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중국 진나라 때 권력에 눈이 먼 조고라는 환관이 있었다. 어리석은 황제를 꼬드겨 승상이 된 후 어전에 사슴 한 마리를 끌어다놓고 말이라고 불렀다. 그의 권세를 두려워한 많은 신하들이 말이라고 맞장구쳤지만,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도 있었다. 조고는 거짓으로 죄를 덮어씌워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2022년 9월 22일 오전 9시 25분.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목요일 임원회의가 한창 진행 중인 시간이었다. 벨소리에 놀란 임원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난 핸드폰을 황급히 진동모드로 바꾸며 발신자를 확인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었다.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지는 않았지만 궁금증이 일었다.
‘무슨 일이지? 지금 김 수석은 뉴욕에 있을 텐데.’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에 초청받아 런던에 들렀다가 뉴욕으로 이동한 직후였다. 홍보수석은 당연히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장례식만 참석하고 정작 여왕 시신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서 조문하지는 않아 ‘조문 없는 조문외교’ 논란이 일고 있었다. 뉴욕에서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이 과연 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언론이 주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MBC 사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안부를 묻는 전화는 아닐 게 확실했다.
김은혜 수석과 나는 MBC 입사 동기라서 30년째 편하게 지내는 사이다. 기자 시절부터 그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고 나는 ‘은혜야’ 하며 부를 정도였다. 김 수석이 2007년 MBC를 떠나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을 지내던 시절에도 우린 가끔씩 얼굴을 보며 지냈다. 그가 청와대를 나와 KT 임원과 MBN 앵커를 거쳐 국회의원이 됐을 때까지는 오히려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만나면 서로 근황을 묻고 차 한잔하는 정도였지만 기본적인 신뢰 관계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그가 윤석열 캠프의 공보단장으로 합류한 뒤부터 우리는 편하게 안부를 묻는 통화는 불가능한 사이가 됐다. MBC에서 대선 후보 토론이 있을 때마다 윤석열 후보를 수행하던 그와 나는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며 서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서 김건희 여사의 녹취록을 보도하기 며칠 전, 김은혜는 내게 보도 내용에 김건희 여사 측의 반론을 충실히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사장은 프로그램 내용에 관여하지 않으니 제작진에게 정식으로 요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했다. 얼마 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됐고 김은혜는 경기도지사 후보를 거쳐 대통령실 홍보수석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공영방송 사장과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통화하거나 따로 만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우리 둘 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1분 뒤, 다시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이번에도 발신자는 김은혜 수석이었다. 나는 역시 받지 않았지만 그가 두 번이나 국제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만으로 매우 급박한 용건이라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9시 45분, 임원회의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그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그쪽에서 받지 않았다. 뉴욕에서 대통령의 외교 일정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가 터진 걸까? 이리저리 추정을 해보다 나는 곧 결재서류를 검토하는 일상적인 업무에 빠져들었다. 1시간쯤 뒤, 비서팀장이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MBC 뉴스 유튜브 채널 혹시 보셨는지요?”
“아니 못 봤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에서 한 발언 때문에 기사가 났는데 엄청난 속도로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급히 유튜브를 열어봤다. ‘오늘 이 뉴스’라는 타이틀에 「카메라 켜진 줄 모르고?」라는 제목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한 뉴스가 업로드되어 있었다. 댓글은 이미 수천개가 붙어 있었다. 동영상을 보니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48초간 환담을 나눈 윤 대통령이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안보실장 등과 회의장을 나서며 한 발언이었다. 카메라에 찍히는 줄 모르고 한 발언이었지만 분명히 사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발언 내용은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였다. 내 귀에도 그렇게 들렸다. MBC는 ‘새끼’라는 비속어만 ‘××’로 바꾸고 들리는 그대로 표기한 자막을 달았다. 아무리 비공식 발언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말이라고 하기엔 귀를 의심할 만한 저속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유튜브 댓글란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보나마나 큰 비난 여론이 일게 뻔했다. 비로소 김은혜 수석이 다급하게 국제전화를 한 이유가 짐작이 갔다. 몇가지 궁금한 점이 생겨서 박성호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 발언은 MBC 출입기자들만 확인한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모든 발언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전체에게 공유됩니다. 뉴욕에서 함께 화면을 모니터링한 타사 기자들도 그렇게 들었다고 합니다. 이미 8시쯤부터 각 언론사에 보고가 들어가서 각사 정치부에 다 공유가 된 상황입니다.”
