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버지,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1979년 10월~1981년 2월)
1980년 4월 13일
아버지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버지 편지 받고 너무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어요. 저희는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세민이, 소영이, 영민이……. 저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요. 아버지도 건강 조심하세요. 아버지가 하신 말씀 잊지 않고, 따르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
이제는 완연히 봄인가 봐요. 집집마다 개나리꽃, 목련꽃이 활짝 피었어요. 조금 있으면 우리 집 뜰의 라일락도 귀엽게 피어나겠죠. 꽃 소식처럼 좋은 소식도 함께 왔으면 해요.
고등학교 생활은 그런대로 잘해 나가고 있어요. 3년만 공부하면 대학에 가게 돼요. 빨리빨리 세월이 흘러서 아버지를 만났으면 해요. 반드시 곧 그런 날이 오겠죠!
아버지께 이렇게 편지 쓰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아요. 갑자기 존댓말을 쓰니까 이상해져요. 아직도 철이 안 들었나 보죠.
그럼 아버지, 편지 또 할게요.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행운이 있기를 빌겠어요.
안녕히 계셔요.
소정이 올림
1980년 4월 16일
당신에게
여보, 미안합니다.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뛰었는데도 결과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해 면목이 없습니다.
마치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내린 듯한 이 현실이 제발 꿈이기를 빌어 보기도 합니다. 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당신의 운은 매우 좋으리라는 것과, 또한 주님의 은혜와 조상의 영검이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해 봅니다.
이젠 당신을 탓할 기력도 잃어버렸습니다. 참으로 부부란 어떤 것인지, 오십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야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내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접어 두시고, 주어진 운명을 우리 함께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자는 다짐을 새로 하도록 합시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가장 두려워하는 여건들만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느낌입니다. 늦게나마 삶을 다시 배우고 있는 걸까요? 어쨌건 하늘이 내게 주신 시련을 기꺼이 감당해 내야만 하겠지요.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재판이 있을 때마다 성당에 갔습니다. 당신이 연행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달려간 곳도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어질고 착하게 살아온 우리를 제발 저버리지 말아 달라고 천주님께 간곡히 애원하였답니다.
아이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아무래도 힘든 면이 있겠지요. 그래도 시간이 흘러가면 차츰 괜찮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깊고 현명한 아이들이니까요.
말씀하신 책 두 권을 내일 면회 때 차입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최선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보시고 싶은 책이나 부탁하실 게 있으면 무엇이건 일러 주세요. 그곳의 식사가 부실할 테니, 영치금으로 간식도 빠뜨리지 말고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오면, 밝은 태양 아래에서 맑은 공기를 접하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고 송구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담장 밖에서 가슴 벅차게 만날 환희의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믿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자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아내가
1980년 4월 23일
아버님께 올립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몸은 건강하신지요? 형과 누나들, 저희는 모두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에는 KBS 방송국에 가서 좌담회를 하고 왔습니다. 작은누나 못지않게 저도 잘했습니다. 출연료를 받아서 할아버지께 빵을 사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도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저는 요즘 어머니를 도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머니와 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무거운 것도 들어 드렸습니다. 순대도 사 먹었습니다. 누나에게는 비밀이지요.
아버지, 부디 건강에 유의하시어 뵈올 때까지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에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영민 올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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