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윌
그들은 녹스허스트의 한 건물 옥상에 모여서 폭발 장면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플랫 기숙사의 11층이었으리라. 그는 자존심이 센 만큼 최대한 높은 곳을 골랐을 테니까. 나는 그들이 폭발을 기다리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너무나 자주 상상했다. 6분이 남은 시각, 비스듬한 황혼빛이 대학의 높고 오래된 첨탑들과 그 주위 도시에 가지런히 늘어선 박공들을 붉게 물들이던 때. 그들은 커다란 유리잔에 축하의 와인을 따랐다. 손을 떨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는 흥청거리는 무리에서 떨어져, 옥상 왼편의 난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3분, 2분, 1분.
핍스 빌딩이 무너졌다. 연기가 신의 숨결처럼 솟아올랐다. 정적이 뒤따랐고, 승리감에 찬 무리의 함성이 이어졌다. 와인잔들이 부딪치며 전쟁의 빛을 번뜩였다. 그가 제자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합세했고. 카리용크기와 음정이 각각 다른 종들을 달아놓고 치는 타악기. 종들이 울렸고, 멀리서 새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커다란 소망처럼 하얗게 흩날렸다. 그때에야 존 릴은 그녀 옆으로 왔을 것이다. 맨발로 다가온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가 움찔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팔에 단단히 힘을 주고서 그녀에게 말하는 장면이 상상된다. 잘했다고,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행동해야 할 때가 올 거라고, 조금 더 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여기서부터 나는 상상이 잘 안 돼, 피비. 건물들이 무너졌잖아. 사람들이 죽었고. 예전에 너는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서 지금 난 노력하고 있어, 이렇게.
2
존 릴
대학 마지막 학기를 반쯤 남겨두고 녹스허스트를 떠난 존 릴은 이곳저곳 떠돌다가 중국 옌지에 이르렀다. 북한과 가까운 이 도시에서 그는 탈북자들을 서울의 보호소로 밀항시키는 활동을 하는 단체와 함께 일했다. 평생의 업을 찾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 요원들에게 납치당해 국경 너머로 이송되어 평양 외곽의 수용소에 처박혔다. 나중에 그가 모임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에 따르면, 강제 노동 수용소의 잔혹한 처우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경악스러웠던 점은 동료 수감자들이 자신들을 감옥에 집어넣은 정책을 만든 미치광이 폭군에게 보내는 충성심이었다. 그들이 투옥된 까닭은, 오, 신문에 실린 폭군의 사진에 차를 약간 엎질렀다거나, 휘파람으로 남한 가요를 흥얼거리다가 이웃에게 들켰다거나 하는 따위였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벌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친애하는 수령을, 그 신적 존재를 감히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솔직히 말하기 두려워서 빈말을 하는 것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옌지에서 만났던 탈북자들도 자신들이 도망친 나라의 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북한 체제의 문제들을 일으킨 장본인은 딱 한 명인데도 그들은 그 사람을 제외한 온갖 사람들에게 탓을 돌렸다.
존 릴이 수용소에서 지낸 지 한 달째에 죄수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도보 경주가 열렸다. 폭군의 성화를 끼운 액자가 포상으로 내걸렸다. 아수라장이 벌어진 가운데 사람들이 넘어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짓밟혔다. 한 아이는 척추가 부러져 죽고 말았다. 아이는 아파서 울부짖으면서도 자기 신을 향한 찬양을 외쳤다. 저 딱한 바보들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듯 폭군을 믿었다. 누군가의 지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수용소 안에서든 밖에서든 신앙을 갈구했다. 하물며 그 독재자가 자기 제자들이 믿는 만큼 올바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큰 것을 성취했을까. 만약 그가 그들을 사랑했다면…… 존 릴의 아이디어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3
피비
나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피비는 제자 모임에서 처음 고백하던 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만든 원 안에 앉아 새끼 염소 가죽으로 장정된 일기장을 들고 있었다. 피비를 차에 태워 여기로 데려다준 나는, 먼저 모임에서 나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실수였다. 그 자리에 머물렀어야 했는데.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묘사해보겠다. 침에 젖어 반질거리는 도톰한 입술. 긴장한 그녀는 입술을 핥았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려 애쓰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피비. 꽉 맞잡은 가늘고 긴 손가락들. 그녀는 시선을 떨구고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그 미래를 위해 노력하리라고 생각했죠. 아니, 그러고 싶었어요. 나는 은행에 현금을 맡기듯 피아노에 시간을 쏟아부었어요. 장래에 내가 열 독주회를, 내가 설 공연장을 그려봤어요. 신문 1면에 실릴 찬사도요. 나는 거실에 쏟아지는 황금빛 스포트라이트를 상상하며 리스트를 연습했어요. 사람의 기억은 반쯤 지어낸 거라지만, 지금 느끼기에 그때 나는 내가 자신하는 대로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린 시절 전부를 훈련하는 데에 바친 것 같아요.
