한 물리적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 곧 한국 교육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향한 좁은 ‘고속도로’, 곧 병목현상 때문에 발생한다. 이것은 사회학이 아니라 사회물리학이다. 그렇다면 교육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속도로’를 많이 만드는 일이다. 1개 고속도로서울대를 10개의 고속도로서울대로 만들자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을 왜 우리는 모두 모르고 있었나? 그것은 한국 교육체제에 대해 끝까지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시각은 외부자적 관점에서 한 사회 또는 공동체에 대해 종합적인 관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 미덕이다. 한국인들은 평생 명문대로 향한 치열한 경쟁과 병목으로 인해 교육과 ‘과열된 관계’를 맺어 왔다. 결과적으로 교육을 분석적이고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만의 견해가 강해서 설득하기가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미 외부자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교육과의 ‘과열된 관계’에서 빠져나와 최대한 냉정하게 한국의 교육현상을 분석하고 싶다. ‘아웃사이더·인사이더’의 이중의 정체성을 동시에 그리고 유연하게 가져야 하는 것이 훌륭한 인류학자 되기의 과정이다.
사회과학은 이해를 목표로 하지만 사회적 고통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이 책의 목표는 교육지옥의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 한국인 대부분은 그들이 왜 교육 때문에 아픈지 잘 모른다. 자신의 경험만을 앞세운 경험주의가 판치는 곳에서 교육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교육계의 전문가들과 관료들이 이 심각한 질병에 대해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못해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병을 고치는 처방을 이 책에서 기술한다.
따라서 이 책의 최종 목표는 교육지옥으로부터 학생, 학부모, 선생, 국민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 해법으로 ‘전국에 서울대 10개를 만들자’라는 대단히 단순한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간단한 해법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복잡한 탐구의 과정을 거쳤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당신이 가진 교육에 대한 경험과 편견을 잠시 내려놓기를 바란다. 이 책은 한국 대학의 지위권력과 독점과 공간권력의 독점을 깨기 위한 선전포고다. 교육은 인프라 권력이며 이것은 거대한 힘이다. 한국 교육은 지위권력과 인프라 권력의 독점으로 인한 거대한 괴물이 되었으며, 이에 맞서 전쟁은 수행되어야 한다. 들뢰즈-과타리식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전쟁 기계다. 이 책은 사악한 한국 교육체제에 맞서 강력한 이론적, 정책적 무기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나의 의도를 D. H. 로렌스D. H. Lawrence만큼 잘 표현한 사람은 없다. “낡은 무기들은 썩는다.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라. 그리고 똑바로 쏘아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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