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진溪鎭에 사는 그 사람은 완무당萬畝蕩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건 1,000여 무畝, 중국의 토지 면적 단위. 1무는 약 667제곱미터.에 이르는 비옥한 땅이었다. 강물 지류가 무성한 나무뿌리처럼 뻗어 있어서 그의 땅에서는 벼와 밀, 옥수수, 고구마, 면화, 유채꽃, 갈대, 풀은 물론 대나무 등 수목까지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1년 365일 내내 끊임없이 피고 지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가 운영하는 목공소도 명성이 자자했고, 온갖 제품을 만들어냈다. 침대와 탁자, 의자, 걸상, 옷장, 궤짝, 선반, 대야, 변기 등의 제품이 근방 100여 리의 집을 채웠고 혼례용 꽃가마와 장례용 관도 태평소의 연주 속에서 존재감을 선명히 드러냈다.
시진에서 선뎬沈店까지 육로로 가든 수로로 가든 린샹푸林祥褔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나 그를 대부호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한 북쪽 억양만이 그의 신상과 관련된 유일한 단서였기 때문에 북쪽에서 시진으로 내려왔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꽤 많은 사람이 17년 전 지독한 한파가 닥쳤을 때 그가 돌도 안 된 딸을 안고 눈 속에서 집집을 돌며 젖을 구걸하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거리를 천천히 지나가는 그의 모습은 우둔한 백곰 같았다.
당시 시진에서 젖먹이가 있던 여자들은 대부분 린샹푸를 만나보았다. 그때만 해도 아직 젊었던 여자들은 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그가 문을 두드렸다고 입을 모았다. 또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의 상황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손톱으로 두드리는 것처럼 문을 살며시 두드렸다가 잠시 쉬고 나서 다시 가볍게 두드렸다. 여자들은 그 피곤하고 지친 남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엽전 한 닢이 놓인 오른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거의 눈물이 쏟아질 듯한 두 눈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불쌍한 제 딸에게 젖 좀 먹여주십시오.”
그의 입술은 터진 감자 껍질처럼 갈라져 있었고 손도 얼었다가 터진 검붉은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집에 들어온 뒤에는 꼼짝도 안 하고 서 있었는데 인간 세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따뜻한 물을 건네면 그는 그제야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듯 감사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는 곧장 주저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선뎬”이라고만 대답했다. 그건 시진에서 북쪽으로 60리 떨어진, 수륙 교통의 중심지이자 시진보다 훨씬 번화한 또 다른 도시였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어투로 볼 때 훨씬 먼 북쪽에서 왔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밝히길 꺼렸고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남자들과 달리 아이 엄마를 더 궁금해한 시진의 여자들은 그에 관해 물었다. 그러면 린샹푸는 얼어붙은 시진의 풍경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는 질문 자체를 받은 적이 없다는 듯 입술을 꽉 다문 뒤 다시는 열지 않았다.
그게 바로 린샹푸가 사람들에게 남긴 첫인상이었다. 온몸에 눈을 뒤집어쓴 머리카락과 수염이 잔뜩 자란 남자, 수양버들 같은 겸손함과 들판 같은 과묵함을 가진 남자였다.
그런데 린샹푸가 엄동설한이 닥쳤을 때가 아니라 훨씬 더 일찍, 회오리바람이 불었을 때 시진에 나타났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었다. 천융량陳永良이었다. 당시 시진 시산西山의 금광에서 일했던 그는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직후의 새벽을 똑똑히 기억했다. 썰렁한 거리에서 외지인이 걸어올 때 천융량은 시산 쪽으로 가고 있었다. 회오리바람으로 인해 금광이 피해를 얼마나 입었는지 알아보러 가는 길이었다. 지붕이 날아간 자기 집을 나서자마자 천융량은 시진의 다른 집들도 전부 지붕이 날아간 걸 보았다. 좁은 골목과 밀집된 집들 덕분에 다행히 살아남은 나무들도 엄청난 충격에 이리저리 흔들려 잎사귀를 모두 잃은 상태였다. 나뭇잎까지 기왓장과 함께 회오리바람에 날아가면서 시진은 삭발당한 듯 대머리 마을이 되어버렸다.
바로 그 순간 린샹푸가 시진으로 들어왔다. 떠오르는 햇살을 마주해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아기를 안고 천융량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그때 린샹푸는 천융량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재난을 겪은 사람의 절망스러운 표정이 아니라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였다. 천융량이 다가가자 그가 걸음을 멈추고 강한 북쪽 말씨로 물었다.
“여기가 원청입니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명이라 천융량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시진입니다.”
그런 다음 천융량은 아기의 두 눈을 보았다. 외지 남자가 생각에 잠겨 “시진”이라고 되뇔 때 천융량은 그의 품 안에 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새까맣게 반짝이는 두 눈으로 신기하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고 그렇게 힘을 줘야만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듯 입을 힘껏 다물고 있었다.
린샹푸의 뒷모습은 천융량에게 커다란 봇짐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건 북방의 덜커덕거리는 베틀에서 짜낸 하얀색 거친 광목이지, 푸른 바탕에 무늬가 들어간 남방의 부드러운 옥양목이 아니었다. 하얀색 광목으로 둘둘 말린 봇짐은 이미 누르스름하고 곳곳에 얼룩이 가득했다. 천융량은 그렇게 큰 보따리를 생전 처음 보았다. 집을 통째로 담고 있는 듯한 봇짐이 북쪽 남자의 커다란 등에서 좌우로 흔들거렸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