“왜 이런 발언을 한 건가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출입기자들 보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와 협력해서 글로벌펀드에 60억 달러를 추가로 기부하겠다는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 직후에 윤 대통령과 바이든이 만났습니다. 비속어로 들리는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발언 맥락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서 계속 취재 중입니다.”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발언의 저속함까지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먼저 보도한 건가요?”
“유튜브 뉴스는 제 소관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제일 빨리 올린 것 같긴 한데 다른 언론들도 지금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박성호 국장 말대로 유튜브 뉴스는 디지털뉴스국에서 별도의 팀이 따로 만든다. 요즘은 중요한 사건이 터질 경우 지상파 TV들도 정규 뉴스보다 유튜브로 먼저 속보를 내보내는 세상이다. 유튜브 뉴스를 제작하는 기자들은 보도국으로 들어온 영상을 보고 자체 판단에 따라 속보를 제작한다. 만약 김은혜 수석과의 통화가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보도국장이나 디지털뉴스국장에게 ‘홍보수석이 부탁을 해왔으니 기사를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할 일은 없다. 모든 뉴스는 보도국과 디지털뉴스국이 알아서 만든다. 기자들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소신껏 기사를 쓴다. 데스크와 국장은 그것을 고치거나 손볼 수 있다. 그러나 사장은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MBC는 그런 언론사다.
확인해보니 MBC 유튜브 채널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한 것은 10시 7분이었다. MBC의 보도가 가장 빨랐다. 그 뒤를 이어 140여개의 언론사가 그날 하루 같은 내용의 자막을 달아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다. 하지만 MBC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 해당 유튜브 기사는 무려 6백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순식간에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각종 SNS에 공유되고 퍼져나갔다. 유튜브에는 수백개의 뉴스 채널이 있지만 MBC 채널이 독보적이다. 월간 조회수가 평균 5억회가 넘을 정도다. 그날 저녁에는 대부분의 방송들 역시 톱뉴스로 같은 소식을 전했다.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야당은 ‘최악의 외교 참사’라고 공세를 높였고 유승민, 홍준표 같은 여권 정치인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외신들은 문제의 발언을 영어로 번역해 전세계로 타전했는데 당시 AFP통신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이렇게 번역했다.
“How could Biden not lose damn face if these f***ers do not pass it in Congress?”
처음 나온 대통령실의 해명은 궁색했다. “사전 발언을 외교적 성과로 연결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는 게 공식 입장이었다. 기자들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모니터링할 때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대통령실도 처음에는 발언 내용을 부정할 수가 없었고 ‘사적 발언이니 문제삼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진화를 시도했지만 애당초 그런 식으로는 진화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게 당시 기자들의 판단이었다. 그것도 ‘새끼’라는 비속어를 동원해서.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렇게 들었고 그대로 기사를 썼다. 당연히 불을 끄고 사태를 수습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게 합리적인 방안이었다. 그래야 ‘사적 발언’이라는 해명도 통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참모들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문제의 발언 이후 16시간이 흐른 22일 자정 무렵한국 시간, 김은혜 수석이 갑자기 긴급 브리핑을 했다. 대통령의 발언 중 ‘바이든’은 기자들이 잘못 들은 것이고 사실은 대통령이 ‘날리면’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은혜 수석은 브리핑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다시 한번 들어봐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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