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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여주는 창, 그림책
어린이들이 보는 그림책은 창window에 비유할 수 있다. 세상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유아들은 그림책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림책의 그림은 실물이 아니라 이차원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모가 그것의 이름을 부르고 유아가 그 언어와 이미지의 대응 관계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세상은 그들의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간다.
이 비유를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는데, 《창 너머》찰스 키핑/글, 그림와 《아침에 창을 열면》아라이 료지/글, 그림이다.
우선 《창 너머》를 살펴보자. 앞뒤 표지를 펼치면 레이스 커튼 사이의 창을 통해 얼굴을 반쯤 내민 소년이 크게 뜬 오른쪽 눈으로 독자를 응시한다. 그리고 면지의 전면全面은 흰색 레이스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고, 표제지에는 표지에 등장했던 큰 눈의 소년이 방 왼편에 놓인 의자에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오전의 햇살에도 불구하고 실내에 있는 가구와 사물의 윤곽은 흐릿하다.
본문 첫 장면에서 서술자는 이 소년의 이름이 ‘제이콥’이며, 그가 2층 거실에서 볼 수 있는 길이 그에게는 유일한 세상이고, 그가 아는 모든 세상이라고 말한다. 창 오른편 외에는 해군 군복을 입은 남자의 액자가 걸려 있는데, 액자 속의 인물은 아마도 해군에 복무하는 그의 아버지를 그린 것 같다. 커튼 사이로 맞은편 교회 건물 위의 십자가 그림자가 소년의 이마에 뚜렷하게 비친다. 이 교회에서 사람들은 결혼식도 하고 장례식도 했다. 아마도 제이콥은 창을 통해 인간의 가장 행복한 시간과 슬픈 시간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다음 장면에서는 더 많이 열린 커튼 사이로 교회 건물의 전면이 보인다. 이후부터 그림은 제이콥이 커튼을 열어젖힌 만큼의 거리 풍경을 보여주는데, 전반적으로 푸르고 붉은 색조로 그려진 거리의 풍경은 음울한 느낌을 준다.
제이콥은 교회와 꼬부랑 할머니가 사는 집의 문, 양조장, 알프네 과자가게 다음에 집밖으로 나온 꼬부랑 할머니와 그의 비쩍 마른 개, 청소부 위레트 씨, 양조장 짐마차, 제이콥과 또래로 보이는 소년 조지가 차례로 지나가는 것을 본다. 제이콥은 사람들에게 침을 뱉곤 하는 조지를 싫어하지만, 알프네 과자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갑자기 두 마리의 흰색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양조장을 뛰쳐나온 말들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마부와 양조장 사람들이 입을 벌린 채 그 말들을 쫓아가고 위레트 씨와 꼬부랑 할머니가 그 뒤를 따른다.
소년은 이 긴박한 사건들을 커튼 사이로 훔쳐보면서 자신은 2층에 있으니 안전하다고 안도한다. 조금 후 마부가 말들을 제어하여 돌아오지만, 꼬부랑 할머니는 축 늘어진 개를 안고 슬퍼하고 있고 개의 몸에는 붉은 상처가 여럿 보인다. 그다음 장면에서는 꼬부랑 할머니에게 마부가 두 손을 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고 그 뒤에는 다섯 명의 양조장 사람이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제이콥은 “우리 개가 말과 싸운 걸 거야. 분명히 그랬을 거야.”라고 애써 불안함과 두려움을 숨기려 한다. 이제 엄마가 차를 끓이려고 2층으로 올라올 시간이다. 소년은 유리창에 입김을 ‘후~’ 불고는 할머니가 개를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다. 할머니와 개가 함빡 미소 짓고 있는 손그림에서는 눈물처럼 물이 흐른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의 분위기는 《창 너머》와는 사뭇 다르다. 표지에는 화병에 꽂힌 흰 꽃과 붉은 꽃이 가득하고, 표제지에는 하단에 분홍빛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밝은 빛깔의 커튼이 창에 드리워져 있다.
