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따
PIRATA
죽었으나 화장되지 않는 자들의 혼령.
검정색 민소매 양옆으로 드러난 태경의 팔뚝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물기가 닿는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비가 쏟아지면서 시야가 흐려졌다. 바이크 속도를 늦춘 태경이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우기의 발리는 오후만 되면 스콜이 내렸지만 그래도 이른 시각이었다. 태경은 문을 닫은 길가의 노점으로 다가가 처마 밑에 바이크를 세웠다. 땅에 발을 딛자 플립플랍을 신은 맨발에 끈적끈적한 것이 밟혔다. 아래를 보니 검댕 같은 구정물이 상어 문양 타투를 새긴 왼쪽 종아리에 튀어 있었다.
까맣게 탄 피부 위로 색이 바랜 타투는 이곳에서 보낸 삼년을 새삼스레 일러주었다. 처마 밖으로 다리를 내밀어 구정물을 씻어낸 태경이 물기를 털어내고는 가게 문턱으로 갔다. 문턱을 깔고 앉아 바이크 좌측면 랙에 거치해둔 서핑보드를 바라봤다. 원래 타던 보드가 반파되었던 사고 이후, 서핑캠프 사장인 종민이 태경의 일년 근속을 기념하여 주문 제작해준 것이었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의 파도를 타면서 세계기록을 깬 브라질의 서퍼 마야 가베이라의 시그니처 모델을 카피한 하얀색 숏보드로, 보드를 바라보기만 해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던 때가 있었다.
매일 해도 매일 새로운 스포츠였다. 조금 탄다 싶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자연의 배 속으로 삼켜져 고배를 맛봐야 했다. 한계를 갱신하고 있다는 확신과 끝내 익숙해지지 못하리라는 감각이 평행하여 질주했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출렁이는 너울은 이 스포츠에 한번 빠져들면 외골수로 골몰하게 되는 수십가지 이유 중에서도 태경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스물여덟살이 되던 해인 2017년, 태경은 버킷리스트 중 한가지를 실행하기 위해 발리로 왔다. 처음에는 ‘퇴사 후 여행’이라는 청춘의 진부한 경로였을지 모르나 이후의 삶은 진부함과 거리가 멀었다. 생초보로 짱구시 교외의 민스서프에 온 태경은 단박에 이 스포츠에 매료됐다. 사지가 달린 고대의 고래가 바다로 들어가 다시는 뭍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현지인 인스트럭터가 밀어주는 보드 위에서 처음으로 물살을 갈라본 태경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현장 강습, 영상 리뷰, 지상 훈련으로 이어지는 민스서프의 강습 일정은 ‘발리의 태릉선수촌’이라 불릴 만큼 혹독했다. 한국인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빡셈을 좋아했는데 태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휴가지에서도 기꺼이 구슬땀을 흘리려는 손님들은 입소문을 따라 이곳을 찾았다. 그런 손님들 중에서도 가장 하드코어한 장기 강습생으로 반년을 지낸 태경은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자 아예 이곳 강사로 취직했다.
강사가 된 후에도 태경은 매일 바다로 나갔다. 강습을 하면서 태경 또한 그날그날 달라지는 파도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퀘스트를 뚫는 일을 낙으로 살았다. 그것만으로도 벅찬 하루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삶이었다. 다른 극한 스포츠처럼 서핑도 위험하리만치 중독성이 강한 운동이었다. 그 사고가 없었더라면 태경은 여전히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에 뇌를 절여 가며 바다 위를 헤매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사고는 2018년 10월의 어느 일요일에 벌어졌다. 그날 아침 태경은 울루와뚜 스폿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상급자 캠프생 대여섯명과 함께 종민을 따라 발리섬 남쪽으로 향했다. 주말은 강습일이 아니었지만 몸이 근질근질하기는 태경도 마찬가지였다. 서핑 고수들이 모이는 스폿이었기에 욕심도 났다.
