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대체 이게 무슨…?”
기타무라 다이이치는 귀를 의심했다.
1982년 봄, 도쿄 긴자의 커피숍.
눈앞에는 1차 남극 월동대 동료였던 무라코시 노조미가 앉아 있다. 무라코시에게 들은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커피숍 내부의 습도가 올라간 것 같았다.
1957년부터 1958년까지 실시된 1차 남극 관측 월동.
기타무라와 무라코시는 일본 최초의 월동 대원으로 남극 쇼와 기지에서 엄혹한 1년을 보냈다. 당시 기타무라는 교토 대학 대학원생으로 오로라 관측 담당이면서 썰매 끄는 개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기상 담당이던 무라코시는 매일 면밀한 기상 관측 기록을 남겼다. 무라코시는 기타무라보다 다섯 살 많았으나 두 사람은 마음이 잘 맞아 저녁 식사 후에도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남극에서 관측하는 오로라의 웅장함, 남극 기상 관측의 어려운 점 그리고 저녁 메뉴 별점 매기기…. 특히 가라후토견에 관해서는 날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었고 기타무라는 그날 일어난 일을 열심히 무라코시에게 전했다. 무라코시는 기지 안에서 정점 관측일정한 곳에 머물며 기상과 해양 등을 관측하는 일을 하는 기상 담당이었기 때문에 기지 밖에서 썰매 끄는 개들을 만날 기회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늘 온화한 표정으로 기타무라의 열변을 들어주곤 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기타무라는 초고층 지구물리학을 연구하는 규슈 대학 조교수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의 무라코시와 재회는 도쿄에서 열린 모임에 참가했던 어느 저녁의 일이었다. 이날도 기타무라는 가라후토견 타로와 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남극에 남겨진 채 1년간 생존해 인간과 재회를 이룬 형제 개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전국의 신문들이 1면 톱으로 실었고 미디어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잠시 후 나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무라코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기타무라 군, 실은 할 이야기가 있네. 타로와 지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큰맘 먹고 물어보겠네만.”
뭐지? 무라코시의 표정이 진지하다.
“1968년, 그러니까 14년 전의 일이야. 쇼와 기지에서 가라후토견의 사체가 한 구 발견되었네. 자넨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가라후토견의 사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뜻이냐고?’
“아…, 역시 몰랐나 보군.”
무라코시는 당혹스러워하는 기타무라의 표정을 보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무라코시 선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무라코시는 깊은숨을 쉬며 팔짱을 끼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계속 입술을 핥았다.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그래? 역시 몰랐다는 말이군. 그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이야기해 주지.”
1958년 2월 11일. 1차 월동대는 남극 관측선 소야호에 전원 철수하였다. 열다섯 마리의 가라후토견은 2차 월동대와 함께 계속 활동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쇼와 기지에 묶어 둔 상태였다. 그러나 악천후가 회복되지 않았고 급기야 24일에는 2차 월동 포기를 선언하게 되었다. 그 순간 가라후토견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극한의 공간에 남겨지게 되었다. 개들의 운명은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1년 후인 1959년 1월 14일, 3차 관측대가 쇼와 기지에 도착했을 때 무려 두 마리의 개가 살아 남았다. 타로와 지로다. 그 개들은 확인한 사람은 기타무라였다. 남극에서 개들은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그 개들을 위해 진심 어린 장례를 치러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타무라는 3차 월동대에 지원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살아 있는 타로와 지로를 보았을 때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두 마리를 끌어안고 설원을 뒹굴었다. 믿기 어려운 이 뉴스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일본은 환희로 들끓었다. 당시 거의 모든 일본인은 ‘남극 월동대’라는 말에서 ‘타로와 지로’를 떠올렸다. 그 이외의 것들은 거의 모른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타로와 지로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비참했다. 남은 열세 마리 중 일곱 마리는 눈얼음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중 한 마리를 해부한 결과 ‘완전 아사’였다. 체중은 대원들이 떠난 시점의 반으로 줄어 있었다. 여섯 마리는 목줄 또는 그 밖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최종적으로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 두 마리는 기지에 생존, 일곱 마리는 사망 그리고 여섯 마리는 행방불명.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친 정설이었다.
“어린 타로와 지로 형제만 기지에 머물면서 사력을 다해 서로 의지하고 도와 열악한 남극에서 살아남았다. 그 스토리를 우리는 오랫동안 믿어 왔지.”
“그런데 쇼와 기지에서 또 다른 개의 사체가 발견됐다고요?”
확인하듯 기타무라가 되물었다.
“그렇다네. 그러니까 기지에는 제3의 개가 있었던 거야. 타로, 지로와 함께.”
14년 전에 발견된 것을, 세상에, 이제야 알게 되다니!
깊게 한숨을 내쉬며 기타무라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개의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9차 관측대 대원이었어. 우연히 나도 그 근처에 있다가 달려갔지.”
남극 관측대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남극 기지에 함께 들어가 단기간만 머물다 귀국하는 통칭 ‘하계 연구팀’과 그대로 1년 동안 머무르며 연구하는 ‘동계 연구팀월동대’이다.
1968년 1월 남극에 도착한 9차 관측대는 옵서버를 포함해 하계 연구팀 열여섯 명, 동계연구팀 스물아홉 명의 대가족이었다. 무라코시는 하계연구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해는 남극의 기온이 높아서 눈이 많이 녹았어. 그래서 눈에 묻혀 있던 개의 사체가 드러나게 된 거야.”
“왜 저한테 곧장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비상 상황이었어. 4차 월동 당시 조난되었던 후쿠시마 신 대원의 시신이 그때 발견되었거든. 자네도 알지 않나?”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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