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들
사람이 죽은 것을 본 날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이. 돌아가신 할머니를 제외하고 내 눈으로 직접 죽은 사람을, 그러니까 시체를 목격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가족이 아닌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다니, 차라리 목격과 동시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좀 더 나았을까.
그날은 ‘평범한 날’이었다. 10월 들어 라디오에서는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자주 흘러나왔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를 한 달 내내 흥얼거리며 이태원에서 10월의 마지막 주, 마지막 밤을 보낼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2016년부터 매년 빼놓지 않고 핼러윈 파티를 즐겼다. 예쁘고 섹시한 코스튬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 무렵 내 삶의 낙은 올해는 어떤 우스꽝스러운 코스튬을 할까, 어떤 캐릭터가 귀엽고 재밌을까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2022년에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분위기였고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한 상황이라 기대가 더 컸다. 9월부터 한 달 내내 나는 미국 직구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며 웃기고 재미있는 캐릭터 찾기에 열중했다. 파티를 정말 잘 즐기고 싶었다. 이태원 핼러윈에서는 아리땁고 멋진 공주나 왕자보다 마블 히어로스나 디즈니 만화영화 캐릭터를 실감 나게 따라 한 코스튬이 인기를 끌었다. 인기의 척도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주세요” 하고 요청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로 알 수 있었다. 파란 라이언이나 뽀로로, 초록 얼굴 피오나 공주를 따라 한 나는 늘 인기쟁이였다. 올해도 그 인기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도널드덕 코스튬을 구매한 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것이 배송되기를 기다렸다.
#1 10월 29일, 18시 30분
그날 아침 나는 주말 동안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장을 보러 갔다. 오늘은 술을 마실 테니 운동도 해야 한다며 따릉이로 홍제천을 열심히 달렸다. 선명히 기억난다. 가을바람이 좋다, 바람이 살갗에 닿는 느낌이 좋다, 오늘 얼마나 재밌을까, 속으로 기대했던 그 순간이 여전히 또렷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까르르 웃으면서 “이따가 이태원에서 보자. 넌 무슨 분장할 거야? 뭐? 가오나시를 한다고? 대박, 기대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비록 열심히 준비한 도널드 덕 코스튬이 유아 사이즈여서 크게 당황했지만실수로 잘못 주문했다, 이 일조차 나중에 떠올리며 웃어넘길 에피소드로 남겠거니 생각했다. 어서 약속 장소로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급한 대로 피가 잔뜩 묻은 간호사 코스튬을 떠올렸다. 처음 해보는 콘셉트에 ‘이런 것도 나름 재밌고, 좋네’ 하며 이태원으로 향한 시간은 18시 30분이었다.
19시 30분에 녹사평역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핼러윈 파티를 약속한 상태였다. 나는 이태원역에서 내려 코스튬을 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약속 장소인 녹사평역까지 한 정거장을 걸어갈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하철이 이태원역에 도착했을 때 인파가 어찌나 엄청나던지 내리기를 포기했다. 그 인파를 헤치고 가려면 에너지를 너무 써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녹사평역에서 파티를 즐긴 뒤 핼러윈 피크타임인 21시 이후에 이태원으로 가서 사람 구경을 하며 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녹사평역 근방에서 파티가 있었음에도 이태원에서 내리려고 한 이유는,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 가기 위해서였다.
‘해밀턴 호텔’은 이태원의 랜드마크다. 동네마다 대표적인 약속 장소가 있는 것처럼 “이따가 해밀턴 호텔 앞에서 봐” 하고 약속하는 고유명사 같은 곳이다. 언론은 그날 참사가 벌어진 해밀턴 호텔 뒷골목이 ‘유명 술집과 클럽’이 모여 있는 메인스트리트였다는 점을 집중 보도했다. 물론 이 보도에 거짓은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 거리를 ‘유명 술집과 클럽’의 상징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나는 답답했고 외로웠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태원 지형은 작은 골목길이 많고 매우 협소하다. 그런데 딱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는 넓은 공간이 있다. 다른 골목처럼 양옆으로 술집이 늘어서 있지 않아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핼러윈 파티를 즐기는 수많은 코스튬을 구경하고 함께 사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라 대부분 이곳으로 몰려든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재밌고 멋진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는’ 해밀턴 호텔 뒷골목으로 가야 했다. 그곳은 핼러윈이 아닌 평상시에도 ‘사람 구경’하러 가기 좋은 곳이다. 멋지고 아름답고 소위 ‘힙’한 패셔니스타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지루하고 갑갑한 일상이 이어지면 나는 멋진 사람들, 세상 힙한 인간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그곳을 자주 찾았다. 그 거리에 유명 술집과 클럽이 있었던 것뿐이다.
