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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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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모든 이점을 누려온 벤저민 래스크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몇 안 되는 특권 중 하나는 영웅적으로 부상할 특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회복력과 끈기에 관한 것도 아니고, 티끌로 황금의 운명을 만들어낸 불굴의 의지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래스크 가족의 성경 뒤쪽 페이지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벤저민 래스크의 부계 조상들은 1662년 코펜하겐에서 글래스고로 이주해 식민지산 담배를 거래하기 시작했다. 이후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들의 사업은 번창했으며, 공급자들을 더욱 잘 감독하고 생산 공정의 모든 측면을 통제할 수 있도록 가족 일부가 미국으로 이주할 정도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로부터 삼 세대 후, 벤저민의 아버지인 솔로민이 친척 및 외부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전부 사들였다. 솔로몬의 단독 지휘하에 회사는 계속해서 번창했고, 그는 머잖아 미국 동부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담배 무역상 중 한 명이 되었다. 그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공급자들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솔로몬이 성공을 거둔 핵심요인은 상품의 질보다는, 물론 담배에 쾌락주의적 측면이 있긴 하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는 명백한 사실을 활용하는 능력이었다. 솔로몬 래스크는 가장 뛰어난 품질의 시가와 시가릴로, 파이프 담배 공급업자였을 뿐 아니라 탁월한 대화와 정치적 연줄을 제공하는 사람이기도 했다(오히려 이런 면이 더 중요했다). 그는 사교성과 흡연실에서 다진 우정 덕분에 사업의 정점에 올라 입지를 다졌다. 흡연실에서는 솔로몬이 그로버 클리블랜드, 윌리엄 재커리 어빙, 존 피어폰트 모건 등 그가 손에 꼽을 만큼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비롯해 대단히 특별한 손님들과 멋들어진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솔로몬은 뉴욕 웨스트 17번가에 타운하우스를 지었다. 이 집은 벤저민이 태어날 때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완공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뉴욕에 있는 가족의 집에 모습을 드러내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일 때문에 이 농장 저 농장을 돌아다녀야 했으며 언제나 담배 훈연실을 감독하거나 버지니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 카리브해 지역에 있는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심지어 쿠바에도 작은 별장이 하나 있어서, 매년 겨울의 상당 기간은 그곳에서 보냈다. 이 섬에서의 그의 생활은 여러 소문으로 이어졌고, 솔로몬은 그 소문 덕분에 이국적 취향을 가진 모험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업계에서는 자산이었다.
솔로몬의 아내 윌헬미나 래스크는 한 번도 남편의 쿠바 별장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오랫동안 뉴욕의 집을 비우곤 했다. 윌헬미나는 솔로몬이 돌아오는 즉시 집에서 나가 그 계절 내내 허드슨강 동안東岸에 있는 여름 별장이나 뉴포트에 있는 오두막 등 친구들의 집에서 지냈다. 겉보기에 그녀와 솔로몬의 공통점은 담배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그녀는 강박적으로 담배를 피웠다. 여성이 쾌락을 얻기에 흡연은 대단히 드문 방법이었으므로, 그녀는 여자 친구들끼리 있을 때만 그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만,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이 점이 딱히 제약이 되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그녀를 윌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윌리는 일종의 유목민 부족을 이룬 매우 친한 여성 집단의 일원으로, 그들의 출신지는 뉴욕만이 아니라 워싱턴, 필라델피아, 프로비던스, 보스턴 등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시카고처럼 먼 곳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계절에 따라 서로의 집이나 별장에 머물렀다―웨스트 17번가도 솔로몬이 쿠바의 별장으로 떠나는 9월 말부터 시작해 몇 달 동안 이들 일파의 주거지가 되었다. 아무튼, 이 여성들은 미국 어느 지역에 머물든 외부인이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변치 않는 집단을 이루었다.
벤저민은 대부분 자기 방과 유모의 방에만 머물러야 했으므로, 어린 시절을 보낸 브라운스톤 저택의 나머지 구역은 어렴풋하게만 알았다. 어머니와 친구들이 저택에 머물 때는, 그들이 밤늦게까지 담배를 피우고 카드를 치고 소테른 와인을 마시는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저택의 주요 구역은 덧문이 닫힌 창문과 덮개로 덮인 가구, 너울거리는 장막으로 감싸인 샹들리에가 어슴푸레하게 이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벤저민의 모든 유모와 가정교사는 그가 모범적인 아이라고 말했고, 과외교사들도 그 점을 확인해주었다. 이 얌전한 아이처럼 태도와 지능, 순종적인 성품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는 아이는 없다고 했다. 벤저민의 어린 시절 멘토들이 한참 찾아보고 나서 알아낸 몇 안 되는 결점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꺼리는 그의 성향이었다. 과외교사 중 한 명이 제자에게 친구가 없는 이유는 겁이 많아서라고 하자, 솔로몬은 아이가 그저 자주적인 남자가 되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그 걱정을 일축해버렸다.
벤저민은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첫 학기에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모욕과 사소하지만 잔인한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같은 반 아이들은 괴롭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벤저민을 만족스럽지 않은 희생양이라 생각하고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벤저민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무감정하게 모든 과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한 해가 끝날 때마다 선생들은 벤저민에게 가능한 모든 칭찬을 퍼부으며 그가 무척 특별한 존재라고 말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가 학교에 어마어마한 영광을 가져다줄 거라고 말했다.
벤저민이 졸업반일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벤저민은 뉴욕으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렀는데, 이때 친척과 지인들은 모두 벤저민이 보인 평정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죽음을 애도하는 상황이 벤저민의 타고난 성품에 사회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를 부여한 것뿐이었다. 소년은 대단한 조숙함을 과시해 아버지의 변호사들과 은행 직원들을 당황하게 하며, 유언장과 그 유언장에 관련된 모든 재무제표를 살펴봐달라고 요청했다. 래스크 씨는 양심적이고 깔끔한 사람이었기에 그의 아들은 서류에서 한 점의 오류도 발견하지 못했다. 벤저민은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나이가 되어 유산을 물려받을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알게 되었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뉴햄프셔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친구들과 함께 짧은 사별 기간을 보냈다. 그녀는 벤저민이 졸업하기 직전인 5월에 저택으로 돌아왔고, 여름이 끝날 때쯤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두 번째로 열린, 훨씬 더 우울한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과 친구들은 겨우 몇 달 사이에 고아가 된 청년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도 의논해야 할 실용적인 문제들이 많았다―신탁과 유언집행자 지명, 유산을 정리할 때 발생하는 법적인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벤저민의 대학 시절 경험은 학창 시절의 증폭된 메아리와도 같았다. 이때도 벤저민에게는 똑같은 결핍과 재능이 모두 있었으나, 이제는 전자에 대한 냉담한 애정과 후자에 대한 조용한 경멸감을 갖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의 혈통에 흐르던 좀더 두드러지는 특징들은 벤저민 대에서 끊긴 것 같았다. 벤저민은 어디에 들어가든 그 공간의 주인이 되어 모든 사람이 자기 주변을 공전하도록 만들었던 아버지와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었으며, 아마 살면서 단 하루도 혼자 보내지 않았을 어머니와도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부모와의 이런 차이는 졸업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벤저민은 뉴잉글랜드주에서 뉴욕으로 돌아갔으나 지인 대부분이 성공을 거둔 분야에서 실패했다―그는 서툰 스포츠맨이었고 무감정한 사교가였으며 열정이라고는 없는 음주가에 냉담한 도박사, 뜨뜻미지근한 연인이었다. 그는 담배 때문에 재산가가 되었으면서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그가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에게 억눌러야 할 욕구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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