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위험한 안개: 대기 오염의 역사
첫 번째 사건: 1930년, 뫼즈 계곡의 안개
벨기에는 면적이 우리나라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지만, 1820년대에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산업혁명을 일으켰을 만큼 산업 개발에 일찍 눈 뜬 곳이다. 특히 남동부의 리에주Liège는 주요 산업도시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950킬로미터에 달하는 뫼즈Meuse 강이 프랑스와 네덜란드까지 뻗어 있어 물류에 유리했고, 산업혁명의 핵심 자원인 석탄과 철광석도 가득했다. 노동자들이 떼로 몰려와 20세기 초반에는 인구가 3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한 도시였다. 리에주에서 뫼즈 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약 25킬로미터 아래 위치한 위이Huy까지는 너비 1~2킬로미터, 깊이 60~80미터에 달하는 계곡이 있다. ‘뫼즈 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때부터 석탄으로 만든 고체 연료인 코크스cokes 생산 공장, 쇠를 강철로 만드는 제강 공장, 유리 공장, 아연 제련소 등 27개의 크고 작은 공장과 여러 마을이 자리 잡았다.
1930년 12월 1일, 짙은 안개가 벨기에 전체를 뒤덮었다. 뫼즈 계곡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람마저 고요한 탓에 안개는 시간이 흐를수록 짙고 어두운 색으로 변해갔다. 안개로 뒤덮인 첫날부터 이따금 들리던 주민들의 기침 소리는 사흘째가 되자 마을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닷새째인 12월 6일, 미동도 없는 묵직한 안개를 밀어낼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개가 걷힌 뫼즈 계곡은 이미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확인된 사상자는 총 6,000여 명. 그중 사망자는 60명에 달했다. 죽음의 안개가 계곡에 머문 닷새 만에 벌어진 대참사였다.
벨기에 정부는 즉각 사태 수습에 나섰다. 안개가 걷힌 12월 6일, 리에주 관할 검사가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약 40억 원에 가까운 예산25만 프랑을 책정하여 의학, 법의학, 공업화학, 독성학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로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안개가 걷힌 닷새 후, 엘리자베트Elizabeth 왕비는 직접 계곡을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조사위원회는 공장에서 사용된 30여 가지 물질에 대한 분석과 식수, 음식, 의복 등 의심 가는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기 시작했다.
조사위원회가 인터뷰한 주민들의 경험담은 거의 비슷했다. 안개가 정체된 지 사흘째 되던 날, 대기 상태가 가장 탁해지면서 후두부기도의 통증, 복장뼈흉골 뒷부분의 통증, 발작적인 기침과 메스꺼움이 심해졌다. 이 밖에 구토, 폐부종폐에 체액이 과도하게 쌓여 호흡이 곤란해지는 증상, 청색증혈관 내 산소 결핍으로 입술, 손톱, 귀, 광대 부위가 청색으로 보이는 증상 등을 겪은 이들도 있었다. 1930년 12월 7일과 11일, 사망자 60명 중 10명에 대한 부검 결과 기관지와 폐의 손상이 심각했다. 후두부와 기관지에서 출혈이 발견됐고, 특이하게도 폐포폐의 공기주머니에는 시커먼 검댕soot 입자가 빼곡이 박혀 있었다. 다른 장기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1931년 1월 17일, 조사위원회는 뫼즈 계곡 재난의 원인을 분석한 예비 보고서를 발표했고, 1931년 5월 19일에 벨기에 왕립의학원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다섯 달여에 걸친 대대적인 조사 결과, 뫼즈 계곡 사건의 주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났다.