본문 첫 장을 열면 화면을 가득 채운 진초록의 높은 산과 산기슭 아래로 붉은 지붕의 작은 집, 그리고 활짝 열린 창이 보인다. 두 팔을 뻗어 창을 활짝 열고 있는 인물은 그 형체가 너무 작아 주의 깊은 독자가 아니면, 인지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 시 그림책은 “아침이 밝았어요. 창문을 활짝 열어요.”라고 시작되며 일곱 개의 연stanza으로 구성되었고, 각 연의 내용과 대응되는 풍광의 그림이 차례로 펼쳐진다. 높은 산과 나무, 차와 사람으로 북적이는 도시, 유유히 흐르는 강과 강에서 뛰노는 물고기, 따듯한 햇살이 내려앉은 집 앞 흙길, 구릉 위의 밭, 푸른빛 바다.
독자들은 이야기 중간 이후에야 비로소 처음에 그 형체를 알 수 없었던 인물이 실은 아주 작은 소녀였음을 알게 된다. 이 작은 소녀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유리창을 활짝 열고 밖을 보는 중이다. 그리고 그 뒤 식탁 위에 소박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는데 물컵이 두 개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소녀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한다.
그렇다. 이 시를 읊고 있는 화자는 바로 소녀이다. 그리고 이 시에 그려진 다채로운 그림은 대부분 소녀의 상상이거나 소녀의 기억으로 그려진 것이다.
시의 한 연은 “아침이 밝았어요. 창문을 활짝 열어요.”로 시작되고, 항상 “나는 (혹은 우리는) 이곳이 좋아요.”로 마무리된다. 그 목소리는 만족감과 기쁨이 충만하다. 그곳이 높은 산이든, 마을이든,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든, 시골길이나 유유히 흐르는 강이든, 꽃이 가득한 정원이든, 바다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조 세계는 그 자체가 소녀에게 기쁨이다.
“바다는 오늘도 저기에 있고 하늘도 역시 저기에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
소녀는 집 안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와 나무 그늘에서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즐거워하고, 때로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그쪽 마을은 날씨가 맑게 개었나요?”라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소녀가 사는 바닷가 마을과 흰구름이 둥실 떠 있는 맑은 하늘, 파란 바다가 펼쳐진 그림의 마지막 장면에서 또다시 반복되는 “창문을 활짝 열어요.”라는 목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다음은 당신 차례에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창 너머》와 《아침에 창문을 열며》가 독자에게 보도록 허락하는 세상에는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 전자는 자신의 집 앞 골목에서 벌어진 외로운 할머니의 개의 죽음을 그렸고, 후자는 다채롭고 약동하는 창조 세계를 보여준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전자는 닫힌 세상이며 후자는 열린 세상이다. 이것은 보는 방식과 깊이 맞물려 있다.
제이콥은 자신이 칩거하고 있는 2층 거실에서 길 위의 사람들과 사건을 커튼 사이로 내려다보고 있으며, 독자 또한 그가 열어놓은 커튼 사이로 보이는 세상만을 보게 된다. 그러나 후자에서 소녀의 시야는 산과 들과 도시와 정원과 바다로 확장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그들의 창문을 열어 세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라고 촉구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소녀는 제이콥처럼 유리창을 통해 밖을 보지 않는다. 창을 활짝 열고 직접 우주의 공기와 햇빛을 한껏 맛보고, 결국에는 집밖으로 나와 바닷가의 높은 야자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대자연과 하나가 된 소녀는 “오늘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나무 그늘이 내 방이에요. 언제나 살랑살랑 바람이 불지요. 역시 나는 이곳이 좋아요.”라고 노래한다.
제이콥의 세상은 모호함과 불안감,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이 이름 모를 소녀의 세상은 환희와 기대와 기쁨으로 충만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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