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맨 자국
누구의 것일까, 물에 잠긴 이 꿈은
바닷물이 빠지자 잠든 나무가 깨어난다 조수가 갯벌에 음각한 가지마다 푸른 감태가 무성하다
탄피가 수북했던 숲, 멸종위기종이 많은 습지였다
수술 자국을 만지며 내다보는 창밖, 갯벌 한복판을 가로막는 가시철조망이 설치되고 있다
살을 파고들던 바늘의 냉기, 물뱀처럼 감기던 실, 형광등 빛이 흔들린다
생살 양 끝, 실매듭이 벽을 잡아당긴다 팽팽해진 꿈은 늪처럼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발목을 잘라먹고
철사에 감긴 가로수를 본 적 있다 움푹 파인 곳은 꿰맨 자국 같았다 비명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목발이 삐끗할 때면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총성이 파도 소리에 박혔다
갯고랑을 휘감으며 쇠가시가 넝쿨로 자랐다 농게가 집게발을 들어 잘리지 않는 것을 자르려 했다 어둠이 달려들었다
덤프트럭이 인근 산들을 가시철조망 안으로 들이부었다 갯메꽃밭에 설치된 경고판
녹물이 샌다, 누구의 꿈인지 모를 꿈속으로
상괭이
나는 칠천년 전 반구대에서 태어났다
뼈작살과 돌살촉을 견디며
굳은살처럼 퇴적된 물살과 흙살을 헤쳐왔다
사연댐의 만수위,
철창에 갇힌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발톱을 드러낸 물
할퀴이고 뜯겨 나간 나는 희미해졌다
물에도 뭍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익사를 되풀이하며
실안개로 흘레구름으로 떠돌다가
다른 넋들과 빗물로 부서져 내렸다
파고를 붙견디며 바다와 한 몸임을 증언하려 했다
나를 삼킨 생명들
벼릿줄에 지느러미가 잘리고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갯가로 떠밀려간 몸은
몽돌에 빻아지고 밀썰물에 흩어졌다
바람이 육지 깊숙이까지 실어 온 비린내
원시의 돌로 연곡 능선에 삶을 새겨온
인간의 질긴 시간 속에서 암각화는 여전히 자맥질 중이다
그믐사리, 고래좌가 눈물로 떨구는 성영을 받아먹으며
장생포와 반구대 사이에서 전생을 기억해내려 할 때
훅, 갯내와 흙내가 뒤섞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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