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우리가 너무나 궁금해하고 평생 중요하게 생각해왔으며 때로는 서툴고 간혹 지나치게 의존해온, 바로 그 우정이라는 녀석의 실체가 담겨 있다. 우리는 왜 친구를 사귀며 우정이 필요한지, 우리는 누구와 친구가 되는지, 우정은 어떻게 형성되며 언제 균열이 생기는지, 그야말로 우리가 우정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 있다. (7쪽)
1장
왜 지금
우정을 말하는가
언론인이자 30대 엄마인 마리아 랠리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복잡한 런던 생활을 즐기다가 어린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생활하기 위해 서리Surrey라는 시골 동네로 이사한 경험을 글로 썼다. 이사 직후 그녀는 동네 사람들을 하나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서로 오랫동안 끈끈한 우정을 이어온 사이라서 자신이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여자 둘이서 커피 마시러 가자고 약속하는 광경을 보며 울음을 터뜨릴 뻔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것은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마치 빅토리아 시대에 배를 곯던 아이들처럼 우리는 흐릿한 창문을 통해 남의 방을 들여다보는 일에 정말 많은 시간을 쓰는 것 같다. 남의 방 안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관계에 행복해한다.
우정과 고독은 ‘사회적 동전social coin’의 양면이다. 우리는 우정과 고독 사이를 계속 옮겨 다니며 인생을 살아간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의학 연구자들은 친구가 있다는 것의 효능이 생각보다 크다는 데 놀랐다. 친구가 있으면 더 행복해지고 건강과 웰빙, 그리고 장수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고독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정은 쌍방향 과정으로서 나와 상대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기꺼이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해야만 유지된다. 우정의 이러한 특징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인간관계가 최고로 좋다고 자부하는 순간 갑자기 고독의 수렁 한가운데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2014년 모벰버 재단의 의뢰를 받아 오스트레일리아 남성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별로 없고 사회적 관계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남성들의 불안감이 가장 컸다. 가장 취약한 남성들은 스포츠 클럽처럼 공통의 관심사만으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회원이 그 활동에 참여를 덜 하게 되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이사를 하면 클럽에 남은 회원들은 친구를 잃었고 그 친구를 다른 사람으로 쉽게 대체할 수도 없었다. 고독은 현대사회의 가장 골치 아픈 질병으로서, 다른 심각한 질병들을 빠르게 추월해 제1의 사망 원인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아니, 표현을 바꿔보자. 혹시 우정이 우리에게 이롭다는 말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한번 설득해보겠다.
친구는 건강과
행복의 원천
지난 20년 동안의 의학 문헌에서 도출되는 결론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친구가 많을수록 우리가 덜 아프고 오래 산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미국 유타주 브리검 영 대학의 ‘사회적 관계와 건강 실험실’에서 인간관계와 고독이 삶의 기회에 미치는 영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줄리안 홀트 룬스타드Julianne Holt-Lunstad는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증거를 제시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사망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148편의 역학 연구를 분석했다.
나는 이 연구의 2가지 측면이 마음에 든다. 첫째, 여기서 분석한 148편의 역학 연구는 총 30만 명이 넘는 환자에게서 표본을 추출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표본 수가 아주 많은 것이므로 연구 결과의 신빙성도 높아진다. 둘째, 이 연구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이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는 사람이 살아 있느냐 아니면 사망했느냐다. 보통 점수를 매겨 수치화하는 연구들은 약간 모호하게 “당신은 X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1~5까지의 숫자로 답하시오”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방법을 선택한다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런 연구는 다양한 개인들이 질문 속 단어를 각기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과 사람들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주관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내가 ‘오늘 나는 아주 행복하다’라고 답했다면 그 답변은 당신의 ‘오늘 나는 아주 행복하다’와 정확히 같은 뜻일까? 내가 지난주에 느꼈던 ‘아주 행복한’ 감정은 이번 주의 ‘아주 행복한’ 감정과 같은 의미일까? 하지만 어떤 사람이 사망했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에는 이러한 함정을 피해갈 수 있다. 이 질문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은 살아 있든가 죽었든가 둘 중 하나다. ‘만약’, ‘그러나’, ‘언제’, ‘하지만’은 없다.