울루와뚜 바다는 날카로운 산호초와 뾰족한 바위들이 즐비해 위험하기로 유명했다. 잘못 고꾸라지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곳이었다. 역설적으로 이 딱딱한 지형 덕분에 서핑에 안성맞춤인 파도가 컨베이어벨트에서 찍어낸 듯 항상 같은 지점에서 만들어졌는데, 서퍼들은 이런 지점을 ‘포인트브레이크’라 불렀다. 원숭이들이 노니는 절벽사원으로 유명한 울루와뚜 꼭대기서부터 아래로 하염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가 바다로 200미터가량 나가면 이런 포인트브레이크들은 일년간 서핑에 매진해온 태경의 실력으로도 파도를 잡을 만했다. 실력이 어떠하든 울루와뚜 같은 바다에 들어온 이상 어느 지점을 택하더라도 다른 서퍼들에게 자비심을 바라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1960년대 하와이에서 현대적인 서핑이 시작된 이래, 서퍼들은 이 스포츠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한 규칙들을 발달시켜왔다. 그중에서도 지난 수십년간 변함없이 제일 중요하게 지켜지는 규칙은 이것이다.
하나의 파도에는 한명만 타야 한다.
솟아오른 파도가 하얗게 깨지기 시작하는 부분. 서퍼들은 그곳을 ‘피크’라 부른다. 파도에 대한 우선권은 피크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가진다. 보드에 엎드려 팔을 젓는 동작인 ‘패들링’을 하면서 피크가 만들어져 파도를 타는 지점인 ‘라인업’까지 나간 서퍼들은 그곳에 둥둥 떠서 자기만의 파도를 기다린다. 그러다 먼바다에서부터 너울이 꿈틀대면, 피크를 먼저 잡기 위해 서퍼들은 앞다투어 너울을 등지고 미친 듯이 패들링을 한다. 보드의 꼬리 부분이 들리면서 머리부터 물에 처박힐 것만 같은 그때, 공포를 이기고 일어선 사람만이 파도의 주인이 된다.
이 규칙을 고의로 어기면 로컬서퍼들에게 찍혀 다시는 같은 해변에 발을 붙이지 못하기도 한다. 파도를 뺏긴 서퍼와 파도를 뺏은 서퍼가 잘잘못을 따지며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도 서핑으로 유명한 해변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뭍에서 관망하면 마냥 자유로워 보이는 이 스포츠는 사실 무척 엄격한 룰에 의해서 유지된다.
“인마! 너 거기 가면 모가지 따여!”
메인 구역으로 가고 싶어 하는 태경에게 종민이 경고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깡마른 몸에 파란색 반바지만 입은 종민이 숏보드 위에 앉아 누런 장발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파도에 휘말리면 몸을 둥글게 말아라. 어차피 몸은 뜬다. 파도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나오려고 애쓰지 마라. 물 밖으로 나올 때는 머리를 감싸라. 한번 시작하면 듣는 사람의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쏘아대는 종민의 잔소리에 태경이 역정을 냈다.
“쫌! 내가 무슨 초밥도 아니고!”
“뭐, 가고 싶음 가보든가. 너도 겪어봐야 늘지.”
종민이 다가오는 너울을 보면서 말했다. 바짝 다가오는 너울을 등지고 보드에 엎드린 종민이 팔을 세번 젓고는 테이크오프 동작을 취했다. 서핑보드 위로 일어서는 동작인 테이크오프를 위해 두 팔을 아래로 쭉 뻗어 보드를 지그시 누른 그가 피크 반대편인 왼쪽 면을 바라보며 머리를 치켜들었다. 종민의 시선을 따라 보드카 왼편으로 부드럽게 틀어졌다. 한쪽 무릎을 가슴팍으로 가져와 어깨너비 보폭으로 보드 위에 구부정하게 선 종민이 파도의 면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멀어졌다. 파도 보는 눈을 키워라. 올바른 정보를 숙지해라. 보기에만 그럴듯한 몸은 필요 없다. 정확한 근육을 발달시켜라. 자수성가한 한국 아저씨 특유의 앵앵거림은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타협 없는 운동철학만큼은 태경이 속 깊이 존경하는 부분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파도를 타는 종민을 지켜보던 태경은 보드를 돌려 메인 구역으로 향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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