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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상품에서 시작하는 이유
마르크스의 『자본』은 자본주의사회에선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 바로 ‘상품’에서 시작합니다.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보여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보이는 겁니다. 정상적인 것의 기괴함을 보는 눈이 없으면 자기 시대를 비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어나갈 『자본』 제1권은 모두 일곱 편영어판은 여덟 편으로 이루어지고 그중 제1편의 제목은 ‘상품과 화폐’이며 제1장의 제목은 ‘상품’입니다. 이 책은 ‘상품’에서 시작한다는 이야기죠. 왜 ‘상품’에서 시작할까요? 왜 거기가 출발점인 걸까요?
본문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너무 딱딱한 물음을 던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첫 장이 어렵다는 소문이 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책의 시작, 특히 『자본』의 시작은 중요합니다. 마르크스 스스로가 서술의 출발점을 찾기 위해 무척 노력했거든요.
○ 『자본』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이것은 마르크스가 과학에 대해, 특히 과학의 연구방법과 서술방법을 고민할 때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Einleitung”1857의 한 절을 ‘정치경제학 방법’에 할애했는데요. 여기서 이야기합니다. 정치경제학은 현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요. 당연한 말이지요. 과학이 주어진 현실 즉 현상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곧바로 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현상이란 그 자체로는 모호하고 혼돈스러운 표상일 뿐이라고요. 과학이 현상에서 시작하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현상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을 과학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물에 젓가락을 넣으면 구부러져 보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것은 분명히 구부러져 ‘보입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는 젓가락은 물에서 구부러진다고 쓰면 관찰, 그러니까 과학의 출발점은 될 수 있겠습니다만 과학적 성과로서 제시될 수는 없습니다. 현상에 대한 올바른 관찰이기는 하지만 현상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르크스의 생각을 따르자면, 물속에서 젓가락이 구부러져 ‘보이는’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난 일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과학입니다. 어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현상이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해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현상만을 보고 일상적 경험에 기초해 판단한다면, 마르크스가 다른 글에서 말한 것처럼 과학적 진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 되고 말 겁니다. 우리 눈에 뜨고 지는 것은 태양이지만 실제로 돌고 있는 것은 지구이고 물로 불을 끄지만 물에는 불타는 산소가 들어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누구나 현상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분석이 끝나면 이제는 현상이 생겨나는 순서와 방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레고블록 성채城砦가 있다고 해봅시다. ‘분석’이란 이것을 최대한 단순한 수준까지 해체해보는 일입니다. “최후에는 가장 단순한 규정에 도달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연구를 통해 여기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분석을 끝냈으면 이제 종합을 해야 합니다. 각각의 블록을 조립해 다시 성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순서로, 이런 식으로, 우리 눈앞에 있는 성채가 ‘산출’될 수 있음을 보여야 하는 거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결합방식을 바꾸면 다른 모양의 성채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까지 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참고로 ‘분석’analysis과 ‘종합’synthesis은 모두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인데요, ‘분석’은 끝까지ana- 풀어놓는다lysis는 뜻을 갖고 있고요, ‘종합’은 합쳐syn- 놓는다tithenai는 뜻을 갖고 있답니다.