첫 번째는 해당 지역의 오염된 공기였다. 뫼즈 계곡에서는 석탄을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값싸고 편리하니 공장뿐 아니라 주민들의 난방, 취사 등 석탄을 쓰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석탄에 함유된 ‘황sulfur’이 문제였다. ‘유황硫黃’이라고도 알려진 이 원소는 주로 화약, 농약, 고무, 염료, 의약품 등에 두루 활용되는데, 《구약성서》에 언급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다. 석탄을 태우면 황이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황SO2이라는 유독성 기체가 발생한다. 색이 없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썩은 계란 냄새를 풍기는 이산화황은 공기 중 0.05피피엠만으로도 노약자에게 기관지염을 발생시키며, 약 1피피엠이면 식물 잎사귀에 반점이 생기고 결국 말라 죽게 만들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뫼즈 계곡 회색 안개 속 이산화황의 농도는 약 9.6피피엠가량, 최고 38.4피피엠 정도로 추정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산화황은 공기 중의 수분과 결합해 황산H2SO4으로 변했고, 황산은 또다시 자극성이 4배에서 20배 더 강한 안개 상태의 황산미스트sulfuric acid mist로 변해 계곡을 샅샅이 메웠다. 황산미스트가 모여 빗방울을 이루면 산성비가 되고, 이 비를 맞으면 금속은 녹슬고, 대리석의 석회 성분도 녹아내려 건축물이나 예술품이 망가져버린다. 토양이나 호수, 늪을 산성화시켜 서서히 죽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당시 뫼즈 계곡의 황산미스트에는 석탄을 태워서 발생한 검댕까지 섞여 있었는데, WHO에서 발암물질로 분류한 검댕은 크기가 굉장히 미세해서 코 점막이나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포까지 들어와 박혀 있었다. 20세 청년도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닷새 동안 발생한 60명의 사망자는 주로 평균 연령 62세의 폐 질환 등 건강 이상 증세가 있던 노약자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숨 쉬는 것만으로 생명의 끈이 잘려나간 것이다.
뫼즈 계곡 사건의 둘째 원인은 당시의 기상 여건이었다. 평소와 같았더라면 골짜기를 따라 바람이 계속 불어야 했다. 그 바람을 타고 공장과 가정에서 뿜어져 나온 오염 물질도 흩날려 옅어져야 했다. 그러나 12월 1일부터 5일까지 닷새 동안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바람은 시속 1~2킬로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약하게 불었다.
더 큰 문제는, 지상에서 70~80미터 상공에 형성된 역전층inversion layer이었다. 일반적으로 대기권은 지표면으로부터 평균 100미터씩 높아질수록 섭씨 0.5~0.6도씩 온도가 낮아진다. 이를 기온 체감 현상이라고 하는데, 지표면으로부터 받는 복사에너지가 감소한 까닭에 발생한다. 차가운 공기는 무거워서 아래로 가라앉고 따뜻한 공기는 가벼워서 위로 떠오르는 기본 성질 때문에 일어나는 기온 체감 현상은 대기를 순환시킨다. 그러나 역전층에서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 온도가 올라가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아래쪽의 찬 공기와 위쪽의 따뜻한 공기가 서로의 위치에서 이동하지 않아 바람도 불지 않는다. 때문에 대기권에 역전층이 형성되면 상하층의 대기가 섞이지 않는다. 지상에서 발생한 매연 등 오염 물질이 상공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표 부근에 머물면서 점점 짙어지다가 안개까지 합쳐지면 스모그smog, 연기smoke+안개fog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역전층은 대기 오염의 주요인이다.
1930년 12월 1일부터 닷새 동안 뫼즈 계곡 상공에 형성된 역전층은 27개의 공장과 가정에서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유해 물질과 매연을 고스란히 안개 속에 끌어 담아 하늘 아래로 돌려보냈다. 뜻밖의 기상 여건이 만들어낸 죽음의 안개는 주민뿐 아니라 소를 비롯한 가축, 새, 쥐 등 하늘 아래 모든 생명체에 치명적 피해를 남겼다.
