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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열시 이십분은 수작을 부리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서른쌍의 남녀는 부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로 간이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구청 앞 광장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지나치게 밝아서 마주 앉은 사람들의 모공까지 세세히 비쳤다. 웬만한 미남 미녀가 아니고서는 모두를 몹쓸 낯짝으로 만들 햇살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열린 공간에 사방이 뻥 뚫린 간이천막을 설치한 걸까. 제대로 된 실내를 빌릴 수는 없었던 걸까. 서른쌍의 젊은 남녀는 후회가 막심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향해 눈빛을 쏘기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공무원이 너무 많았다. 가끔 카메라 셔터가 터지기도 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구청이 주최한 소개팅 행사에 참여했지만 그 높은 경쟁률이 문제였다. 예정된 팀이 많다며 아침부터 나오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날 하루 광장은 그런 일들로 굴러갈 터였다. 젊은 남녀가 열심히 만나고 부대끼고 헤어지는 일들 말이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진다면이를테면 결혼이, 인구증가 정책에 힘을 쏟는 지방 도시에서는 그들 남녀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할 것이다. 결혼식 보조금이라든가, 신혼집 전세대출, 주거지원비, 아기를 향한 질주를 독려할 출산 장려금, 난임이나 육아 지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온전히 혜택만을 위해 광장에 모인 건 아니었다. 그들이 걸어다니는 포궁과 정자 머신 취급에 개의치 않으며 그곳에 온 건 어떤 불안과 기대 때문이었다. 제때 연애와 결혼을 해내지 못하면 뒤처지고 말 거라는 두려움, 더는 혼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바람이 그곳에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아야 한다.
사회를 맡은 중년의 공무원이 시작을 알리고,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광장에 넘실대던 가능성이 급속히 쪼그라드는 시간이었다. 외모에서, 직업에서, 사는 동네에서, 나이에서, 부모님의 직업과 자산 규모에서, 자신을 소개하겠다고 나선 사람들과 그를 지켜보는 자들이 여러 파편으로 쪼개져나간다. 쪼개고 쪼개진 후에야 선택이 가능해진다. 어디든 똑같다. 자원이 많은 자에게 사람이 몰리고, 인기가 있는 자가 인기를 늘려갈 뿐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서로의 조건을 가늠한다고?
왜요, 결혼을 위한 만남 아니던가요?
사랑은, 대체 사랑은……
준비된 사람과 사랑하고 싶어요. (서로를 알아가는 데 에너지를 쏟기에 우리는 너무 지쳐 있다고요!) 저희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당신은 젊은데요.
시끄러워요. 젊음도 자원입니다.
하얀 픽업트럭이 어떻게 그곳에 왔는지 모르겠다. 트럭은 광장과 도로를 가르는 낮은 연석을 짓밟고 부드럽게 광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희고 거대한 천막을 향해 돌진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고, 젊은이들이 잔디밭과 시멘트 바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트럭은 천막 곁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던 어깨가 둥근 남자를 날려버린 채 계속 달렸다. 천막 안의 얇고 힘없는 탁자와 의자들이 부서지며 날아갔다. 모든 가능성이 무너져내렸다. 사회자가 트럭을 향해 마이크를 던졌으나 그것은 달리는 차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트럭은 광장을 가로질러 그 안쪽에 있던 인도까지 질주하더니 전신주를 들이받은 후에야 멈춰 섰다. 중년으로 보이는 트럭 안 운전자는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 역시도 소개팅에 나가고 싶었다. 신청서를 서른번이나 썼다. 그래서 이제는 소개팅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큰지 그러지 못한 분노가 큰지 가늠이 안 됐다. 운전자는 고개를 들어 인사이드미러를 응시했다. 그의 이마를 타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사고로 일대 이천여가구를 비롯해 상가 건물의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전봇대에 붙어 있던 전기개폐기가 부서지면서 일어난 혼란이었다. 피해는 인근 마을 복지회관과 그 내부의 수영장까지 번졌다. 25미터, 여섯개의 레인으로 이루어진 수영장에서는 백삼십명가량의 사람이 오전 강습을 받고 있었다. 수영장 실내가 갑작스럽게 깜깜해졌다. 참방거리는 소리, 작은 웅성거림. 수영을 하던 누군가는 멈춰 섰으며, 계속해서 물살을 가르던 누군가는 낯선 몸뚱이에 팔과 머리를 부딪쳤다. 그리고 몸서리. 멈춰버린 드라이어와 선풍기에 욕설을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몸으로 샤워장을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불가피한 충돌, 진정하라고 외치고 있으나 누구보다도 당황한 듯한 안전요원의 목소리, 익명성에 기대어 지르는 장난스러운 비명. 허인회는 그때 다이빙대에 있었다.
정전이 아니더라도 낯설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두번째 다이빙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앞뒤로 벌려선 무릎을 팽팽히 펴고 양손을 뻗어 모은 채 허리를 굽혔다. 다이빙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 자세로 몸을 물속에 쏙 집어넣을 줄 알아야 한다. 팔다리를 곧게 펴지 않으면 물의 저항력이 올라간다. 그럴 때 부딪치는 물의 표면은 벽같이 단단하다. 다이빙을 하다 멍이 들었다거나 물 따귀를 맞았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인회는 걸음마를 배울 때처럼 조심스럽게 양발의 거리를 넓혔다. 사소한 동작 하나를 자연스럽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이 거듭되어야 하나. 어쩌면 자연스러워지지 못한 채 끝이 날지도 모른다. 몸에 관한 한 늘 그랬으니까. 오십년 넘게 살았지만 인회에게 몸은 늘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어떤 것이었다. 동작을 의식하면 할수록, 몸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엇나가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어둠은 인회가 물속에 뛰어드려는 순간 찾아왔다.
날아오르는 순간 세상이 검게 변했다더라. 아니, 세상이 검게 변해 날아오르지도 못하고 곤두박질쳤다더라. 어, 어, 하는 찰나의 순간 허인회의 몸이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그녀의 발이 물속에 있는 누군가의 어깨에 걸렸다. 발목이 꺾였다. 검은 물이 허인회를 집어삼켰다. 숨 쉴 수 없는 통증이 번졌다. 구조 요청을 하기도 전에 물이 벌린 입안으로 울컥울컥 들어왔다. 수영을 배운 지 넉달이 되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수영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인회는 지지할 것을 찾아 급히 팔을 휘둘렀다. 잡히는 게 없었다. 발목 통증 때문에 몸을 바로 세울 수도 없었다. 사지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고개만 물 밖으로 빼려다보니 몸이 더 깊이 가라앉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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