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세 강문정
아침 8시 반, 문정은 병원 입구에 놓인 적외선 체온계를 이마 위로 들어올려 체온을 재고 손 소독제로 손을 문지른 뒤 병원 안으로 들어가 숨을 골랐다. 입구 옆에 있는 접수처 직원은 왼손으로는 고객의 핸드폰에 붙은 바코드 스티커를 스캔해 접수를 하고 오른손으로는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건너편 수납처 직원들은 자리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는 서서히 사람들로 메워지는 대기석을 힐끗 쳐다본 뒤 주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정은 심호흡을 한 뒤 지하 1층 시험관아기센터로 걸어 내려갔다.
남편은 한 시간 전에 먼저 와서 정자 채취를 하고 작업실에 간 상태였다. 와서 손이라도 잡아주면 좋으련만, 아무리 체외시술이라고 해도 각기 따로 진행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편은 실패로 끝난 지난번 시험관 시술 때 병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이후로 자신이 반드시 필요한 날이 아니면 병원에 동행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남편이 거사를 마치고 정자 채취실에서 나오는데, 대기석에 앉아 있는 남자들 중 한 명이 어딘가 낯이 익다고 했다. 그 남자는 황급히 남편의 시선을 피하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썼지만 눈매가 분명히 대학 동창이었다면서 남편은 하필이면 여기서 만났을까 싶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생식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인 걸까. 남자들은 왜 생명을 만드는 신성한 순간에 체면 따위를 생각하는 걸까. 물론 여자들도 난임병원 다니는 것을 회사에 숨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것은 창피해서라기보다는 임신 계획으로 업무에서 배제되지 않을까 걱정해서였다. 문정은 임신에 성공한다고 해도 아기를 낳기 직전까지 일할 생각이었다. 당당히 만삭의 배를 드러내고 다양한 분야의 여성들을 인터뷰할 계획이었다. 지금 문정이 맡은 기획은 ‘각계 여성 전문가의 사적인 삶’이었다. 성공한 여자들의 직업 이외의 세계를 들여다보자는 취지였는데 파고들 여지는 취미, 여행 등 다양했다. 요즘은 비혼주의자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육아와 연애에서 벗어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최근에 인터뷰한 은퇴한 배구선수는 저택에서 대형견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유기동물보호소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등 동물보호활동을 하고 있었다. 문정은 시댁과의 갈등 운운하는 진부한 내용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변화를 느꼈고 인터뷰할 맛이 났다. 여성의 성공에 결혼과 육아는 가장 큰 방해 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문정은 지금 세계 3대 난임센터 중 하나인 국내 최고의 난임전문병원, 아기천사병원에 와 있었다.
과거에는 SF소설에나 나왔을 법한 시험관 아기 시술은 이제 대중화된 난임치료법이었다. 아기천사병원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 지금 시험관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의 난임치료기술이 소문이 났는지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원정시험관’ 시술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문정이 태어난 1978년,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도 태어났다. 영국 여성인 루이스 브라운은 결혼해서 자연임신으로 두 아들을 낳았다는데 자연임신으로 세상에 나온 문정은 마흔네 살에 시험관 시술을 받으러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났을 당시 교황은 신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라며 우려를 표했고 언론은 시험관 시술을 ‘원자폭탄 이후 가장 큰 위협’이라고 떠들었다. 그런 호들갑스러운 기사를 쓴 기자는 이후 시험관 시술로 전 세계에 80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의료선진국 대한민국에 난임치료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춘 시험관 시술 전문 병원이 등장할 줄 예측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기자의 딸도 지금쯤 시험관 시술을 받기 위해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의를 탈의하고 수술복 가운을 걸친 채 탈의실 밖으로 나가자 간호사는 문정에게 비닐 모자를 씌우고 혈압을 잰 다음 손목에 부부의 이름과 QR코드가 새겨진 종이 팔찌를 채워줬다. 문정은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 가면 손목에 채워주던 자유이용권을 떠올리며 대기실 침대에 누웠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을 얻었으니 곧 아기를 만날 수 있을까. 문정은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 마취하는 거 무서워.