#2 10월 39일, 21시 10분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진 파티를 마무리하고 친구와 함께 이태원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평소에는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사람이 많다 보니 30분 넘게 걸려 해밀턴 호텔 뒷골목의 세계음식문화거리에 도착했다.
녹사평역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로 향하는 길은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는데, 그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녹사평역 근처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저마다 마법사 분장을 하고 소리 지르며 뛰어 놀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꾸민 코스튬도 사랑스러웠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듣는 사람도 덩달아 미소 짓게 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와 사탕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 사탕을 내밀며 수줍게 웃던 그 말간 얼굴과 눈빛도 선명하다. 가족 세 명이 모두 ‘콘헤드 분장’을 하고 몰려다니는 걸 보고 친구와 한참을 웃었던 것도 생각난다. 이소룡도 있고, 디즈니 공주도 있고, 스누피, 백설공주, 신데렐라, 엘사까지 참 다양했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화영화의 한 장면이 이태원 골목마다 삽입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우린 모두 몸만 큰 어린아이였다. 놀이동산 같았다. 일 년 중 10월 마지막 주 이태원만 이런 게 아니라 매일의 일상이 이렇게 놀이동산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 10월 29일, 21시 50분
세계음식문화거리 입구에 도착한 친구와 나는 천천히 해밀턴 호텔 뒷골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태원에 왔으면 한 번쯤은 거기에 가야지 하는 그곳으로. 지금은 참사 현장으로 기록되는 그곳으로. 처음 도착한 세계음식문화거리 초입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지만, 내 의지로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참사 현장 쪽으로 다가갈수록 실시간으로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진입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진입하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재밌는 코스튬을 한 사람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그때 ‘녹색 어머니회’ 친구들을 만났다. 건장한 남자아이 여섯 명이 모두 어머니 가발을 쓰고 녹색 어머니회 모자와 복장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엄마, 여기 왜 나와 있어. 얼른 집에 들어가!” 하고 농담을 건넸다. 그때는 몰랐다, 이 친구들을 이후에 그리워하게 될 줄은.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무사하기를 빌게 될 줄은.
#4 10월 29일, 22시 이후
해밀턴 호텔 뒷골목으로 향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이상하다, 뭐 괜찮겠지. 이상하다, 뭐 괜찮겠지.’ 참사 현장을 끼고 있는 와이키키 비치펍 앞에 도착했을 무렵 같이 간 친구가 소리쳤다.
“이건 노는 게 아니야. 여기서 나가야 해. 다른 데로 가자!”
그런데 우리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원인 모를 힘에 밀려 둥둥 떠다니는 상태였는데 여기서 몸에 힘을 주거나 난리를 치면 나만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최대한 힘을 빼고 그냥 밀리는 대로 밀려갔다. 그때 친구를 놓쳤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이었으나 조금만 버티면 사람 무리가 풀리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앞뒤로 사람이 많은 것뿐 아니라 고개를 들면 키 큰 성인 남성들이 사방으로 서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나는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 말고는 볼 수 없었다.
“밀지 마세요! 밀지 마시라고요, 아악!”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성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귀가 따가워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 순간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1초 만에 전후 상황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등이 아팠다. 그러다 곧 앞쪽에서도 압력이 가해졌다. 앞뒤로 세게 압박이 가해지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몇 초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공포심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만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남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여전히 옆 친구와 짜증 섞인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조바심과 공포 속에서 어쩔 줄 모르던 그때 내 뒤에 있던 사람이 “가게 벽으로 좀 붙으세요”라며 나를 확 밀쳤다. 순식간에 나는 와이키키 비치펍 벽 난간 쪽으로 밀렸고 동시에 다시 발이 땅에 닿았다. 그때도 나는 ‘어우, 이제 좀 살겠다. 이상하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느꼈을 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그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근처에 있던 어떤 남자가 특정 대상이 아닌 모두에게 외치듯 계속해서 ‘벽에 등을 대야 산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왜 저렇게까지 소리치는 거지? 정말 이상하다’라고만 생각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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