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이름
기르, 이프니, 마르사 타르파야 갑,
사람들을 꿈속에 젖게 하는 이름들이었다.
― 르 클레지오, 「우연」
작가들이란 언어에 매혹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작가에게 언어란 모태와 같아서 뜻 모르는 지명에도 환상을 이식해 먼 길을 떠나는 듯하다. 소시민이 기르, 이프니, 마르사―라고 열 번 따라 외워도 현실은 시멘트같이 꿈쩍도 않는다. 알파벳 원어 지명을 보고 읽으면 꿈속에 젖어들까. 알파벳의 아우라가 금빛 그물을 펼쳐 미지의 행성으로 데려갈까. 지구상의 수많은 도시 이름 중 발 디딘 적 없는 지명을 무작위로 읽다가 ‘울란바토르’가 덜컥 목에 걸렸다. ‘토’라는 파열음 때문일까. ‘붉은 영웅’이란 뜻이 혁명의 바람을 품고 있는 듯해서? 아니다. 이 지명은 익히 알고 있는 나라의 수도여서 반사적으로 아기 엉덩이의 몽고반점을 떠올리게 했다. 보자기에 묶여 있는 기억도 없는 유아기를 펼치게 하였다. 엉덩이에 푸른 달 같은 멍을 달고 아기는 빛의 세상이 두려워 울음을 터트렸을까.
전생의 몽상으로 탯줄을 타듯 여행지가 몽골로 정해졌다. 주영은 그날로 여행사를 통해 한 달 뒤 8월 항공편과 가격 등을 알아보고 이틀 뒤 메일로 승민에게 아는 정보를 주었다. 여행사 전화번호부터 자신의 출발 날짜까지. 승민은 그날 밤 카톡에 “몽골 환상” 하고 글을 띄웠다.
― 서울서 세 시간 반 거리니 멀진 않아.
― 몽골서 일주일 보내고 이르쿠츠크 간다고?
― 몽골서 가까워서 2박이라도 하고 싶은데 오후까지 생각해보고.
― 난 이틀 뒤 금욜에 갈게.
진작에 정해진 스케쥴이었다. 치과의사인 승민은 주말을 끼워 3박이면 해외도 좋다 했고 그녀는 개강 전 열흘을 해외에서 보낸다는 것.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일 터였다.
사실 이 여행은 주영에게 시작부터 특별했다. 다른 때와 달리 침낭과 명상 소설이 든 캐리어를 끌고 이국의 공항에 내렸을 때였다. 여권 검사를 하고 출구로 나서자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뛰듯 화장실로 가 변기에 앉자마자 주영은 무언가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밑을 보니 덩어리진 선혈이었다. 여행 첫날 생리라니. 난감한 마음은 잠시고 폐경의 징조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언니는 오십에 폐경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주영도 오십에 생리가 끊어질 거라고 스스로 암시했다. 폐경을 하니 성욕이 구십 프로는 사라지는 것 같아, 라고 언니가 말해서 아, 오십부터 비린내 나는 섹스는 바람 빠진 공인 양 차고 영혼의 필드로 들어가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주영은 오십을 앞둔 아홉 자리 수, 마흔아홉이다. 작년부터 계속 불규칙했던 생리가 몽골 땅에 들어서자 한숨을 토하듯 찌꺼기를 쏟아내듯 마지막 출혈을 한 거라고. 기뻐라.
울란바토르에 도착해 중심가 숙소에 짐을 풀자 주영은 여느 관광객처럼 수흐바타르 광장에 갔다.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찬란한 그들의 과거를 확인하고 간단히 요기할 겸 시가지로 나섰다. 몽골에서도 8월의 햇살은 따가웠다. 상가들이 늘어선 거리는 태양을 피할 그늘도 없는데 주영은 작은 주얼리숍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특별한 디자인이 눈에 띄는 건 아니었다. 인도의 장신구 숍들처럼 화려하지 않았지만 문득 은 귀걸이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들어서니 여직원이 다가왔다. 주영은 단순한 수직형 디자인 두 개를 손으로 가리켰다. 체인 모양의 귀걸이를 귓바퀴 밑에 대자 적당한 길이가 세련되게 늘어졌다. 머리를 가로저어 귀걸이가 흔들리는 걸 보고 작은 꽃봉오리 같은 원형과 삼각형이 이어진 귀걸이를 귀에 대보았다. 조형적으로 이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주영은 귀걸이 구멍을 더듬어 끼워보았다. 오래 착용했던 진주 귀걸이를 잃은 뒤 이 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용케 구멍이 막히지 않았다. 귀걸이가 흔들리니 생동감에 몸도 가벼워진 듯했다.
