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대하여
마지막, 소리 내면
지금도 목울대에 등자 같은 게 솟아오른다
아버지만 해도 그렇지,
건빵 한봉지가 다였다니
나는 밤나무 꼭대기의 저녁 햇살이
성 엘모의 불이었다고 기억한다
폭풍 속 배의 마스트에 환했다던 그 불덩이
아버지는 건빵 한봉지를 쥐여주고
마당 속으로 가라앉은 거다
마지막이란 말은 그러고 보니,란 말 뒤
안장에 매달린 건빵 자루처럼 덜렁거린다
건빵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막막한 마당 밖으로 밀려가는 중이다
단단하고 물기라곤 하나 없는 막
막의 한 끝을 혀로 녹여
수프처럼 물렁하게 만드는 게 여정의 끝
마지막은 넓고 황량해
줄 게 건빵뿐인 이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겠지
그러나 얼마나 멋지냐
산맥을 타넘어도, 들판을 가로질러도 좋고
키클롭스와 세이렌의 바다를 떠돌아도 좋고
좋은 것을 찾아 더 멀리 헤매는 사람의 운명
마지막,
말하고 나면 금방이라도
힘센 말이 나를 싣고 떠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사슴이 달린다
바람은 왜 먼 곳에 와
뿔을 치며 우나
붉은 사슴들이
장대한 머리를 세워 싸우는 북쪽
얽힌 뿔을 빼지 못한
바람은 왜 기를 쓰고 내게로 불어오나
사슴이 달린다
시호테알린과 싱안링, 함경산맥과 낭림산맥을 지나
태백산맥 중턱까지 내려온 바람 속
아득한
대지와 바다가 얽혀 뼈를 말리는 소리
죽은 자리로만 떠도는 저 소리
우우, 굶어 죽고
죽어서도 떨어질 수 없는 것들의 울음을 끌며
내 고향은 뒷산보다 멀어
어머니 아버지보다 멀어
너무 가까이 온 게 아니었을까,
인가에서 멀어지려는 짐승이
가지를 분지르며 산등성이 넘어간다
잔월殘月
벚꽃 지는 날엔 장닭 한 마리 엮어 장모께나 가볼까
일찍 깬 새벽 발바닥 꽃잎 찍으며 박석고개 넘어갈까
나 왔수, 문지방에 앉아
도깨비처럼 닭다리 한쪽 질기게 뜯을까
방망이는 댓돌에 걸쳐두고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