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은 누가 했나
권김현영
피해자를 준비시킨다는 전제가 성립하려면 일단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없는 피해를 만들어낸다거나, 피해자인 척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사실 관계 자체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프레임에서 중요한 점은 피해 사실의 진위 여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이 ‘있더라도’, 그것이 현 정권의 성공을 위한 지지 세력의 결집을 방해하려는 조직과 결탁해 있다면 그게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 김어준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정권 수호 입장에서 보면 범민주 계열 정치인들에 대한 미투 운동은 결국 내부 총질을 하는 격이며, 거기에 나선 피해자들이나 그들을 돕는 이들은 사소한 문제에 집착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39쪽)
2018년 2월 24일, 한 인터넷 미디어 방송에서 김어준은 앞으로의 미투 운동은 변질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예언을 하나 할까 합니다. 예언. 간만에. 이거는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보이는 뉴스인데, 최근에 미투 운동하고 권력 혹은 위계에 의한 성범죄 이런 뉴스가 엄청나게 많잖아요? 이걸 보면 아. 미투 운동을 지지해야겠다. 이런 범죄를 엄단해야 되겠다. 이게 일반적인 정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읽으면 어떻게 보이냐. 우리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에 훈련된 사람들이거든. 어떻게 보이냐? 첫째. 아. 섹스. 좋은 소재. 주목도 높아. 둘째. 아. 진보적 가치 있어. 오케이. 그러면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 매체를 통해서 등장시켜야 되겠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겁니다.”
김어준은 한국 최초의 미투를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알고 있었으니, ‘변질’에 대해 누구보다 빨리 걱정한 셈이다. 십수 년간 인터넷 여론의 흐름을 파악해 온 그의 ‘식견’이 유일한 근거였지만, 김어준이 누군가. 2018년 10월 현재,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가장 신뢰도 높은 언론인 2위로 꼽힌 인물이 아닌가. 주장만으로도 여론의 향방을 좌우할 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인 김어준의 말을 듣자마자 정치 평론을 하는 이들은 곧 거물급 정치인의 미투가 터질 거라고 앞다투어 예상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증권가 지라시도 발 빠르게 정치권 미투 예상 명단을 돌렸다. 과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2018년 3월 5일 안희정 전 충청남도 도지사에 대한 미투가 〈jtbc〉에서 보도되었고, 2018년 3월 7일 정봉주 전 국회의원에 대한 미투가 〈프레시안〉에서 보도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김어준의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단 두 가지만 빼고 말이다. 하나는 “피해자를 준비시킨다”는 언급이다. 피해자를 준비시킨다는 전제가 성립하려면 일단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없는 피해를 만들어낸다거나, 피해자인 척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사실 관계 자체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프레임에서 중요한 점은 피해 사실의 진위 여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이 ‘있더라도’, 그것이 현 정권의 성공을 위한 지지 세력의 결집을 방해하려는 조직과 결탁해 있다면 그게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 김어준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정권 수호 입장에서 보면 범민주 계열 정치인들에 대한 미투 운동은 결국 내부 총질을 하는 격이며, 거기에 나선 피해자들이나 그들을 돕는 이들은 사소한 문제에 집착해“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격”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프레임은 지금까지도 작동하고 있다. 안희정 1심 재판에서 피고소인 안희정 측 변호인들은 고소인 김지은이 박근혜 정부 시절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것을 정치적인 성향 문제로 만들고자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한 경력을 “국정농단으로 현재 감옥에 가 있는 차은택이 단장으로 있었던 곳에서 근무”했다고 묘사하는 식이었다. “피해자를 준비시켜”라는 말은 피해자 뒤에 공작 세력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실제로 특정 세력과 결탁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피해자들은 바로 진보와 인권을 표방했던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그들의 정치적 지지자였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여성 지지자들을 남성 정치인 개인의 매력에 끌린 일종의 팬덤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무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준비시켜’라는 말을 다시 살펴보자. 어떤 보상이 주어지면 피해자로서 뉴스룸에 앉을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과격한 여성 단체가 피해자를 설득해서 고발에 나서게 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단언컨대 어떤 여성 단체도 피해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뉴스룸에 앉아 최상위 권력자의 성폭력을 고발하라는 권유를 할 수 없다. 