뫼즈 계곡 사건 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가 ‘오염된 공기’와 ‘기상 여건’ 두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제시하긴 했으나, 이는 벨기에 국민의 의혹을 충분히 풀어주지 못했다. 당시 기술 수준의 한계에 부딪혀 모두가 인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원인을 뒷받침해주는 과학적 실험 결과도 없었고, 대기 오염 물질도 확보하지 못했으며, 사망자 부검으로 얻은 정보도 충분하지 못했다. 조사위원회의 최종보고서 내용은 대부분 일반적인 가설과 개연성에 따라 도출한 내용으로, “호흡 곤란을 겪은 주민 대부분의 증세가 안개가 걷힌 후 2~3일 뒤에 호전되었으니, 안개가 원인일 것이다.”라는 식이었다. 최종 보고서를 인정하지 못한 유럽의 대학, 연구소, 학자 들은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원인 밝히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덴마크 출신의 과학자 카이 로흘름Kaj Roholm은 뫼즈 계곡 사건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는 1937년에 발간한 저서 《플루오린 중독: 임상학적·위생학적 연구Fluorine Intoxication: A Clinical and Hygienic Study》로 해당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찬사 받았던, 당대 최고의 플루오린불소 연구 권위자였다. 로홀름은 같은 해인 1937년에 논문 〈1930년 뫼즈 계곡 안개 참사: 플루오린 중독The Fog Disaster in the Meuse Valley, 1930: A Fluorine Intoxication〉을 통해 뫼즈 계곡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석탄이 아닌 플루오린 가스를 지목했다.
그는 뫼즈 계곡의 여러 제련소와 유리 제조 공장에서 사용한 광물인 형석fluorspar, CaF2을 의심했는데, 플루오린이 40퍼센트 이상 섞여 있는 형석은 금속을 제련할 때는 불순물 제거용으로, 유리 제품을 생산할 때는 흰 빛이 나게 하는 유약 첨가물 등으로 쓰이던 필수 광물이었다. 문제는 형석을 자칫 잘못 다루었을 경우 ‘사플루오린화 규소SiF4’라는 무색의 독성 가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다량 흡입할 경우 급성 중독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로홀름은 뫼즈 계곡에 안개가 가득했던 첫날에는 이 독성 가스의 농도가 낮아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었으나, 사흘째에는 안개와 혼합되어 급성 중독을 일으킬 만큼 고농도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뫼즈 계곡 사건 조사위원회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석탄과 플루오린 둘 다 뫼즈 계곡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뫼즈 계곡에 대한 로홀름의 연구 덕분에 자연 상태의 플루오린과 충치 예방을 목적으로 수돗물에 첨가되는 플루오린의 영향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로홀름은 수돗물에 플루오린을 첨가하는 것을 반대했다.
애초에 두 번째 원인으로 지목된 뫼즈 계곡의 당시 기상 여건, 즉 안개는 죄가 없었다. 주민들은 과거에도 안개가 계곡을 가득 메우고 며칠씩 머물다 가는 경우가 드물게나마 분명히 있었다고 증언했다. 리에주에서 약 9킬로미터 떨어진 코엥테Cointe 시의 기상 관측소 자료를 보아도 지난 40년간 뫼즈 계곡이 사흘 넘게 연이어 안개에 갇혀 있던 사례가 12차례 관측된 바 있었다. 뫼즈 계곡 사건 이후, 회색 안개는 걷혔지만 마을 주민 중 심장과 폐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기타 질환을 포함한 전체 사망률도 다른 지역에 비해 10.5배 이상 높아졌다. 닷새 동안 나타난 회색 안개는 누적된 대기 오염을 방치한 결과가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였다. 주민들 스스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산업혁명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의 인명 피해를 입힌 뫼즈 계곡 안개 사건은 결국 ‘세계 3대 대기 오염Air Pollution 사건’에서 가장 상위에 놓이게 되었다. 산업화의 시작으로 화석 연료와 광석을 대량 사용하면서부터 스모그 형태의 대기 오염 또한 산업화의 동반자가 되고 말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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