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겨울 팔레트
『하퍼스&퀸』, 1988년
예전에 나는 러시아를 다녀온 사람들은 왜 다들 그곳에 집착할까 궁금했는데, 첫 해외 취재를 다녀온 뒤 이유를 알았다. 1988년이었고, 영국 월간지 『하퍼스&퀸』이 곧 열릴 소더비의 획기적인 소련 현대 미술 경매를 취재하라고 나를 소련으로 보냈다. 같은 행사에 대한 기사를 더 길게 써서 3년 뒤 『코너서Connoisseur』에도 실었다. 아래 글은 두 기사를 합하여, 나뿐 아니라 관련된 소련 예술가들에게도 양쪽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세계가 충돌했을 때 발생했던 흥분되는 경험을 돌아본 것이다. 이 글에 묘사된 만남 덕분에 나는 나중에 첫 책 『아이러니의 탑: 글라스노스트 시절 소련 예술가들』을 썼다.
〈브레즈네프를 위하여!〉 한 예술가가 외쳤다. 해 뜰 때가 다 되었고 피곤했기 때문에, 나는 이름을 제대로 입력하지 못한 채 찻잔을 들었다. 〈브레즈네프를 위하여!〉 우리는 합창하고 차를 털어 넣었다. 그제서야 이상했다. 1988년 여름인데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브레즈네프를 위하여 축배를 들다니. 새벽 네 시였고, 어쩌면 다섯 시였던 것도 같고, 대화는 진작 변질되었다. 우리는 보드리야르와 해체 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뒤로하고 일본 관광객들에 관한 농담을 나눴다. 우리 일곱 명은 작은 방의 작은 탁자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앉아서 모두 동시에 말하면서 한 예술가가 만든 음식을 모두 게걸스레 먹었는데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음식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돌아가며 먹었다. 그러다가 그 축배가 나왔다. 누군가 〈브레즈네프 시절처럼〉 좋은 대화를 나눈 좋은 밤이었다고 말한 뒤였다. 나는 머리가 하도 멍해서 무슨 소린지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푸르만니 로의 한 건물, 얄궂게도 맹인 학교 위층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작업실들을 우리가 떠난 시각은 여섯 시 반이었다. 모스크바에 새벽이 왔다. 거리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전날 오전 열한 시부터 거기에 있었기에, 긴 토론과 완벽한 탈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느낌, 즉 그 방만이 유일한 현실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브레즈네프를 위하여!〉 우리는 이 말을 또 한 번 외치면서 헤어졌다. 헤어질 때 한 예술가가 내게 당부했다. 「정오에 역으로 와요. 거기서 보자고요.」
나는 미덥지 않은 호화로움을 자랑하는 서양식 호텔로 돌아왔다. 열한 시에 자명종이 못된 농담처럼 울렸고, 나는 짜증스레 침대를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나서면서, 어제 대체 뭐에 씌었기에 이딴 약속을 했을까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역에 도착해서 전위 예술가들의 친숙한 얼굴을 보고 그들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하룻밤의 불면에 불만스럽던 마음은 사라지고 애초에 그렇게 늦게까지 깨어 있었던 이유가 떠올랐다.
우리는 다 함께 모스크바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어느 시골로 향했다. 다 해서 마흔 명쯤 있었지만 그중 단 한 명만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고, 그런 그도 우리가 그곳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는 몰랐다. 우리는 〈집단 행동 그룹K/D〉이 벌이는 행위 예술, 이른바 〈액션〉을 보러 가는 길이었고 이 수수께끼도 액션의 일부였다. 기차에서 내리니 듬성한 숲 가장자리였다. 우리는 한 줄로 서서 조용조용 대화하면서, 가끔 웃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면서 걸었다. 숲이 한 자락 끝나자 널찍한 옥수수 밭과 그 너머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외딴 집들이 나왔다. 그다음 자작나무 숲이 나왔고, 그다음 새로 씨를 맺으려 하는 갈대가 우거진 호수가 나왔고, 그다음 평지에 우람하게 솟은 소나무 숲이 나왔다. 상상해 보라. 모스크바의 모든 전위 예술가들이, 그러니까 여러 천재들의 얼굴과 그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의 열렬한 눈동자가 마치 천지창조 첫날처럼 고요한 숲속을 걸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한 자락 강줄기가 흐르는 벌판으로 나왔다. 고무 보트에 탄 어부들이 낚싯줄을 던지면서 예술가들의 행렬을 ― 약간 어리둥절한 듯하지만 별 흥미는 없는 태도로 ― 바라보았다. 마침내 우리는 얕은 언덕에 다다랐고, 그곳에 멈춰서 한 줄로 서서 강을 보았다. 우리가 지켜보는 와중에 예술가 게오르기 키제발테르가 물가에 섰다. 그는 물로 뛰어들었고, 헤엄쳐서 강을 건넌 뒤, 건너편 물가에서 모습을 감췄다. 우리는 그가 사라진 지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그는 웬 크고 납작하고 포장이 되어 있는 물건을 안고 물가로 돌아왔고, 다시 물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건너왔다. 그다음 우리가 선 동산을 마주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K/D의 지도자인 안드레이 모나스티르스키와 또 다른 예술가가 있었다. 그들은 밝은색 포장지를 벗겨서 커다란 흑백 그림 작품을 드러냈다. 그다음 화폭을 틀에 고정시키는 못들을 조심스럽게 뽑아서 화폭을 땅에 내려놓고, 복잡한 디자인의 틀을 해체하여 나무 막대기들로 분해했다. 그다음 흑백의 화폭으로 막대기들을 말고, 그렇게 만 것을 포장지로 다시 말았다. 마지막으로 모나스티르스키가 구경꾼들에게 그 그림을 복사한 종이를 한 장씩 나눠 주었다.
