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유머를 말하는가
(중략)
유머는 스킬이 아니다.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의미의 변주를 즐기는 정신이다. 그것은 자기를 상대화하는 용기, 주어진 상황을 낯설게 바라보는 관점을 요구한다.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그 움직임을 순간 포착하는 직관도 필요하다. 그것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훈련해서 체득할 수 있는 요령이 아니다. 가령 유머감각이 탁월했던 정치인으로 고故 노회찬 의원을 꼽는데, 고루하고 무게만 잡는 어느 정치인이 그를 따라 한다고 해서 과연 유머러스해질 수 있을까? 유머는 삶의 무늬이자 인격이다. 자신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거기에는 인생 전체의 이력이 깃들어 있다.
유머는 지성의 소산이다. ‘뼈 있는 농담’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유머는 사태의 본질을 통찰하는 경우가 많다. 모호하고 복잡한 현상의 이면에 깔려 있는 진실을 명료하게 드러낼 때, 우리는 그 예리한 시선에 경탄하면서 웃음을 짓는다. 거기에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화화할 수 있는 여유까지 곁들여지면 더욱 탁월한 유머가 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남긴 말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정치인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스스로도 믿지 않기 때문에 남이 자기 말을 믿으면 놀란다.” 자기 자신을 비꼬는 동시에 권력자들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웃음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니체의 말이다. 탁월한 이성은 발랄하고 통쾌하다. 여러 입장과 관점을 넘나들며 생각의 날개를 자유롭게 펼치기 때문이다. 구태의연한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발상을 꽃피우는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 의미와 재미가 수렴되는 지점에서 품격 있는 유머가 발생한다. 거기에서 언어는 감옥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의 모태가 된다. 그 창의적 지성의 경지에서는 진지한 것과 유쾌한 것 사이의 간극이 좁아진다. 소통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일상적인 안부 인사에 답하는 방식으로 인류사의 위인들을 기발하게 대입시킨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역사적 인물들의 철학과 사상을 유머러스하게 요약했다. 서양의 뛰어난 지성인 168명을 선정해서 그들에게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질문한다고 가정할 때 나올 법한 대답을 상상한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의 답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학문과 예술의 심오한 세계를 재치 있게 변용시킨 표현들을 통해 고매한 유머 한 편을 음미해보시라.
질문 어떻게 지내십니까?
오이디푸스 질문이 복합적complex이군요.
탈레스 물 흐르듯 살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만사가 직각처럼 반듯합니다.
소크라테스 모르겠소.
플라톤 이상적으로 지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삶의 틀이 잘 잡혀 있지요.
단테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 언제 말입니까?
데카르트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파스칼 늘 생각이 많습니다.
헨리 8세 저는 잘 지냅니다만, 제 아내는……
비발디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뉴턴 제때에 맞아떨어지는 질문을 하시는군요.
셰익스피어 당신 뜻대로 생각하세요.
칸트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헤겔 총체적으로 보아 잘 지냅니다.
마르크스 내일은 더 잘 지내게 될 거요.
다윈 사람은 적응하게 마련이지요……
니체 잘 지내고 못 지내고를 초월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카프카 벌레가 된 기분입니다.
비트겐슈타인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군요.
프로이트 당신은요?
카뮈 부조리한 질문이군요.
예수 다시 살아났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맞혀보세요.
아인슈타인 상대적으로 잘 지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말없이 묘한 미소만 짓는다.)
난해하고 골치 아프다고 여겨지기 쉬운 철학과 사상을 유머의 프리즘으로 조명하면서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사유는 지루한 관념이 아니라 신나는 놀이가 될 수 있다.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미디어에서 확인한다. 많은 방송에서 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양하게 증식하는 팟캐스트 채널에서 토론과 수다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본래 지성은 유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배움과 성장은 즐거운 일이다. 그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교육 과제다. 그것은 교육에 국한되지 않고, 삶과 사회 전반의 기조를 바꿔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세계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엄청난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는데, 한국인의 불행 감각은 갈수록 왜 날카로워지는가. 놀라운 민주화의 기적을 일구었는데, 우리의 일상은 왜 억눌려 있는가. 마음을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이 거대한 난관을 뚫고 나아갈 수 없다. 내면의 탐구나 개인적인 힐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간의 대화에서부터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원에서 공동의 세계를 튼실하게 가꿔가야 한다. 그러려면 생각과 소통의 회로가 원활하게 뚫려야 하고 저변에 흐르는 감정이 부드러워야 한다. 그러한 마음의 생태계를 어떻게 빚어낼 것인가.
유머가 하나의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유머러스한 발상과 표현은 사물을 참신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열어준다. 에고의 집착을 풀고 상생의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무한 성장에 대한 환상과 강박을 내려놓고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하는 지금, 유머는 삶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탐색하는 정신의 놀이다. 격조 있는 농담 한마디를 주고받으며 존재가 고양되는 경험을 여러 만남에서 나누자. 그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밑그림을 그려보자. 유머는 심오한 미덕이요 경쾌한 시대정신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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