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철도의 등장
이는 세계최초의 국제 뉴스이다. 워털루전투가 끝난 지 단 15년 뒤인 1830년 9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개통식에서 첫 열차가 칙칙 소리를 내며 선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화려한 행사에는 워털루전투를 승리로 이끈 총리 웰링턴 공작을 비롯한 수많은 유명인사가 참석하고, 수십만에 이르는 구경꾼이 몰렸다. 손수건이나 담뱃갑 같은 간단한 것에서 식기 세트나 유명한 화가의 기념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등 마치 온 세상이 이 행사를 주목하는 것 같았다. 멀리 떨어진 미국과 인도의 신문들까지 세상을 바꿀 획기적인 사건으로 여기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행사를 지켜본 기자라면 선견지명이나 상상력이 형편없더라도 이 새로운 발명품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개통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 철도는 그 이전의 다른 철도나 다른 나라가 계획한 그 어떤 철도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이 철도는 증기 기관차로 운행하는 복선 철도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가운데 두 곳을 이었다. 물론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세계 최초의 철도는 아니다. 이전까지 철도는 주로 석탄 등을 광산에서 배가 다니는 수로까지 운송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철도는 승객과 화물을 리버풀과 맨체스터 양방향으로 실어 날랐다. 산업혁명을 시작한 영국은 철도 기술에서도 가장 앞섰음은 물론이고, 그 실용 기술 또한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그래서 개통식을 보려고 선로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구경꾼 틈에는 여러 나라의 고위 인사뿐만 아니라 영국의 철도 기술을 자국에서 실현해보려는 여러 나라의 기술자들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포병 장교 빌리엄 아르히발트 바커William Archibald Bake가 그런 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귀국한 뒤, 독일 라인란트 지역에 놓일 프로이센 철도망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몇몇 미국인과 러시아인이 실태를 파악하려고 개통식에 참가했다는 소문이 돌고, 철도 기술을 훔치려는 잠재적인 적국의 간첩이나 첩보원에 대한 음습한 이야기들이 퍼졌다. 이런 소문들로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었다. 실제로 미국의 델라웨어 앤드 허드슨 운하 회사Delaware & Hudson Canal Company의 수석 기술자인 호레이쇼 앨런Horatio Allen과 그를 수행한 E. L. 밀러E. L. Miller가 한 해 전에 열린 증기 기관차 경주 대회인 레인힐 트라이얼Rainhill Trials에 이미 모습을 드러냈었다. 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철도 예찬자가 되어 철마의 시대가 열렸다는 소식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터였다.
만약 철도라는 저렴한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산업혁명이 촉발한 경제 발전은 정체하거나 오랫동안 영국에 한정된 채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철도가 기술을 확산시키며 세계화에 촉매가 되었고, 이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했다. 인류는 작은 지역사회에서 벗어나 좋든 싫든 하나의 사회가 되었다.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개통식이 열리고 채 10년이 안 되어 증기 기관차가 끄는 열차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북아메리카에서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25년이 지나지 않아 쿠바에서 페루, 이집트나 인도까지 언뜻 생각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철도를 놓았다. 새로운 이동수단인 철도의 등장과 확산은 큰 이점이기도 하지만, 전쟁의 규모를 키우고 여러 산업의 쇠락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국의 애국주의 작가들은 세계 역사에서 영국의 역할을 과장하기 일쑤지만, 철도의 역사에서만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국의 철도 기술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철도에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영향을 끼쳤다. 또한 영국 자본은 세계지도에 분홍색으로 표시된 곳, 즉 대영 제국의 식민지뿐만 아니라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철도 건설 계획의 자금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예컨대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의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한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의 증기 기관차는 여러 철도의 기본 토대가 됐다. 영국에서 시작된 전통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1435밀리미터라는 두 레일 사이의 간격, 즉 궤간gauge이다. 이는 스티븐슨이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를 놓을 때 적용한 궤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며 이내 ‘표준 궤간standard gauge’으로 자리 잡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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