그동안 우리 뒤편 언덕에서는 블루 박스에서 내내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것이 액션이었다. 두 시간 걸려 그곳으로 갔다가 두 시간 걸려 돌아오고역까지 오가는 시간은 뺀 것이다, 내가 터무니없이 젠체하는 행위 예술로 이해한 행동을 십 분 동안 하는 것. 액션이 끝난 뒤 강가에서 야유회를 열었다. 야유회는 재미있었지만, 나는 짜증이 났다. 숲이 반가웠고, 빵과 치즈는 맛있었지만, 나머지는 그저 바보짓 같았다. 이때 의학적 해석학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세르게이 아누프리예프가 나를 따로 불러서 설명해 주었다. 이 작품이 과거의 행위 예술 작품들을 어떻게 은밀하게 참조됐는지 알려 주었고, 예술과 자연의 관계, 소련의 오래된 미학적 관심사들, 예술가들 개개인이 삶에서 겪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가 설명을 마친 순간에는 나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에는 솔직히 너무 피곤해서 별로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다.
훨씬 더 나중에야 나는 그때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액션의 요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즈음에는 나도 그때 왜 우리가 해방자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압제자 브레즈네프를 위해서 축배를 들었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흐루쇼프 시절과 마찬가지로, 브레즈네프 시절 소련의 전위 예술가들은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집이나 작업실에 두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보여주었는데, 그런 작품을 본 관객은 동료 전위 예술가들뿐이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예술가들은 〈초기 기독교도 공동체나 프리메이슨 같았다〉. 그들은 한눈에 서로를 파악했고,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뭉쳤고, 집단 구성원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소련 인민에게 허락된 진실보다 더 고차원적인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아직 자신들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진정성을 배웠고, 호혜가 가득한 세상을 건설했다. 비록 강렬한 아이러니와 사소한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어도, 그들의 그 생명력은 사람들이 모든 제스처를 부질없게 여기게 된 국가에서 그들의 작품에 절실함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긴밀하게 공유하는 즐거움을 일구는 것으로 고난에 맞섰고, 그 심오한 목적의식에서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재미로부터 자신들의 재능의 가치를 확인했다.
그들의 재능은 실로 상당했다. 즐거움도 상당했겠지만, 그 즐거움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에 초월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끌어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것을 장악한 체제와 씨름하려는 자가 지성이 부족해서야 좌절하기 마련이라, 바보들은 금세 패배했다. 모스크바 예술가 사회에는 수동적 관찰자의 자리가 없었다. 구성원들의 헌신은 엄청났다. 그들의 작품을 경험하는 길은 개인으로서 그들을 경험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므로 ― 전위 집단을 구성하는 백여 명의 개인들이 소련 현대 예술의 창작자인 동시에 관람자였으니까 ―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는 그 예술계들의 개성이었다. 그들의 강한 페르소나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예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치 탓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애초에 전위에 끌리는 부류의 사람들이 지닌 성향 탓이었지만, 그야 어떻든 그들이 지닌 재능은 당연히 화가로서의 재능이나 시인으로서의 재능이나 배우로서의 재능이었다. 이 흥미로운 연쇄적 특징 때문에 그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끌었고, 유혹적이었고, 완고했으며, 궁극적으로는 꿰뚫어 볼 수 없는 존재였다. 진정성이라는 엄정한 특징이 교묘하고 애매하게 위장한 부정직함과 지나치게 자주 결합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의 작품에는 진실이 가득했지만, 그 진실은 늘 비딱한 언어로만 이야기되었다.
아누프리예프의 설명은 사실 재치 있는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만 그의 말에 넘어가서, 그곳에서 벌어진 일이 이해 가능하고 조리 있고 단순한 일이라고 믿었다. 실제는 달랐다. 그 액션은 현대 소련 예술의 제문제에 관한 흥미로운 논평이었고, 그것은 그냥 액면적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하지만, 한편으로 그 행위는 과거 억압에서 탄생했으나 이제 자유를 접하여 흔들리는 예술 공동체를 다시금 확인하고 결속하는 일이었다. 그 행위에 내포된 지시 대상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누구도 그 모두를 다 알 순 없다는 것, 바로 그 점이 핵심이었다. 참석한 예술가들은 그 지시 대상 중 많은 부분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확인했고, 자신들도 지시 대상 중 일부를 알아차리지 못한 점에서 집단의 비밀이 든든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소련에도 갑자기 예술이 명예와 부를 손쉽게 얻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생겨나서 이 전위 집단을 위협했고, 느슨해진 통제와 해외 시장이 이들의 정신적 요새를 공격했다. 이처럼 새롭게 취약해진 집단을 보호하는 것, 그것이 액션의 목적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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