줄리안의 연구에 포함된 요소들은 모두 의사들이 사랑하는 일반적인 사항이었다. 체중이 평균보다 얼마나 많이 나갑니까? 당신의 흡연량은? 당신의 알코올 섭취량은? 운동을 얼마나 합니까? 당신이 사는 곳의 공기 오염은 어느 정도인가요? 독감 예방접종을 했나요? 어떤 재활치료를 하고 있나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있나요? 하지만 이 연구에는 대상자의 사교 생활을 수치화하는 일련의 질문들도 들어갔다. 당신은 미혼인가요, 기혼인가요? 사회 활동에 얼마나 많이 참여하나요? 친구가 몇이나 되나요? 친구들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나요? 지역사회의 일에는 얼마나 참여하고 있나요? 고독이나 사회적 고립을 느끼나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감정적 지원을 얼마나 많이 받는다고 느끼시나요?
놀랍게도 연구 대상자들의 생존 확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교 활동 수치였다. 특히 심장 발작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킨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교 활동 척도의 영향이 컸다. 결과를 가장 잘 예측하는 변수는 사회적 지원을 자주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를 나타내는 수치,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와 지역 공동체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소속되어 있는가를 평가하는 수치였다. 이 두 항목의 점수가 높았던 사람들은 생존 확률이 50퍼센트나 높았다. 이것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 유일한 변수는 금연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의료계 종사자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음식을 양껏 먹고 술을 맘껏 마시고 게으름을 피우고 대기 오염이 극심한 지역에 살아도 괜찮다. 별 차이를 못 느낄 것이다’라고 말하더라도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친구가 하나도 없거나 당신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수명에 크디큰 영향을 끼친다. 앞에 나열한 변수들이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나의 주장은 친구의 수와 우정의 질, 또는 금연 여부에 비하면 당신의 친절한 동네 의사가 걱정해 마지않는 다른 변수들의 영향은 사실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병원에서 주는 약을 삼키면 당신에게 좋겠지만, 그냥 친구 몇 명과 잘 지내기만 해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덴마크 국립공중보건연구소의 지기 산티니Ziggi Santini와 동료들은 50세 이상인 사람들 약 3만 8000명에게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친한 친구들이 있고 외부 클럽과 단체 활동교회, 자원봉사 기구, 교육 활동, 시민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울증을 훨씬 적게 앓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2가지 사회적 요인은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대체가 가능하다. 우리는 친구를 더 많이 사귀는 대신 사회 활동을 줄일 수도 있고, 반대로 친구를 줄이면서 사회 활동을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역효과가 났다. 아마도 그것은 일을 너무 벌여놓기만 하고 관계의 질을 높이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한 친구에서 다른 친구에게로, 한 단체에서 다른 단체로 바삐 옮겨다니는 ‘사회적 나비’가 되는 것은 친한 친구 1~2명을 깊게 사귀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회적 나비처럼 살면 단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말 바쁘게 사교 활동을 하는 것 같은데도 고독을 느낀다. 아마도 이 점이 연구의 핵심인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의 여유로움이지, 맹렬하게 돌아다니면서 이곳에서 몇 분, 저곳에서 몇 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줄리안 홀트 룬스타드는 다른 연구에서 60세를 넘긴 사람들의 기대 수명에 고독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이번에는 70편의 연구에서 데이터를 모았다. 평균 7년에 걸쳐 3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얻은 데이터였다. 사람들의 연령과 성별, 연구 시작 시점의 건강 상태를 통제한 결과 사회적 고립, 혼자 살기, 고독감과 같은 요인들은 사망 확률을 약 30퍼센트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 말하면 친구가 많았거나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반드시 배우자일 필요는 없다!, 또는 지역 공동체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 영역의 점수가 낮은 사람들보다 오래 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집 밖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가 더 적었거나 고독을 더 많이 느꼈을 것이라는 논리로 이 결과를 비판할 수도 없다. 연구자들은 질병과 장애 같은 변인을 상수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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