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 속에서
아빠가 괴물로 변했을 때, 카이라는 아홉 살이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아빠는 늘 그랬듯이 아침이면 출근을 했고,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귀가한 아빠에게 카이라는 캐치볼을 하자고 했다. 카이라는 그때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래, 하자’라는 대답은 갈수록 뜸해졌고, 결국에는 아예 끊기고 말았다.
아빠는 저녁 식탁 앞에 앉아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카이라가 이런저런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전에는 어떤 것을 물어봐도 늘 재미난 대답을 들려줬기 때문에 카이라는 아빠에게서 들은 농담을 친구들에게 써먹곤 했고, 그럴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영리한 사람은 바로 아빠라고 생각했다.
카이라는 아빠에게서 망치질을 제대로 하는 법과 줄자 쓰는 법, 톱질과 끌질의 요령 같은 것들을 배울 때가 정말로 즐거웠다. 딸이 나중에 커서 집 짓는 목수가 되고 싶다고 하면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아빠는 어느 시점부터 창고에 있는 작업장에 카이라를 데리고 가지 않았고, 왜 그러는지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그러던 아빠가 저녁에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엄마는 아빠에게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물었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듯 쳐다보고는 문을 닫고 떠났다. 아빠가 귀가할 무렵이면 카이라와 동생들은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지만, 카이라에게는 고함 소리가 들렸고 가끔은 뭐가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아빠를 보는 엄마의 눈빛에서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기 시작하자 카이라는 엄마를 도와 동생들을 재웠고,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침대를 정리했고, 음식 투정을 하지 않고 저녁을 깨끗이 먹어치웠고, 그 밖의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렇게 하면 현실이 바뀔 거라고,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으면서. 그러나 아빠는 카이라에게도 동생들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엄마를 벽에 밀쳤다. 카이라는 그 일이 일어난 부엌에 서 있다가 집이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는 뒤로 돌아서다가 그곳에 있는 카이라를 발견했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빠의 그 표정은 꼭 카이라를, 카이라 엄마를, 누구보다 아빠 자신을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한마디도 더 하지 않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엄마는 여행 가방에 짐을 꾸려 카이라와 동생들을 데리고 그날 저녁 할머니 댁으로 가서는, 그곳에서 다 함께 한 달 동안 지냈다. 카이라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전화선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묻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빠를 어떻게 한 거예요?
경찰관이 할머니 댁에 찾아와 엄마가 집에 있냐고 물었다. 카이라는 경찰관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엿들으려고 복도에 숨었다. 남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카이라는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고, 울음이 터진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었다.
카이라네 식구들이 돌아온 집에는 산더미 같은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의 군복은 개서 창고에 넣고, 아빠가 입던 평상복은 포장해서 기부할 준비를 하고, 집은 깨끗이 청소해서 팔려고 내놓아야 했다.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생각으로 준비하는 이사였다. 카이라는 반짝반짝 닦아서 상자에 가지런히 정리한 아빠의 훈장과 배지들을 살며시 만져보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아빠가 쓰던 옷장 서랍의 바닥에서 서류가 한 장 나왔다.
“그게 뭐예요?” 키이라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그 서류를 훑어보았다.
“아빠의 지휘관이 보낸 거야. 육군에 근무하는.” 엄마의 손이 떨렸다. “아빠가 죽인 사람이 몇 명인지 적혀 있어.”
엄마는 카이라에게 그 숫자를 보여 주었다. 1251명이었다.
그 숫자가 카이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치 그 숫자가 아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그 숫자가 아빠와 카이라네 식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는 것처럼.
차가운 늦가을 바람에 맞서 코트 앞자락을 바짝 여미며, 카이라는 걸음을 서둘렀다.