트로피를 쌓아갔어요. 그래도 충분하지 않았죠. 선생님은 내가 틀린 건반을 누를 때마다 막대기로 손을 때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어요. 내 야심이 선생님보다 더 컸으니까요. 손이 부어올라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건반을 더 많이 짚을 수 있을 테니까요. 손마디가 빨개진 채 나는 다시 피아노를 쳤어요.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몇 년이 흘렀죠. 라이벌들의 목록을 만들었어요. 그들이 세운 업적을 나이순으로 정리한 목록요. 키엘은 다섯 살에 덴마크 왕 앞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더군요. 오흐리는 열한 살, 류는 열다섯 살에 카네기 홀에서 데뷔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피아노 독주자에게 가장 어려운 곡은 리비흐의 에튀드 5번이라고 말했어요. 최고의 피아니스트들도 그 곡을 소화하지 못했다고요. 나는 부랴부랴 그 곡의 악보를 구했어요. 그리고 몰래 혼자 연습했죠. 리비흐의 높은 트릴을 외웠어요. 격렬한 오스티나토일정한 음형을 같은 높이로 되풀이하는 주법.를 헤쳐 나갔고요.
*
언젠가 식탁에서 어머니가 내게 왜 혼자 미소 짓고 있느냐고 물었어요. 해진아, 라면서요.
나는 눈을 깜빡이고서 말했어요. 머릿속에서 리비흐가 울려서요. 나는……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어요. 괜찮아.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흰 복숭아를 깎았어요. 껍질이 한 줄로 돌돌 말린 채 떨어졌어요. 어머니가 그걸 주워 들더니 빛에 비춰보고는 말했어요. 색깔 참 진하다. 빛을 받으니 껍질이 분홍색을 띠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머니는 껍질을 도로 내려놨어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눈치였지만 나는 트릴 선율에 푹 빠져서 그럴 새가 없었어요. 나는 마지막 복숭아 조각을 입에 밀어 넣고 피아노로 돌아갔어요.
*
그때까지 연주한 어떤 곡도 내가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매혹적인 노래를 자아내지 못했어요. 그것은 내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이상이었어요. 내가 받아 온 최고상들은 내가 실패한 지점들을 가리키는 표시였죠. 리비흐를 칠 때는 덜 실패했어요. 그의 에튀드는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해서 때로는 ‘내’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어요. 그때 배웠어야 했어요. 연주라는 것은 자아가 없는 곳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리비흐의 곡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살아 있는 도관導管으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때 내가 연습한 것을 선생님에게 보여줬더니 그분이 경탄했어요. 자신이 바란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을 달성했다면서요. 선생님은 시市 대회에서 내가 치기로 되어 있던 곡을 바꿨어요. 그렇게 나는 공연장으로 향했죠. 차 안에서 리비흐를 연습하느라 다리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던 내 손가락들 위로 햇빛이 비쳤어요. 그 조명 속에서 주변의 차들이 내 이름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죠. 아지랑이가 번지는 L.A.의 느슨한 푸른빛이 지평선을 가렸어요. 마치 무대에서 올라가려 하는 막처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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