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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그 수확자는 어느 추운 11월 오후 늦게 도착했다. 시트라가 식탁 앞에 앉아서 특히 어려운 대수학 문제를 끌어안고 X 또는 Y를 풀지 못해 끙끙거리며 변수를 정리하고 있을 때, 이 새롭고도 훨씬 치명적인 변수는 그렇게 그녀의 인생 방정식으로 들어왔다.
테라노바 가족의 아파트에는 손님이 자주 찾아왔기에, 초인종이 울렸을 때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햇빛이 어두워지지도 않았고, 문 앞에 죽음이 도착했다는 전조도 없었다. 우주가 그런 경고를 따로 보내 준다면 좋겠지만, 수확자들은 크게 봐서 세금 징수원만큼도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나타나서 달갑지 않은 일을 해치우고 떠났다.
나가 본 사람은 어머니였다. 시트라는 열린 문이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처음에는 방문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보인 것은 어머니가 갑자기 피가 다 굳어 버린 것처럼 움직임을 잃고 서 있는 모습뿐이었다.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바닥에 쓰러져서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테라노바 부인?」
방문자의 음성에서 정체가 드러났다. 둔탁한 쇠로 만든 종소리처럼 울림이 깊고 피할 수 없으며, 가닿아야 할 이들에게는 반드시 가닿게 되어 있다는 자신이 있는 목소리. 시트라는 그의 모습을 보기도 전에 수확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에! 수확자가 우리 집에 오다니!〉
「네, 네, 물론이지요. 들어오세요.」 시트라의 어머니가 비켜서서 그를 안으로 들였다. 마치 상대방이 아니라 어머니 쪽이 방문자 같은 모습이었다.
문지방을 넘어오는데, 부드러운 슬리퍼 같은 신발이 나무바닥을 밟으면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로브는 매끄러운 상아색 리넨이었고, 바닥을 끌 정도로 길게 늘어졌는데도 얼룩 한 점 없었다. 시트라는 수확자가 자신의 로브 색깔을 고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검은색만 빼면 어떤 색이든 가능했다. 어둠은 빛의 부재였고, 수확자는 빛 자체였다. 그들은 깨우치고 빛나는 존재로서, 인류 중 가장 뛰어난 이들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수확자로 선택된 것이다.
어떤 수확자의 로브는 색이 선명했고, 어떤 로브는 색이 은은했다. 르네상스 시대 작품 속 천사들이 늘어뜨린 로브처럼 값비싸 보였고, 무거운 동시에 공기보다 가벼워 보였다. 재질과 색에 무관하게 수확자들만의 독특한 로브 스타일이 있어 공공장소에서 쉽게 눈에 띄었고, 쉽게 피할 수 있었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들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만큼 그들에게 이끌리는 사람도 많았다.
로브 색깔은 수확자의 성격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수확자의 상아색 로브는 아플 정도로 눈이 부신 새하얀 색과는 거리가 먼, 보기 딱 좋은 빛깔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두건을 내려 깔끔하게 자른 회색 머리카락과 싸늘한 날씨 때문에 뺨이 붉어진 슬픈 얼굴, 거의 무기처럼 보이는 검은 두 눈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트라는 일어섰다. 존중의 뜻에서가 아니라 두려움 탓이었다. 충격이었다. 시트라는 과호흡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무릎이 풀리지 않게 노력했다. 그래도 다리가 덜덜 떨렸기에 근육을 긴장시키고 다리에 힘을 줬다. 수확자가 여기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시트라가 무너지는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문은 닫으셔도 됩니다.」 그가 시트라의 어머니에게 말했고, 어머니는 그 말대로 했다. 시트라는 어머니에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려 있으면 현관에 선 수확자가 돌아서 나갈 수도 있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수확자는 정말로, 진정으로 집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즉시 시트라를 알아차렸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안녕, 시트라.」 시트라는 그가 자기 이름을 안다는 사실에, 그가 등장한 순간 얼어붙었던 어머니만큼이나 단단히 얼어붙었다.
