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살아서 박복했던 아버지는 그래도 죽음만큼은 유순하게 길들일 줄 알았나보다. 이렇다 할 병색도 없이 갑자기 식욕을 잃더니 보름만에 숟갈을 아주 놓아버린 것이었다. 마지막 삼일은 계속 혼수상태였다. 의사는 폐가 나빠서 노환이 좀 빨리 온 것이라고 했다. 미음을 입안에 흘려넣어봤지만, 이미 소화기관은 기능을 잃고 항문의 괄약근은 맥없이 풀려 번번이 설사였다. 결벽증이다시피 유난히 깔끔했던 아버지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도 설사가 나올 기미이면 소스라치게 놀라 깨면서 좌변기를 찾곤 했는데, 그렇게 서너번 시달리고 난 후로는 미음도 거절하고 차분히 죽음을 맞이할 차비를 하던 것이다.
가쁜 숨 속에 신음 소리가 낮게 실려 있었지만 당신의 얼굴은 평온했다. 낮은 신음 소리는 마치 모닥불이 꺼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는 소리처럼 들렸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죽음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나는 육년 전 아버지가 당한 그 끔찍한 교통사고를 떠올렸다. 과다한 출혈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아버지, 대퇴부와 오른쪽 허벅지 뼈의 심한 골절로 영영 앉은뱅이의 비참한 몰골로 오그라붙을 때까지 당신이 겪었던 고통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었다. 죽음의 고통은 이미 그때 치러버렸기에 그래서 저렇게 평온한 것일까? 생과 늘 불화를 일으켰던 당신은 이제 죽음과는 더없이 화해로운 모습이었다. 이것은 실패자가 최후로 쟁취한 승리가 아닌가.
감사와 회환의 감정에 젖어 있던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트 속으로 손이 들어가 아버지의 발바닥을 주무르며 안마하고 있었다. 중학생 때 나는 아버지가 잠자리에 들면 그렇게 조몰락조몰락 발을 안마해드리곤 했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 일이 나중에는 지겨운 나의 의무가 되어버렸고, 순종적이던 중학생이 반항적인 고교생이 되어 제 아비를 무분별한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말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아버지가 겪은 생과의 불화 가운데에서 내가 저지른 불효의 몫도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시던 날, 나는 두 아우와 함께 수의를 입히기 앞서 향 삶은 물로 시신을 깨끗이 정화시켰다. 영혼을 벗어버린 시신은 뻣뻣하게 굳어, 한토막의 마른 등걸처럼 이미 물질로 돌아가 있음을 실감케 했다. 바싹 말라 뼈가래는 앙상하고 피부는 마른 명태 껍질처럼 광택을 잃고, 골절상을 입었던 아랫도리는 몹시 뒤틀려 있었다. 그 서러운 몸을 향물로 정성껏 닦던 나는 마지막으로 두 가랑이 사이로 손이 갔을 때, 그만 격정에 못 이겨 후둑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성기, 그 부위를 닦을 때의 감촉과 긴장감은 삼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나의 존재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너무 자명하여 오히려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그것이 그 순간 엄청난 무게의 실감으로 나를 압도했던 것이다. 존재의 한점 씨앗, 나라는 존재의 우연을 발생시킨 그곳, 그러나 그 생명의 원천은 이제 폐허로 돌아가 있었다. 그 폐허가 아버지의 죽음, 그의 영원한 부재를 예리한 통증으로 나에게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조만간에 찾아올 내 죽음의 실체도 함께 느끼게 했다.
그동안 허다한 죽음들을 보고 들어왔지만, 그때처럼 죽음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막연한 추상으로 먼 곳에 머뭇거리던 죽음이 어느날 급습하여 아버지의 몸을 관통해서,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예리한 통증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부친의 영전에서 맏상제로서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필경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아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가셨으니 다음은 내 차례로구나, 하는 각성이 나의 폐부를 아프게 찔렀던 것이다. 탄생은 우연일지라도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는 것.
그러나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음이 인간 개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죽어서도 내 마음 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그것을 증거한다.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내 의식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데 마치 당신이 내 마음속으로 이사해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 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신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라산 기슭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촌들과 함께 어렵사리 마련한 그 묘역에는 백부가 먼저 들어와 누워 있었는데, 그 옆으로 한 자리 떼어놓고 두 번째 봉분이 생긴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봉분으로부터 발걸음으로 거리를 재어 장차 내가 묻힐 자리에 서보았다. 그러자 내 눈길이 자연스럽게 대학 1학년짜리 큰아들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나는 야릇한 감회에 훅, 하고 웃음을 날렸다.