주영은 카페 암스테르담에 들어가 오렌지 주스와 이탈리안 파니니를 주문했다. 창가에서 무심히 맞은편 거리를 내려다보니 Seoul Hair Salon, Cafe Tiamo, India Restaurant 상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노후한 외산 차들이 매연을 뿜고 달리는 울란바토르도 서서히 글로벌 도시가 되어가나 보다. 중심가에는 이국적 복장의 마르코 폴로 동상이 한 손에 책을 들고 서 있다. 쿠빌라이 칸 시대의 국제도시를 재현하고 싶은지 모른다. 세계를 아연하게 한 그들의 용감무쌍했던 영광을.
주영은 주스를 마시며 인디아 레스토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리를 양 갈래로 길게 땋은 티베트 여인 돌마가 뇌리에 떠올랐다. 좀 전에 산 삼각형 은 귀걸이가 낯익다 했더니 다질링의 돌마네 가게에서 처음 산 귀걸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나이스, 얼굴이 마른 너한텐 유독 귀걸이가 잘 어울려, 하고 차를 권하던 은빛 머리 여인. 그 안온한 미소에 끌려 그녀가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로 옮기고 거기서 이 년 삼 개월 머물렀다. 그녀의 아들 다와와 다 함께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고 아이가 태어났다. 갓난아이를 안아 든 돌마의 미소는 달빛이 비치는 강물 같았다. 주영은 자연의 품을 지닌 티베트 여인에게 “당신에게 바치는 딸이에요” 하고 주문을 걸 듯 말했다.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에 33세를 맞고 주영은 영어학원 강사를 그만두었다.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기 위해 인도 여행을 하던 중 삶이 바퀴를 틀었다. 모계사회 족장 같은 돌마가 아니었다면 다와와의 인연도 없었을 것이다. 네 살 아래인 다와는 만나고 일주일 뒤 결혼하자고 했다. 주영은 묵살했다. 자신은 언제 떠날지 모른다고. 주영은 장엄한 장엄한 칸첸중가의 산능성을 구름 너머 바라보며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돌마와 함께 양고기를 잘라 수제비 같은 뗀뚝을 만드는 것이 즐거웠다. 다와가 만든 버터차와 인도 난을 먹는 아침이 행복했다. 게스트 하우스의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찻잎과 우유로 짜이를 끓이는 일도 결코 시답잖게 여기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 자서전 등 틈틈이 원서를 읽으면서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도 충만했다. 이 모든 것이 주영에겐 자연의 삶이었다. 경쟁사회 한국의 학원 강사로서 학부형과 성적 상담까지 해야 하는 일에 벌써부터 피로와 염증을 느껴왔다.
다와와의 삶이 조화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함께 산 지 넉 달이 되었을 때 다와가 술을 마시고 돌아와 서양인 친구 얘기를 했다.
“마틴은 늘 여자를 호텔 급으로 평해. 당신은 스리 스타래.”
주영이 주먹으로 다와 가슴을 치니 “파이브 스타가 아니라 화났어?” 물었다. 주영은 뺨을 쳤다.
“난 니 호텔이 아냐. 돌마에게 물어봐. 네 어머니도 호텔인지.”
이 얘기를 들은 돌마가 주영의 어깨를 잡았다.
“네겐 정신이 있지. 다와가 여자를 잡을 줄은 알아도 모실 줄은 모르는구나. 결혼을 원치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다만 철없는 내 아들을 잡아주기 위해 좀 더 지켜봐주기를 바라. 나를 위해서도 말이다. 난 네가 꼭 딸 같아. 죽은 딸이 극락에서 나를 연민하여 보내준 선물 같아.”
그런 돌마 곁을 떠난 지 어느덧 십오 년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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