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내부의 이방인―국가 간 입양에 관한 보고서』를 읽은 후, 한국이 국가 간 입양을 통해 연간 1천5백만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물론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입양 보낼 아이들을 먼저 찾아나선다는 사실은 참을 수가 없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태생적 문화와 부모에게서 무작정 분리하기보다 그 부모와 가정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여자는 미국 입양기관인 국제홀트아동복지회에서 북한을 비롯해 아이들을 모집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는 소문에 화가 난다. 국제홀트아동복지회는 그간 불가리아, 중국,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아이티, 인도, 한국, 필리핀, 루마니아, 태국, 우간다, 우크라이나, 미국, 베트남 등지에서 입양할 아이들을 물색했다. 만약 북한 사회가 무너진다면 북한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국제홀트아동복지회가 북한 사회의 붕괴를 바라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북한을 거대하고 새로운 시장의 하나로 생각하니까.
여자는 오늘날 ‘아이들을 위해 부모를 찾아주는 일’보다 ‘부모들을 위해 아이를 찾아주는 일’이 더 우선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바로 그 때문에 소위 ‘어린이 수집가’라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던가.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 입양을 보내려는 부모들보다 훨씬 많지 않았더라면, 입양기관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큰돈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입양 보내기를 원하는 부모보다 입양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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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가 아이를 가질 수 없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부모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에게 화가 난다. 이다는 국가 간 입양에 관한 여자의 의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것일까? 여자가 『인포메이션』지에 기고했던 글을 보지 않았던 것일까?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가 여자의 기고문을 읽었던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자의 글은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여자는 자신의 기고문이 이다와 비야르케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그들의 결정에 동의하든 못하든 그것은 그들의 결정이다. 여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여자는 그들의 결정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화가 난다. 그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아이를 입양했던 또다른 부부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양실조에 걸린 채 입양되었던 아우구스트는 이제 그 나이대의 평균 체중을 유지한다고 했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가 아이들이 아프리카의 고아원에서 자라는 것보다 덴마크의 입양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훨씬 좋지 않냔며 백열일곱 번이나 물어봤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의 태도에 화가 난다. 그들은 국가 간 입양이라는 방법을 거치지 않으면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자랄 수밖에 없다는 듯 말한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가 자신들이 서구의 백인이라는 점에 전혀 비판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솔직히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세상의 어린이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에 시선을 돌려보기를 바란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에게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가? 진정 그들에게 이 특권을 남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단 말인가? 여자는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페이스북 친구 목록에서 그들을 삭제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여자를 분노케하는 이들과 굳이 친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분노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그들 부부가 불임치료를 몇 번이나 받아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화가 난다. 아마도 그들 부부는 스무 번 이상은 치료를 받아왔을 것이다. 치료를 받기 위해 쏟아부었던 돈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산업화가 되어버린 국가 간 입양 대신, 친부모가 아이를 직접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여자는 불임치료를 받은 후에도 임신을 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자살률이 그렇지 않은 여자들보다 두 배나 높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이 사실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이미 확인해보았다.
여자는 이다가 불임치료 후 임신 가능한 여자들보다 자살할 확률이 두 배나 높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가 다녔던 비도브레병원의 불임치료센터에서 국가 간 입양을 권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의사가 불임치료보다 국가 간 입양을 권장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들에게 국가 간 입양이 일종의 치료법으로 통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가 방문했던 사립 불임치료센터에 국가 간 입양 광고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불임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얼마든지 국가 간 입양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슬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화가 난다. 그 슬픔은 아이를 입양한다 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자 조 솔은 그의 저서에서 불임부부는 입양 절차를 밟기 전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를 진정한 ‘여자’로 취급하지 않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자를 진정한 ‘남자’로 취급하지 않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가 아이를 가지려고 너무나 오랫동안 노력해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38~39살은 첫아이를 가지기에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임신 가능성도 적어진다. 여자는 여자의 나이가 35살에 이르면 임신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여자는 여자의 임신 가능성이 35살 이후에 현저히 줄어든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싶어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싶어하는 이다와 비야르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이루는 가족을 선호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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