묘역은 전망이 좋았다. 산록의 고지대인지라 구름은 흰 명주필처럼 낮게 흐르고 질펀한 푸른 들판과 부드러운 능선의 오름들, 그리고 드넓은 하늘과 바다가 멀리 수평선에서 만나 서로 푸른빛을 다투는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대자연의 풍광에 어느덧 슬픔은 증발해버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망자의 유택이 이렇게 호사스러울진대, 죽음을 슬퍼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육신을 떠난 아버지의 영혼이 흰 만장처럼 가벼이 떠 있는 저 구름 속에 실려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의 죽음도 매우 임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길 건너에 높다랗게 자란 삼나무 한그루가 가족 묘지 앞의 탁 트인 전망을 그르치고 있길래 타고 올라가 나무의 상단부를 톱질로 잘라봤는데, 그 별것 아닌 일이 어찌나 힘들던지 헛구역이 다 나왔다. 과연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내 나이 오십,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적어졌다는 냉엄한 사실을 나는 그날 온몸으로 수락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죽음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쳐 내 심경에 일정한 변화가 왔다. 종종 방심 상태에 빠져들어 지나온 날들을 더듬어보는 버릇이 생기고, 고향을 찾는 발길도 전보다 더 잦아졌다. 물론 갇힌 섬 땅, 그 수평선을 뚫고 세계로 나아갈 꿈을 키우던 소년, 그 문턱에 장애물로 서 있는 제 아비를 박차고 나아갔던 그 소년이 이제 심신이 피로한 중늙은이가 되어 다시 모태로의 회귀를 시험해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고 다만 잊혀진 어린 시절을 글 속에서 다시 한번 살아보자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과거란 오직 고향 땅에서 보낸 유소년 시절만이 광휘를 발할 뿐, 나머지 세월은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처럼 여겨진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객담 하나 섞어보자. 우리는 매일매일이 단 하루의 경험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살고서 과연 일생의 시간을 다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하루의 삶이 아닐까? 기억에 남아 있는 시간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과거이므로. 우리가 비교적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늘이란 시간뿐이다. 과거는 눈부신 오늘의 양광에 바래어, 어제는 오늘의 절반, 또 그끄제는 그제의 절반…… 이런 식으로밖에 기억이 안된다면, 무한등비수열의 합의 공식에 의해, 살아 있는 과거, 즉 우리가 살아 있던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 반분을 조금 상회할 계산이 나온다. 독자들이여, 제발 내가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욕하지 마시기를. 이 궤변을,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다만 오늘의 태양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오늘의 밝은 태양보다 망각된 과거가 더 중요하다.
나는 요즘 고향에 내려가면 망각의 어둠속에 묻힌 과거의 단편들을 건져보려고 들판과 바닷가를 이리저리 헤매다닌다. 지금은 행인의 발자취가 끊긴 용연못으로 가는 오솔길을 풀숲 속에서 찾아내 걸어보고, 그 근처 가스락당(堂)의 해묵은 팽나무 뒤에서 붉은 열매들이 다닥다닥 붙은 보리수를 다시 찾아내 쾌재를 부른다. 나의 유년과 소년이 투영된 자연 속의 사물들, 나는 거기에서 잊혀진 나의 어린 자아를 되찾아보는 것이다. 내 심신의 성분 구조 내에는 자연 속의 숱한 사물들과 풍광이 용해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만이 나를 키운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어미의 젖은 생후 몇 개월 만에 뗐지만, 그 대신 나는 자연에 젖줄 대고 성장한 셈이다. 어미 몸에서 갓 나온 송아지가 땅에 닿자마자 곧 와들랑 몸을 일으켜 서는 것을 보고 마치 대지의 분출로 송아지가 탄생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만, 아무튼 고향 땅의 자연은 내 자아 형성에 매우 중요한 몫을 했음이 분명하다. 자연의 일부였으므로 부끄럼 없고 죄 없이 무구한 시절, 그리하여 나에게 그 시절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세월은 모두 거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섬 땅에서 정작, 내가 태어나 그 탯줄을 묻은 함박이 굴 마을은 지금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메타포를 통해서 세상 보는 일에 익숙한 글쟁이여서 그런지, 1948년 토벌대의 방화로 소진된 이래 그 부락은 오직 검은 재의 폐허로만 내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물론 중간에 그곳을 찾아가 검은 재의 폐허가 푸른 곡식밭으로 변해 있음을 확인한 바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 눈에 익은 것이라곤 남의 보리밭이 되어버린 집터 한쪽에 서 있는 신우대 숲과 골목 어귀의 배롱나무뿐이었다. 무슨 말을 웅얼거리는 듯 바람에 휘적이는 대숲 소리와 저 홀로 피어 부질없이 화사한 배롱나무의 붉은 꽃무더기는 오히려 그곳이 초토임을 더욱 강조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무서운 1948년의 초토의 불길과 함께 내 존재의 일부도 불타버린 듯한 상실감을 어쩌지 못한다. 막막한 어둠뿐인 장소, 거기에서 보낸 내 생애의 최초 육년도 먹칠로 지워져버린 듯한 느낌인 것이다. 물론 이 어둠의 고정관념은 진실이긴 하지만, 생리적인 망각 작용에 의해 다분히 과장된 것이 틀림없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시기인지라 사고 또한 미발달 상태에 있었다. 아무튼 나는 검게 탄 폐허의 어둠과 망각의 어둠을 동시에 뚫고 들어가 죽어 있는 그 부락을 되살리고 잊혀진 나의 유년을 다시 만나봐야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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