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불멸
나는 긴 비문碑文을 쓰려 해, 읽으면
갈잎 소리 나는 말로 쓰려 해
사나운 눈보라가 읽느라 지쳐 비스듬하도록,
굶어 쓰러져 잠들도록,
긴 행장行狀을 남기려 해
사철 바람이 오가며 외울 거야
마침내는 전문을 모두 제 살에 옮겨 새기고 춤출 거야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 나는 매해 봄내 비문을 읽을 거야
미나리를 먹고 나와 읽을 거야
나는 가장 단단한 돌을 골라 나를 새기려 해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해
이웃의 남는 웃음이나 빌려다가 펼쳐 새기려 해
나는 나를 그렇게 기릴 거야
그렇게라도 기릴 거야
입춘 부근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파란 돛
바다는
어디서부터 가져온 파도를 해변에, 하나의 사소한 소멸로써
부려놓는 것일까
누군가의 내부를 향한 응시를
이 세계의 경계에 부려놓는 것일까
바다는 질문만으로 살아오르고
함성을 감춘 질문인 채 그대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천상 돛을 하나 가져야겠기에
쉬지 않고 사랑을 하여
파란 돛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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