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타타르의 '식물성 양'
이 책은 신념belief에 관한 책이며 진실과 지식, 과학과 증거를 다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짓 신념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신념, 특히 거짓 신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리고 어떻게 유지될까? 왜 퍼질까?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되는 증거가 넘쳐날 때조차도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거짓 신념을 옳은 신념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뻔한 소리처럼 드리겠지만, 세상에 대한 신념은 매일 매순간 내리는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라면 임신 중에 생선회를 먹겠는가? 아마도 다음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생선에 함유된 오메가-3 지방산이 태아의 두뇌 발달을 촉진시킬 것이라 믿는가? 생선에 축적된 수은 때문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횟집에 리스테리아균식중독 원인균의 일종 ― 옮긴이이 서식할 가능성을 얼마로 보는가?
신념은 사회 차원의 결정, 특히 경제 정책과 공중보건 및 환경 분야의 정책 결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차량의 배기가스를 규제해야 하는지는 차량의 배기가스가 공중보건에 미칠 영향과 배기가스 규제가 경제성장에 미칠 영향에 관한 사회의 신념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 채무를 제한해야 하는지는 해당 부채가 우리 사회의 미래 복지에 미칠 영향에 관한 신념에 달려 있다.
이런 종류의 신념은 있으나 마나 한 한가한 소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신념에 근거해 내린 결정에 따라 실질적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세계에 관한 거짓 뉴스를 믿고 거짓 신념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당신이 예상하거나 희망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신념에 반응한다. 만일 덩치 큰 심해어의 수은 함량이 높다는 이야기나 수은이 몸에 해로운 물질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임신을 하고도 생선회를 먹을 것이다. 그 결과 태아의 수은 중독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만일 높은 국가채무가 경제를 좀먹는 요인이라고 믿으면 금리가 낮더라도 부채를 줄이는 정책을 지지할 것이다. 공공 서비스나 경기부양에 필요한 재정 지출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거짓 신념이 우리를 해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거짓 신념이 지속될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진다.
거짓 신념이 지속되고 확산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애초에 신념이 어디에서 오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어떤 신념은 세상에 대한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수없이 토마토를 먹어봤고 먹은 후에 부작용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토마토가 위험하지 않다’라고 믿는다.그런데 유럽 사람들은 200년이 넘도록 토마토를 ‘먹으면 위험한 독사과’로 여겼다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과 숙면이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추우면 입술이 트며, 땅다람쥐는 정원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동물이라는 신념은 우리가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본 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면 거짓 신념, 즉 증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널리 알려진 신념은 어디서 기인할까? 거짓 신념은 우리가 주변과 세계로부터 얻은 정보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할 때 생겨날 수 있다. 정보 처리에 실패하는 것은 경험을 기반으로 추론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편향이나 맹점 혹은 심리적 변덕에 의해 방해받은 결과일 수 있다. 어쩌면 경험이 부족하거나 형편없는 교육을 받아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다. 아니면 바로 눈앞에 증거를 두고도 진실을 보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지성을 ‘다양한 환경에서 신뢰할 만한 추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내는가?’의 기준으로 생각하는데, 거짓 신념은 어쩌면 우리가 추론을정확하게 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요인들은 거짓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하지만 개인의 심리나 지성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면 거짓 신념이 유지되고 퍼지는 방식을 잘못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잘못된 해법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가진 신념 중 다수는 태생이 좀 더 복잡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신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과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 믿으며 서로에게서 배운다.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은 수은 함량을 어떻게 측정하는지조차 모르지만 타인에게서 들은 정보에 의존해 덩치 큰 물고기에 수은 함량이 높다는 신념을 형성한다.
이는 거의 모든 과학적 신념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만일 미국인에게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도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묻는다면 대부분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돈다고 대답할 것이다.2012년에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소 74%나 그리 대답할 것이다 그 대답이 (어느 정도는) 맞다. 그들이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지식 가운데 극히 일부분인 특정 주제만 연구하므로 과학적 신념 대부분은 타인에게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층인 전문가들조차 타인의 증언으로 만들어진 거짓 신념에 취약하다. 기억하자. ‘식물성 양’과 그 ‘엄청난 맛’에 관해 박식했던 이들 모두 학자와 사상가였다는 사실을.
타인과 신념을 공유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다. 그 덕분에 과학과 예술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문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그 능력은 한 가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낳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만일 ‘믿을 만한’ 누군가가 당신에게 “‘식물성 양’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고,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말한다면 믿겠는가? 당신이 아는 똑똑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죄다 ‘식물성 양’의 존재를 믿는다면 어쩌겠는가? 만일 당신의 친구들이 소셜미디어에 ‘식물성 양’에 대한 글을 게시하면서 ‘식물성 양’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무지하다고 대놓고 조롱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대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설득 당하고 만다. 자신이 추측하는 것 이상의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통의 물꼬를 트는 순간 맞교환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참인 신념을 최대한 많이 가지고 싶다면 들리는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사회적 연결망을 통과하는 모든 신념이 우리 신념 체계의 한 부분이 된다. 거짓 신념을 가능한 한 적게 갖고 싶다면 아무것도 믿으면 안 된다. 그러면 ‘식물성 양’에 속아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물론 진실만 믿고 거짓은 절대 안 믿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거짓 신념과 참인 신념은 출처가 같으며, 좋은 것을 얻고자 할 때는 나쁜 것도 갖게 되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세 문헌에 ‘식물성 양’이 줄곧 등장한 것은 식물학이나 박물학과 관련 없이 순전히 사회적인 현상이었다. ‘식물성 양’이나 가짜 뉴스에 관해 살펴보려면 신념의 사회적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연한 거짓은 진실을 깨우치는 가장 강력한 도구들에 뒤따르는, 피할 수 없지만 해로운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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