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 가난
소리 쪽으로 기우는 일이 잦다
감각이 흐릿해지니 마음이 골똘해져서
나이가 들면서 왜 목청이 높아지는가 했더니
어머니 음식맛이 왜 짜지는가 했더니
뭔가 흐려지고 있는 거구나
애초엔 소리였겠으나 내게로 오는 사이
소리가 되지 못한 것들
되묻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표정과 눈빛에 집중을 한다
너무 일찍 온 귀의 가난으로
내가 조금은 자상해졌다
머뭇거릴 섭
창문에 빗방울이 지문을 찍는다
두드린 자국 자국 흙알갱이들이 엉킨다
마당귀 보리수나무 잎사귀와 잎사귀가
붙어 있다, 떨어진다
그때 반짝, 일어나는 빛이
박수 소리다
툇마루에 앉아 처마 끝에 맺힌 빗방울을
받아벅던 귀는 어디로 갔나
완주 구이九耳에서 ‘섭囁’ 자가 왔다
귀가 많고 입이 하나니 더 많이 들으라는 뜻이겠지
더 많이 머뭇거리라는 말씀이시겠지
보리수나무가 몸을 흔든다
뽈똥처럼 맺힌 빗방울이
마당으로 내려선 어깨를
제 이파리인 양 친다
멎은 비 온다 없는 귀를 찾아
오고 또 온다
저녁 숲의 눈동자
하늘보다 먼저 숲이 저문다
숲이 먼저 저물어
어두워오는 하늘을 더 오래 밝게 한다
숲속에 있으면 저녁은
시장한 잎벌레처럼 천창에 숭숭
구멍을 뚫어놓는다
밀생한 잎과 잎 사이에서
모눈종이처럼 빛나는 틈들,
하늘과 숲이 만나 뜨는
저 수만의 눈을 마주하기 위하여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저무는 하늘보다 더 깊이 저물어서
공작의 눈처럼 펼쳐지는 밤하늘
내가 어디서 이런 주목을 받았던가
저 숲에 누군가 있다
내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는 청설모나 물사슴,
아니 그 누구도 아니라면 어떠리
허공으로 사라진 산딸나무
꽃빛 같은 것이면 어떠리
저물고 저물어 모든 눈들을 마주하는
저녁 숲의 눈동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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