김지은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뉴스룸에 앉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이미 안희정 전 지사를 수행하면서 본인의 얼굴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얼굴과 이름을 숨기고 익명의 고발을 했더라면, 수많은 안희정 지지자들과 인터넷 특유의 신상 털기 문화가 합쳐져서 김지은의 얼굴부터 그 전 경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상이 파헤쳐졌을 것이다. 안희정 경선 캠프에 있었던 보좌진과 자원 활동가, 도청에 근무하는 직원들까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 실시간 검색의 열풍에서 안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가 누구를 어떻게 준비시켜서 억지로 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준비시킨다는 말 뒤에는 배후 세력의 존재를 암시할 뿐 아니라, 배후가 되기 위해 금전 거래가 이루어졌을 거라는 진부한 상상이 이어진다. 소위 ‘꽃뱀 담론’이다. 쉽게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미투에 나선 피해자들은 가해자들과 사전 ‘협상’ 같은 것을 한 일이 없다. 피해자를 준비시켰다면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준비시켰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내용은 전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즉 김어준의 ‘공작’ 발언은 진영 논리와 피해자 비난 담론에 기댄 전형적인 프레임 전환 수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또 하나 이상한 현상은 댓글 흐름이었다. 특히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미투 이후, 댓글 공작과 가짜 뉴스가 조직적으로 생산되고 유포되었다. 몇 개의 아이디를 클릭해서 그동안 단 댓글들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량과 방식을 유추해보건대 명백하게 댓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러 개의 계정에서 동일한 내용의 글과 사진이 동시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런 댓글들이 일정 정도 이상의 ‘양’이 되면 어느 순간 여론의 공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한번 흐름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고 사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해 당사자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특정한 집단이 분명한 목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으면, 동시다발적으로 유사한 내용이 퍼지고 그 결과 실시간 검색어의 내용이 바뀌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성폭력 사건에 이 정도의 댓글 공작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여론이 아무리 지배적이라고 해도, 몇 가지 정보가 이처럼 집중적으로 쓰이고 퍼지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여론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이야기가 막히고 더 진전되지 않는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문이 퍼지고, 그 소문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던 신뢰할 만한 오랜 동료에까지도 스며드는지 기록하고 관찰했다. 댓글에 있던 이야기는 카페, 단체 카톡방, 라인 채팅방으로 24시간 이내에 옮겨졌고 대부분 당사자가 아니면 확인할 수 없는 매운 내밀한 정보로 포장되어 퍼지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불리한 정보였으니, 안희정 측에서 나온 정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김어준이 말한 ‘공작’이 정말 있었다면 그 공작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편’을 분열시킬 계획을 품고 있는 이명박-박근혜를 지지하는 범보수층일 테지만, 그런 방식으로 퍼지는 모든 정보는 안희정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들뿐이었다. 실제로 전 수행비서 어 모 씨, 열혈지지 활동가 유 모 씨 등 안희정의 측근들은 김지은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결과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했는지, 아니면 성폭력에 대한 협소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개인적 의견을 피력한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본애서 이 사건은 불륜이지 성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의견들이 모두 ‘공작’이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김어준은 “지금 나와 있는 뉴스가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 나타난다는 말이고, 그 타깃은 어디냐. 결국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라는 말로 공작 정치의 배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만들면 사실 관계 사이에 비약이 있어도 사람들은 쉽게 그럴듯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18년 2월 24일, 같은 방송에서 김어준은 2012년에 금품 수수 혐의를 받던 박지원 의원이 검찰에 기습적으로 자진 출두를 해서 준비가 덜 된 검찰을 당황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낸 사건을 언급한다. 3월 9일 안희정은 미투 보도 이후 4일 만에 검찰이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자진 출두를 했다. 글쎄, 나는 음모론자가 아니니까 무리한 주장은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런 무리한 주장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드는데 몇 가지 ‘기술’만 있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여전히 궁금하다. 김어준의 ‘공작’ 운운은 미투를 둘러싸고 벌어진 질 나쁜 농담의 하나였을까 아니면 그 자체가 미투 운동을 훼방 놓으려는 공작이었을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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