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스타 이즈 본 × STAR IS VORN
손뼉 한 번 치고 시작합시다Let’s roll with a clap.
촬영 스태프 한 사람이 검지를 펼쳐 올린 채로 말했다. 짝짝짝. 우람은 힘껏 양손을 맞부딪치고 스태프를 바라봤다. 이렇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스태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한 번만Nope, just once. 다른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됐어요, 그냥 하면 됩니다Okay, just do it. 우람은 심호흡을 하고 카메라 옆 프롬프터에 뜬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마이 네임 이즈 김우람. 프롬 사우스 코리아.
“제 이름은 김우람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나이는 22세, 키 172센티미터, 몸무게 65킬로그램. WGMOWorld Gigantic Mechanic Olympiad, 세계 거대로봇 올림피아드23세 미만 전고 5미터 미만 부문에 출전합니다. 종목은 응급구조.”
질문이 끝나고 새로운 자막이 화면에 떴다.
다음 문장을 소리 내 읽으시오READ ALOUD FOLLOWING SEN-TENCE.
“출전 중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안전히 임할 것을 서약합니다.”
우람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마지막 문장을 읊었다. 좋아요, 다음Okay, next. 모자 쓴 스태프가 다음 출전자를 데리고 들어와 우람이 서 있던 자리에 세운 뒤 우람을 녹색 크로마키 세트 바깥으로 안내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카메라맨의 목소리에 우람은 무심코 뒤돌아 보았다. 손뼉 한 번 치고 시작합시다.
다음 출전자는 잔뜩 긴장한 티가 나는 코카서스계 소년이었는데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돈 뒤 짝 하고 손뼉을 쳤다. 구석구석 열 명은 넘게 배치된 촬영 스태프가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줄도 아는 사람들이었네. 우람은 웃지 않고 생각했다.
대회 본부 1층 로비에서 목걸이 타입 네임 태그와 스마트워치를 나눠 주었다. 태그를 패용하면 대회 관련 건물 대부분을 출입할 수 있고, 스마트워치는 대회 프로그램 알림 및 위치 추적 용도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대부분이라고요? 금지구역도 있나요? 우람이 묻자 태그를 나눠 주던 스태프가 검지를 펴 위를 가리켰다. 예를 들어 대회 본부 상층부 같은 곳은 운영 관계자만 출입이 허용됩니다. 아시겠지만, 미 국방부 협조로 군사시설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어서요. 아, 넵. 우람은 스마트워치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침 다음 프로그램 알림이 뜬 모양이네요. 스태프의 말에 우람이 손을 치우자 스마트워치에서 발하던 빛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16:002층 콘퍼런스 홀, 개회식’
굿 럭. 스태프가 말했고 우람은 대답했다. 유 투.
스마트워치에 따르면 개회식까지는 두 시간가량이 남아 있었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도 두 가지 정도였다.
첫째, 본부 건물 중층부에 있는 숙소에서 휴식 취하기. 둘째, 기납고Mechanic Warehouse에서 대회 출품 기체 확인하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창고’는 어느 쪽이죠? 우람이 다시 돌아서서 묻자 네임 태그를 나눠 주던 스태프가 스마트워치를 가리켰다. 손목에 대고 말하는 시늉을 하면서. 우람은 스마트워치를 향해 말했다. 창고Warehouse. 회전하는 화살표 홀로그램이 손목에서 떠올랐다. 위치 추적을 촘촘히도 하나 보군. 그대로 본부 건물을 나와 시키는 대로 걸음을 옮기자 기납고가 나왔다. 출입구에서 태그를 찍으니 스마트워치가 우람의 기체 일련번호를 인식해 기체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오랜만이다.”
우람은 평소답지 않게 감상에 젖어 말했다. 대략 일주일 만의 만남이었다. 연료탱크를 비워도 1톤이나 되는 무게 때문에 해체해서 특수 선적 화물로 먼저 미국에 보냈던 우람의 기체 ‘WOOVIC Ⅱ/우승 2호’는 엉성한 조립 상태로 쓸쓸하게 서 있었다. 우람은 입구에 놓인 공용 공구 대여 장부에 이름을 적고 돌아와 우승 2호를 손보기 시작했다. 철망으로 분리된 옆 칸, 옆의 옆 칸 출전자들도 우람처럼 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우람은 개인이고 다른 출전자들은 팀을 이루고 있다는 점. 파일럿 한 명, 메인 엔지니어 한 명, 그렇게 적어도 두 명씩 짝지어 각자의 언어로 자기 팀 기체를 두고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곤 못 하겠지만, 떼거지로 몰려왔다고 잘하리란 법도 없지 않나. 우람의 생각은 그랬다. 완전히 혼자가 아니기도 했다. 우승 2호가 있으니까.
잘할 수 있지? 우람은 우승 2호를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우승 2호의 눈, 외부 카메라에 그에 응답하듯 빛을 반사했다. 시운전을 해 볼 여유가 있으면 좋을 텐데. 무릎을 털고 일어나며 우람은 생각했다. 연료통은 그대로 비어 있었고 개회식까지 남은 시간은 20분이었다. 할 수 없지.
“믿는다.”
우람은 그 말을 소리 내서 했다. 구부정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자기 머리보다 한참 위에 있는 우승 2호의 외부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았다. 온갖 언어로 자기들 기체에 대해 떠드는 이들로 가득한 격납고는 바벨의 우주선 건조 현장 같았고 그 가운데 우람의 말은 그 공간에서 발음된 마지막 한국어였다. 비록 우람도 우승 2호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는 않았으나.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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