레고블록 같은 물건들만 그런 게 아니고, 개념도 그렇습니다. 현실의 구체적 개념들은 온갖 규정을 담고 있어 아주 복잡합니다. 마르크스는 ‘인구’라는 개념을 예로 들었지요. 정치경제학자는 ‘인구’에 대한 분석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인구’를 규정하는 요소들은 다양합니다. 다양한 인구현상, 이를테면 인구의 증감이나 이동 등을 규정하는 요소들이 있겠지요. ‘계급’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인구’처럼 ‘계급’도 더 분석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임금’, ‘노동’, ‘자본’ 같은 규정이 그렇습니다. 이런 식으로 분석은 계속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단순한 규정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고는 이 단순한 규정을 다시 조립해 현실의 인구현상들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토머스 맬서트T. Malthus는 인구의 자연증가가 모든 빈곤의 원인인 것처럼 말했지만, 끔찍한 재난 때문에 인구가 급감한 곳에서도 ‘과잉인구 문제’는 있습니다. 19세기의 아일랜드 같은 곳이죠. 1841년과 1861년 사이 아일랜드 인구는 3분의 1이나 감소했습니다. 기아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많은 수가 이민을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인구는 여전히 너무 많아 보입니다. 도시에서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농촌에서는 경작민 수가 줄었는데도 땅에 비해 인구가 많습니다. 맬서스라면 인구가 너무 늘어나서 그렇다고 말해야겠지요. 그런데 인구의 절대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과잉인구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이 와중에 농업자본가의 이윤이나 지주의 지대수익은 크게 증가합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도시의 산업은 기계화되고 농촌에서는 토지집중과 경작지의 목장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3분의 1이 줄었는데도 사람이 많았지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분석을 통해 도달한 단순한 개념들을 종합하면서 이런 인구현상이 생겨나는 이유를 밝힙니다. 자본 축적과 인구 축적이 긴밀히 연계되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인구법칙이 있는 거죠. 생물학적으로는 인구가 감소해도, 산업이 그 상쇄 분을 넘는 잉여인구를 낳으면 ‘상대적 과잉인구’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인구들은 다른 시대에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움직임을 보이지요. 우리는 이 내용을 『자본』 제1권의 끝에 가서 볼 겁니다. 제1장 ‘상품’을 읽으면서 이것이 우리 시대의 인구현상과 관련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자본』의 끝에 가면 우리는 우리 시대의 구체적 인구현상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런 게 바로 과학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제2독일어판 후기에서 연구방식과 서술방식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연구 조사를 할 때는 현상을 세세히 파악하고 상이한 전개형태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의 연관을 탐지합니다. 하지만 서술할 때는 마치 미리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나는 연구순서와 서술순서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에 이를 때까지 분석하고 그 연관을 알아내는 것이 ‘연구’라면, 분석된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복잡한 현상들을 보여주는 것이 ‘서술’이라고요.
이 점에서 『자본』의 출발점은 중요합니다. 마르크스는 ‘상품’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이 시리즈의 1권 『다시 자본을 읽자』에서 나는 ‘현미경’ 이야기를 했는데요. 마르크스는 『자본』 서문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가장 단순한 형태, 즉 경제적 세포로서 ‘상품’을 지목합니다. 정확히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치형태’라는 말은 조금 뒤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요. 일단은 마르크스가 ‘상품’을 세포로, 다시 말해 출발점으로 지목했다는 점을 강조해둡니다. 말하자면 상품은 ‘부르주아사회’와 ‘자본주의’라는 성채를 구축할 때 출발점이 되는 가장 작은 블록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마르크스에게 상품은 출발점이지만 그 전에 도달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출발점은 연구의 도달점입니다. 연구가 이른 곳이 책이 시작하는 곳입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을 집필하기 전에 쓴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1857~1858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은 몇 권의 연구노트로 이루어졌는데, 연구노트의 마지막 권에 ‘1’이라는 번호가 붙은 짤막한 글이 있어요. 여기에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부르주아적 부가 나타나는 첫 번째 범주는 상품이다.” 연구노트의 맨 마지막에 이르러, 책의 처음에 써야 할 것으로 ‘상품’을 지목한 겁니다. 그러고는 여기에 책의 제1장에 들어갈 내용을 간단히 적었습니다. 마치 이제야 출발점을 분명히 알겠다는 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당시 출간된 저서인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와 『자본』1867에서는 ‘상품’을 제1장에 놓습니다. 공부를 하고 나서야 ‘마침내’ ‘출발점’을 찾은 거죠. ‘마침내’끝라는 말과 ‘출발점’시작이라는 말을 나란히 써두는 느낌이 기묘하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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