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동굴
옆자리 여자가 창턱을 잡더니 내 앞으로 상체를 숙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려는 것이었다. 손등에는 지렁이 떼 같은 실핏줄이 서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비가 올 때마다 지렁이 떼가 기어 나와 지친 듯 회분홍색이 되어 길에 누워 있곤 했다. 9킬로미터 아래로는 찢어진 면사포 같은 구름과 안개 사이로 담청색의 호수들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는 캐나다 북동부 같다는 추측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렇게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될 때마다 호수나 바다의 모양을 기억해놓으려고 애쓰는 부류다. 나중에 그곳의 지도를 보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비행기에서 보았던 이상하게 매력적인 모양과는 전혀 다른 단정하고 낯익은 지형뿐이지만.
여자는 두어 번 말을 걸어왔지만, 여자의 남편은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서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크루 커트 헤어스타일이었고, 수전증이 있었고, 아내에 비해 세파에 시달린 얼굴이었다. 최근에 뇌졸중으로 말을 못 하게 되었다고 했다. 좌석에서 일어나려면 부축이 필요했고, 좌석 벨트, 헤드폰, 트레이 등등을 조작할 때도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열두 시간 동안 창가 좌석에서 꼼짝하지 못한 이유였다. 인간계에 갇힌 한 마리 개처럼 말 못함에 갇힌 남편은 자기를 내버린 생명체에 아직 붙어 있는 다른 세포들을 바라보듯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아내는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근심 걱정 없고 생기 있고 의욕이 넘쳤다. 그렇게 사근사근하게 맞장구쳐주는 사람들이 그 세대에 많은 것도 사실이다. 두 사람은 영국 단체관광객으로 런던으로 가는 길이었고, 나는 런던에서 더블린행 항공기로 갈아타고 아일랜드 여행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좌석 등받이의 작은 화면에서는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국 정부가 아일랜드 가톨릭 신도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둔 근래의 사건을 다룬 영화였는데, 런던행 항공기의 기내 상영작으로는 묘한 선택인 듯했다. 어서 오라는 환영 대신 조심하라는 경고.
여자는 나더러 아일랜드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을 복잡하게 떠올려보다가 아일랜드 서해안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가 “혼자 걸어요?”라고 했고, 나는 “혼자 걸어요.”라고 했다. 내가 화제를 상대편에게로 돌리자, 여자는 그렇게 걷다가 혹시라도 후기성도교회를 발견하게 되면 한번 들어가서 새로운 종류의 모험을 해보라고 했다. 살면서 당해본 제일 예의 바른 복음 전도였다. 모르몬교 신도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되니 많은 것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들을 버클리에 사는 부부라고 소개했었지만, 알고 보니 그레이트베이슨에 사는 부부였다. 부부의 표정과 매너를 통해서 짐작했던 대로였다. 나는 여자에게 그레이트베이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나는 마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이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2차선 고속도로 이름 하나, 작은 마을 이름 하나에서 장소의 정경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여자는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봄에 유타의 로건처럼 아름다운 곳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자가 그곳에 살았을 때 스무 살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겠지만, 나도 그곳 이야기를 들으면서 라일락꽃들과 합판 주택들과 넓은 길들과 끝없이 넓은 하늘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나는 모르몬교 신도들도 좋아한다. 미국의 서부 이민자들 중에 북쪽 사막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다. 아니, 미국의 서부에 정말로 정착한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다. 그곳은 새로운 약속의 땅이라는 것, 그곳에 온 자신들은 노예의 사슬을 끊고 탈출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이 그들의 판타지였던 만큼, 그들의 유타는 1846년 이래 오랫동안 구약의 세계, 옛 세계의 합판을 덧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서부로 온 백인들 중에서 그곳에 정착해 그곳을 고향으로 만든 사람들은 그들뿐이었다.
내 아일랜드 여행은 삼림의 나라 영국으로 향하면서 사막의 고장 유타를 그리워하던 그 여자와 함께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여행을 앞두고 있던 봄에 아이다호의 트윈폴스 근방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비행기 안에서 유타의 로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곳이 바로 유타에서 멀지 않은 아이다호의 세이지브러시 대초원이었다. 그곳에 가게 된 계기는 서던 아이다호 대학교의 철학 교수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으니 트윈폴스로 와달라는 전화였다. 상대방은 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또 가고 싶다는 내 대답에 깜짝 놀라는 듯했다. 시내에서 벗어나자마자 나타나는 스네이크강의 쇼숀 폭포는 이 나라에서 가장 장쾌한 폭포 중 하나다. 스네이크강의 검은색 화산 협곡은 그레이트베이슨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협곡 남쪽의 거대하고 거무튀튀한 땅덩어리들은 협곡 북쪽으로도 똑같이 펼쳐져 있고, 건조한 서부의 눈부시게 빛나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빛이 그 위로 쏟아지고 있다.) 쇼숀 폭포가 다른 강의 폭포였다면 나이아가라 못지않은 관광 명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네이크강이 관개용수로 사용되면서 폭포의 규모도 줄었다. 처음 왔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강물은 대부분 농지로 흘러 들어갔고 하얀 물살 사이로 튀어나온 검은 바위는 걸인의 뼈마디 같았다. 두 번째로 왔을 때는 봄이었지만, 땅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다. 공항 간이 활주로에서 코요테 두 마리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예정보다 하루를 더 머물렀고, 특별 연구교수 빌 스튜드베이커William “Bill” Studebaker와 철학 교수 브렌다 라슨Brenda Larsen이 관광 안내를 맡아주었다. 내가 있는 곳이 해안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건조한 공기와 사람들의 태평한 말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교수 두 사람이 하루 종일 낯선 방문객의 안내자가 되어줄 정도로 시간의 여유와 환대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브렌다와 나 사이에는 이어나갈 화제가 있었다. 브렌다는 철학의 역설을 수집, 편찬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었고 나는 은유에 관심이 있었으니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서 어떤 친연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몇 가지 정의를 찾으면서 행복해한 것은 그 전날에 스네이크 강가를 산책하며 얼어붙은 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였고, 그렇게 찾아낸 정의들을 함께 정리해본 것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으로 브렌다가 만든 토마토 커리를 함께 먹으면서였다.(브렌다는 지식욕이 왕성한 만큼 식욕도 왕성한 미인이었다.) 나의 은유와 브렌다의 역설은 한 번에 두 곳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데가 있었다. 모종의 종점에 가닿고 싶어 하는 철학은 결국 한 곳에만 있으려는 재미없는 시도가 아닐까, 비유가 아닌 진리, 곧 진리 그 자체는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소실점 같은 것이 아닐까, 끝나는 곳은 시작하는 곳과 마찬가지로 신화적 장소가 아닐까, 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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