카이라는 대학 4학년이었고, 이 무렵 학교에서는 취업 설명회가 한창이었다. 카이라가 다니는 대학교는 역사가 오래돼서 붉은 벽돌 건물이 사방에 가득했고 그런 건물의 이름에는 이 나라가 세워지기도 전부터 부와 권세를 누린 여러 가문의 성이 들어갔는데, 이는 곧 고용주들이 이 학교 학생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이날 카이라는 요즘 졸업 예정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는 뉴욕 소재 소규모 알고리즘 트레이딩 회사의 파티에 갔다가 자취방이 있는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영 컨설팅이나 금융 서비스 업계의 기업들, 실리콘 밸리에 있는 기술 기업 등은 학교 근처 호텔에 방을 빌려 놓고 매일 밤 파티를 열어 앞날이 유망해 보이는 취업 지원자들을 초대했고,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카이라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인기 있는 구직자가 돼 있었다. 이날 저녁 카이라는 지원 대상 회사를 몇 군데로 좁힐 작정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회사들의 면접 기회를 따내기란 복권 당첨만큼이나 힘들기 때문에, 시도나마 해보려면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했다.
“잠시만요.” 젊은 남자가 카이라의 앞길을 막아섰다. “저희 청원에 서명 좀 해 주시겠어요?”
카이라는 남자가 내민 클립보드의 선전물을 내려다보았다.
전쟁을 멈춥시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은 전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의회는 선전포고를 한 적이 없고, 단지 대통령만 자기 직위의 고유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전쟁은 한시도 중단되지 않은 셈이었다. 미국은 전쟁터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갔다가, 언젠가 다시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아득히 먼 곳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갔다.
“미안해요.” 카이라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난 못해요.”
“전쟁에 찬성하는 쪽이세요?” 남자의 목소리에서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 믿기 힘들어 하는 표정은 거의 연기 같았다. 남자가 이 저녁에 혼자 서명을 받고 있는 까닭은 아무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잃는 미국인이 하도 적다 보니 ‘분쟁’이라는 말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은 전쟁의 정당성을 믿지 않는다고, 전쟁과 어떤 식으로도 관련되고 싶지 않다고, 그럼에도 남자가 내민 청원에 서명했다가는 자신이 기억 속의 아버지를 배신하는 느낌이 들 거라는, 아버지가 한 일은 잘못됐다는 선언처럼 느껴질 거라는 설명을, 카이라가 무슨 수로 그 남자에게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카이라는 이렇게만 말했다. “정치에는 관심 없어요.”
아파트로 돌아온 카이라는 코트를 벗고 텔레비전을 켰다.
…… 미국 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시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시위대는 미국에 드론 공습을 멈춰 달라고 요구합니다. 올해 들어 이러한 유형의 공격으로 이 나라에서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시위대에 따르면 사망자 대부분은 무고한 민간인입니다. 미국 대사는……
카이라는 텔레비전을 껐다. 기분이 엉망이었고, 그래서 면접 순위를 조정하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카이라는 심란해진 나머지 집 청소를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들을 지워 버리려고 개수대를 힘껏 닦았다.
나이를 먹어 가는 동안 카이라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드론 조종사들의 면담 자료를 모조리 찾아서 읽거나 시청했다. 그러면서 거기 나오는 남자들의 얼굴에 혹시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저는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게 유지되는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원격조종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보면서, 조이스틱으로 드론을 조종했습니다. 적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공격 여부를 결정하고 방아쇠를 당긴 다음, 카메라의 확대 기능을 이용해 표적의 여러 신체 부위가 사방으로 날아가고 아직 온전한 부위에서는 피가 흐르는 스크린 속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표적의 몸이 차게 식어서 더 이상 적외선 카메라의 영상으로 표시되지 않을 때까지요.
카이라는 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고 거기에 두 손을 갖다 댔다. 그렇게 하면 저녁마다 똑같은 모습으로 귀가하던 기억 속의 아버지가 지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하던, 퉁명스럽던, 그러다 차츰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 갔던 아버지가.
매번 같은 고민을 합니다. 내가 엉뚱한 사람을 죽이진 않았겠지? 그 남자가 맨 가방에 든 게 폭탄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고깃덩이였을까? 아까 그 남자들 셋은 매복 중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피곤해서 길가 바위의 그늘에 앉아 잠깐 쉰 걸까? 내가 죽인 사람은 수백 명, 수천 명인데, 이미 죽이고 나서 표적을 잘못 고른 걸 알 때도 있습니다. 그마저도 매번 알지 못하고요.
“아빠는 영웅이었어요.” 카이라는 젖은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마침 얼굴에 묻은 물이 뜨거웠기 때문에 뺨이 축축한 까닭은 다 수돗물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가능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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