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요. 그 관계들은 종종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깁니다. 미세먼지가 천식을 유발하고 석면이 폐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우리가 관계 속에서 겪는 차별과 같은 사회적 폭력 역시 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사회역학은 그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미세먼지나 석면 노출을 측정하는 일에 비해, 차별 경험을 측정하는 일은 인간의 사회적 경험을 측정한다는 점에서 더 예민하고 어렵습니다.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경험해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차별 대우에 만성적으로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그런 판단을 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인지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한 차별 경험들은 우리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요? 그 시간들은 우리 몸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말하지 못한 차별 경험, 기억하는 여성의 몸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를 진행하던 때입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때문이었습니다.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는지를 묻는 이 질문에 설문 참여자는 ‘예, 아니요, 해당사항 없음’ 이렇게 세 가지 대답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대답은 아직 구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었지요.
그런데 직장인 152명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미 취직한 사람들이니까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예’ 아니면 ‘아니요’라고 답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로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것일까요?
저는 이 문제를 통계적 추론으로 접근했습니다. 차별 경험을 묻는 질문에 ‘예’ 또는 ‘아니요’로 답한 노동자 3,442명의 연령, 학력, 소득 수준, 고용 형태,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할 확률을 계산하는 통계 모형을 만들고, 이 모형을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이들에게 적용해봤습니다.
결과는 성별에 따라 명확하게 나뉘었습니다. 남성 노동자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했을 때 그 대답은 ‘아니요(구직 과정에서 차별받은 적이 없다)’를 뜻했습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가 같은 답을 했을 때 그것은 ‘예(구직 과정에서 차별받은 적이 있다)’라는 뜻에 가까웠습니다. 같은 대답이지만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구직 과정에서의 차별만이 아니었습니다. 월급을 받는 과정의 차별 경험을 측정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성의 ‘해당사항 없음’은 차별을 받았다는 뜻이었고, 남성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습니다. 이 결과는 여성 노동자가 구직 과정에서 혹은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남성에 비해 더 어렵고 예민한 일임을 보여줍니다. 차별 경험을 인지하고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여성 노동자에게는 심리적으로 더 힘든 일이기에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대답을 대신해서 선택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연구에 이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차별 경험과 자가평가 건강self-rated health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았습니다.(그림1) 남녀 모두 차별을 경험한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더 많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이번에도 남성과 여성이 전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남성의 경우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변한 사람들과 차별받지 않았다고 답변한 사람들의 건강 상태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팠습니다. 심지어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한 사람들보다 건강 상태가 더 나빴습니다. 차별을 경험했지만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변했던, 자신의 차별 경험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가장 많이 아팠던 것입니다.
말하지 못한 학교 폭력, 기억하는 남성의 몸
그로부터 몇 년 뒤 저는 연구실의 박사과정 김지환 학생과 함께 2012년에 진행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분석하다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다문화가정 청소년 3,627명을 대상으로 어떤 형태의 학교 폭력(욕설, 집단 따돌림, 성희롱, 갈취 등)을 겪고 있는지를 질문하고, 그런 경험들이 우울증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본 연구였습니다. 제 연구의 주된 관심은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이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따라 우울증상 발생 위험에 차이가 있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친구, 부모님, 선생님 등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경우였습니다.
첫 분석 결과는 놀랍지 않았습니다.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우울증상 유병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7배,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학생들이나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학생들에 비해 2배가량 우울증상 유병률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남녀를 나눠서 분석하자 새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그림2)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학생들의 우울증상 유병률에 대한 결과가 성별에 따라 달라진 것입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여학생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여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우울증상 유병률에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대답한 여학생들은 경험했던 학교 폭력이 비교적 경미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놀라운 결과는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말한 남학생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남학생들은 모든 집단 중에서 가장 많이 아팠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남학생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우울증상 유병률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가장 많이 아픈 것으로 나타났던, 학교 폭력을 경험한 후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학생들보다도 우울증상 유병률이 더 높았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변한 남학생들은 학교 폭력에 노출되고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그 상처를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학교 폭력을 경험한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같은 대답이지만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의 경우, 그 말이 사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너무 괴로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남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아팠을까요? 상처받았고 괴롭지만, 스스로에게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애써 노력했던 것이 오히려 더 큰 아픔의 원인이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남자가 힘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남자라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그들은 ‘강한 남자’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인 것일 수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지 때문입니다
차별 경험과 건강에 대해 연구하는 하버드보건대학원의 낸시 크리거Nancy Kriger 교수는 설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차별과 같이 예민한 경험을 측정할 때는 차별을 경험하는 것Experienced discrimination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것Perceived discrimination, 그 인지한 차별을 보고하는 것Reported discrimination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형태의 차별을 경험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차별로 인지하지 못하고, 또 차별을 인지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연구자에게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실험 연구는 미국사회에서 약자인 흑인, 여성, 아시아인들이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연구는 설명합니다.
구직 과정의 차별에 대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여성 노동자와 학교 폭력에 대해 ‘아무 느낌 없다’라고 답한 남학생은 모두 자신이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거나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차별을 겪고도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한 여성 노동자들은 차별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팠습니다. 학교 폭력을 겪은 후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했던 다문화가정 남학생들 또한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포함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팠습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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