― 처음 하는 것도 아니잖아.
― 마취 풀리면 얼마나 아픈데. 무서워.
사실 난자 채취는 듣던 것처럼 아프지 않았다. 배가 뻐근한 생리통 정도의 통증이었다. 문정은 다른 여자들보다 통증이 적은 편이었다. 난소 기능 저하로 기껏해야 대여섯 개의 난자가 채취되기 때문이었다. 겨우 세 개가 채취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정도 엄살을 떨고 싶었다. 시험관 시술은 억울할 정도로 아내의 역할만 강조되었다. 아내가 온갖 주사를 맞고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남편의 역할은 정자 채취하는 날 하루 병원에 방문해서 수음으로 정액을 작은 병에 담는 것이었다. 고통이 수반되는 난자 채취와 다르게 정자 채취는 쾌락이 수반되었다. 난자 채취에 비해 간단했으므로 남편은 시험관 시술이 실패할 때마다 문정처럼 절망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것이 문정의 신경을 건드렸다.
“김선영 씨, 일어나세요. 김선영 씨!”
옆 침대 여자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는지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며 뺨을 때리고 있었다. 김선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문정은 어서 일어나라고 응원했다.
문정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커튼 사이로 보이는 옆 침대 여자를 훔쳐봤다. 선영 씨는 이제야 마취에서 깨어났는지 낮게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문정이 겁내는 것은 통증이 아니라 희망고문이었다. 수면마취를 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실패한다면 길고 긴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미 다섯 번째였다. 그동안 배아 이식을 여덟 번이나 받았다. 무서운 주삿바늘을 스스로 배에 찔러넣고 난포를 키워 터트린 다음 채취하고 이식하는 시험관 시술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하게 될 줄이야. 안 그래도 몇 개 나오지 않는 난포가 공난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간호사가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2분 뒤에 들어가실게요.”
― 나 이제 들어가.
잘하고 오란 말을 듣고 싶었지만 남편은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문정은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난자 채취실’ 문 앞에 놓인 둥근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환자의 양팔과 양다리 옆에 선 네 명의 간호사가 시술대에 누워 있는 여자를 동시에 위로 번쩍 들어올리더니 옆에 놓인 침대로 옮긴 뒤 침대를 끌고 나왔다. 문정은 마취에서 깨어나는 중에 뭐라고 중얼대며 멀어지는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문정은 뿔테 안경을 벗어 핸드폰과 함께 간호사에게 건넨 뒤 채취실 안으로 들어가 시술대에 올라갔다. 고덕수 선생은 신뢰할 수밖에 없는 얼굴로 문정을 내려다보며 안심시켜주려 했다. 무뚝뚝한 고 선생이 수술실에서만 보여주는 자애로운 표정이었다.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 너의 고통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 같은 예수를 닮은 얼굴. 하지만 무릎을 세우게 한 다음 질 안으로 소독용 거즈를 집어넣을 땐 신음 소리를 삼킬 수 없었다. “나 잠들고 나서 하지”라고 생각하는 도중 의식이 흐려졌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앞 침대 여자인 것 같았다.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울고 있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여덟 개 채취됐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난자가 여러 개 채취된 모양이었다. 문정은 여자가 부러웠다. 난자가 많이 나왔으니 냉동 배아도 많이 나올 것이고 당분간 채취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앞 침대 여자가 이번엔 남편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남편과 티격태격하더니 전화를 끊고 한층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때 문정의 시선이 대기실 한쪽 벽에 붙은 종이에 닿았다.
난임부부 여러분 힘내세요.
아기는 발이 작아 아장아장 천천히 온답니다.
평소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라며 코웃음 치며 보던 글인데 문정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차올랐다. 네 개밖에 채취되지 않았다는데 왜 이리 배가 뻐근한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채취되는 난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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