「무례해선 안 돼.」 어머니가 서둘러 말했다. 「손님에게 인사하렴.」
「안녕하세요, 수확자님.」
「안녕.」 수확자의 깊고 장중한 목소리를 듣고 막 침실 문밖으로 나온 시트라의 동생 벤이 말했다. 벤은 그 짧은 인사도 멀쩡하게 말하지 못하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벤은 모두와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시트라와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누굴 찾아온 걸까? 나일까? 아니면 난 남아서 상실의 고통을 겪는 쪽일까?〉
「복도에서 유혹적인 냄새를 맡았지요.」 수확자는 방 안의 향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이 아파트에서 흘러나온다 싶더니, 내 생각이 맞았군요.」
「그냥 구운 지티예요, 수확자님. 특별한 건 아니고.」 이 순간까지 시트라는 어머니가 그렇게 소심한지 알지 못했다.
「잘됐군요.」 수확자가 말했다. 「특별한 건 필요 없거든요.」 그는 소파에 앉아서 참을성 있게 저녁 식사를 기다렸다.
남자가 그저 식사만 하러 왔다고 믿는 건 무리일까? 수확자들도 어딘가에서 식사를 하기는 해야 했다. 관습적으로 식당들은 수확자에게 음식값을 받지 않았지만, 집에서 한 요리에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었다. 희생자들을 줍기 전에 식사 준비를 요구하는 수확자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다. 지금 이것이 그런 상황일까?
의도가 무엇이건 남자만 알고 있을 뿐, 그들은 그가 원하는 건 뭐든 줄 수밖에 없었다. 시트라는 오늘 여기에서 먹은 음식이 마음에 들면 한 명을 살려 주는 걸까 궁금했다. 사람들이 수확자를 즐겁게 해주려고 온갖 애를 쓰는 것도 당연했다. 두려움 속의 희망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 요인이니까.
시트라의 어머니는 수확자의 요청에 따라 마실 것을 가져다주고, 이제 오늘 저녁 식사를 평생 최고의 요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요리는 어머니의 장기가 아니었다. 보통 어머니는 저녁 직전에 퇴근해서 대충 뚝딱 끼니를 준비하곤 했다. 오늘 밤에는 그들의 삶이 어머니의 미심쩍은 요리 실력에 달려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제때 집에 돌아올까, 아니면 가족 중 누군가의 수확이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이루어질까?
시트라는 겁에 질렸지만, 그렇다고 수확자가 혼자 생각에 잠기게 두고 싶지도 않았기에 함께 거실로 들어갔다. 수확자에게 겁먹은 만큼 매료된 티가 확연한 벤도 같이 앉았다.
그 남자는 그제야 자신을 수확자 패러데이라고 소개했다.
「저…… 어…… 학교에서 패러데이에 대해 조사하는 숙제를 한 적 있어요.」 벤의 목소리는 한 번밖에 뒤집히지 않았다. 「되게 멋진 과학자 이름을 고르셨네요.」
수확자 패러데이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좌절한 역사 인물을 수호 위인으로 골랐나 보군요.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듯이 마이클 패러데이도 살아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 사람 없이는 우리 세계가 지금 같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모은 수확자 카드 중에 수확자님도 들어 있던 것 같아요.」 벤이 말을 이었다. 「미드메리카MidMerica. 중부 아메리카를 말한다. 이하 모든 주는 옮긴이의 주이다. 수확자는 거의 다 있거든요. 하지만 그 사진 속에선 더 젊어 보이셨어요.」
남자는 60세쯤 되어 보였는데, 머리는 다 세었지만 염소수염은 아직 희끗희끗했다. 더 젊은 모습으로 되돌리지 않고 그 정도까지 노화를 진행시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시트라는 남자의 실제 나이가 얼마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생명을 끝내는 일을 맡은 지는 얼마나 됐을까?
「그 모습이 실제 나이인가요, 아니면 일부러 최후에 가까운 나이대를 고르신 건가요?」 시트라가 물었다.
「시트라!」 어머니는 막 오븐에서 꺼낸 캐서롤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런 질문이 어딨니!」
「난 솔직한 질문을 좋아합니다.」 수확자가 말했다. 「그런 질문은 정직한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니, 나도 정직하게 답하기로 하지요. 나는 세 번 회춘했습니다. 내 자연적인 나이는 백여든 살쯤인데, 정확한 숫자는 잊었습니다. 최근에 지금의 이 고색창연한 모습을 택한 것은, 내가 거두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더 편안해하기 때문이에요.」 이 대목에서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면 현명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기 오신 건가요?」 벤이 불쑥 말했다. 「누군가를 거두러요?」
수확자 패러데이는 생각을 알 수 없는 미소로 답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온 겁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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