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은 왜
서울시 관악구 N동에 사는 김광석은 한밤중에 방바닥이 흔들흔들, 좌우로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비몽사몽간에 몸부림치다가 이부자리가 궤도에서 이탈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피곤한 탓인지 지진의 감각은 금방 사라졌고 그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간밤에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서울에서도 미약한 진도의 지진이 관측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2016년 9월 *일 첫 지진 체험 이후 김광석은 간헐적으로 지진을 경험했다. 정도는 심하지 않았고, 소담한 이층짜리 건물의 이층이라,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야밤의 여진은 평생 불면증을 모르고 살아온 김광석에게 수면 장애의 고통을 가르쳐주기에는 충분했다. 최근 들어 잠들기 힘든 날이 잦았다. 그때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살갗 위로 자잘한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동반되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발작이라도 난 듯 온몸이 움찔하며 통째로 위축되었다가 활시위를 튕겨 나간 활처럼 탁 펴지며 꼬꾸라지듯 잠들었다.
*
언제부터인가 낮에도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지축이 비틀거리고 땅바닥이 수면처럼 어른어른, 가볍게 요동쳤다. 다행히 도로 주행 수업 두 타임을 끝낸 뒤였다.
“이봐, 박현석 씨, 방금 땅 흔들렸어?”
“예? 멀쩡히 잘 있는 땅은 왜요?”
“나만 그런가? 요즘 지진이 자주 나서 그런가, 걸핏하면 땅이 흔들려.”
“지진 안 났어요. 형님,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얼른 병원 가봐요.”
젊은 동료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김광석은 계속 더 버텼다.
대낮의 지진이 두번째로 찾아온 것은 수업 중, 그것도 하필이면 장내의 기능 교육도 아니고 도로 주행 중일 때였다. 그날 김광석의 수강생은 중고생 아이 둘을 둔 중년 여성이었다. 남편이 최근 위암 수술을 받는 바람에 뒤늦게 면허를 따려는 것이었다. 워낙에 운동신경도 둔하고 방향감각도 없는 데다가 이런 정황과 자신의 나이에 위축돼 진도가 무척 느렸다. 학원 홈페이지에 쓰인 “현저한 운전 능력 부족”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였다. 기능 교육 시험에는 지난주에 합격했는데, 무려 스물두 시간의 수업을 들은 뒤였다. 이런 수강생의 첫 도로 주행 수업을 김광석이 맡은 것이다.
10월 말, 완연한 가을, 수강생을 태우고 과천으로 차를 몰았다. 화창한 날, 파란 하늘 위로 샛노란 낙엽, 새빨간 낙엽이 어지럽게 날렸다. 이 어지러운 질서정연함에 너무 혹한 건지, 김광석은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노면도 고른 편인데 차체도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한산한 거리 한쪽에 차를 세우고 간단한 설명을 한 다음 수강생을 운전석에 앉혔다. 쉰다섯 살의 아줌마, 이정미는 참 수다스러웠다.
“연례행사처럼 내시경을 했는데, 우리 남편 뱃속에 암 덩어리가 들어앉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차가 또 오른쪽으로 기울잖아요. 핸들은요, 계속 긴장하면서 조금씩 움직이셔야 해요.”
그녀의 핸들을 돌려주는 동안에도 김광석은 차체가 부들부들 떠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서는 빨강, 주황, 노랑이 메마른 낙엽의 형상을 한 채 현란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요?”
“그렇게 세게 돌리면 안 되고요, 살살요. 이제 차선 변경 한번 해봐요.”
김광석은 얼른 핸들을 돌려주었다. 그 이후 과천과학관 쪽으로 우회전할 때는 김광석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차체도 같이 요동쳤다. 순식간에 자잘한 벌레들이 전신의 살갗 위를 와르르 훑고 지나갔다. 누나의 외손녀가 보던 그림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개미핥기가 볼썽사납게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일사불란한게 움직이는 일개미 무리를 후루룩 집어삼키고 있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차는 학원 쪽으로 향했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졌다. 마침내 학원 입구, 시멘트 바닥의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여기서는 액셀을 조금 세게 밟아주세요.”
이정미의 ‘조금’에는 너무 힘이 들어갔고 차는 갑자기 위로 쑥 올라갔다. 조수석의 김광석이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바람에 차체가 앞으로 휙 쏠렸다. 전형적인 급정거에 차체가 박살 날 듯 진동하고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한꺼번에 확 쏟아졌다. 지진이다. 여진이 아니라 이제야 시작인 지진이다.
지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점심 메뉴로 나온 얼큰한 콩나물국밥은 맛있었다. 하지만 오후에 도로 주행 두 타임을 마친 직후 또다시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시작되었다. 전에 없던 증상도 나타났다. 귓속이 울린 것이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동안 채널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고장 난 기계음과 비슷한 울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려도 어떤 채널도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구원이라면 잠시나마 소음이 잦아들 때가 있다는 정도였다.
2016년 11월 *일 토요일, 전에 없이 지독한 지진을 경험한 다음 날 김광석은 병원에 갔다. 동네의 좀 큰 이비인후과였다. 비교적 이른 오전, 대기실과 진료실은 중년과 노년으로 가득했다. 기본적인 청력 검사에 이어 간단한 진료를 끝낸 의사는 냉정한 한마디를 던졌다. 문자 그대로 새파랗게 젊은 의사의 얼굴과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윤기가 흐르는 새카맣고 풍성한 머리카락만큼이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모르겠어요, 뭔지.”
“예?”
“진료의뢰서 써드릴 테니 큰 병원 가보세요.”
‘큰 병원’이라는 말에는 숫제 아연실색했다.
“저어기, 그럼 약도 안 주시나요?”
“원인을 모르겠으니까 약을 드릴 수가 없죠.”
김광석 뒤로 즐비하게 늘어선, 코와 귀와 목이 불편한 환자들이 쇠사슬을 만들었다. 김광석이 받은 ‘요양급여의뢰서’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상태: dizziness / not specific symptoms로 고진 선처 부탁드립니다.”
간호사에게 해석을 부탁하려다가 그냥 병원을 나왔다.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만은 이해가 되었다. 이 ‘이해’가 ‘오해’로 판명된 것은 한참 뒤 기어코 ‘큰 병원’을 가서 몇 가지 번거로운 검사를 받아본 이후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건만 증상은 더 심해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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