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성
이런다고 풀릴 게 아니다
우리 영혼은 껍질에 둘러싸여 있고
너는 내가 잠들었을 때
내 비늘이 비비빅 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에 얼굴을 얹는 건 진부하지만 따뜻한 온도다
비비빅은 어떤 소리일까
혹시 공감각적 심상이니?
물어보려 하니 너는 언제나 잠들어 있다
이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아슬아슬하다, 정말 그렇지 않니?
언제 엄마가 들이닥칠지 몰라 내가 오면 말이야
걸쇠를 꼭 걸어둬 숨을 시간은 벌어야 할 거 아냐
새로 우리가 집을 구했지만 우리의 집이지만
도망치면 들킬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면 들킨다
도망치면 들킨다
이런 생각이 풀리지 않게 되었을 때
망치가 닳기 시작했다
믿음 조이기
잘 버티고 있다
그거 하나쯤이야
사는 데 문제없으므로
나를 버리고 싶은 생각을 겨우 참아본다
모든 사람을 지우고 싶은 날
조용히 운동장을 도세요
이런 생각은 그만 접어두자 말하며
이런 생각은 그만 잊어버리자 생각하며
운동장을 잊을 정도로 돌았다
잊으려 할수록 또렷해지면 대개 그 생각이다
그러면 주먹을 쥐었다
누군가 울면 따라 울 힘을 남긴 채
닿지도 않을 대답을 준비한다
날씨가 좋네요 날씨가 좋아요 같이 걸을까요 날씨가 좋아요
마주 오는 사람의 눈을 내가 먼저 보았다
두어번 주저앉았지만 일어나 마저 운동장을 돌기로 했다
생각 담그기
뼈 없이 붙는 살이 없듯
내가 먹은 게 나를 만들고 나를 담은 게 나를 말한다
물을 채우면 물병이 된다
이끼를 풀기 위해
비우고 채우고 있었다
물을 기르던 네가
꽉 쥔 주먹을 힘차게 던지고
가장 먼 물수제비를 본다
영영 찾기 힘들 것이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건
놓은 후에 잡고 싶어지니까
그래도 흘러가는 걸 잡고 싶다
내 앞에서 울던 때
처음 진심을 들키고 싶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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