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먼저,
제 이야기부터
들려드릴게요
저는 우울증을 20년간 앓은
경력자입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우울증으로 인한 공백기를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어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알바를 하고 이것저것 경력을 쌓았을 시기가 저에겐 거대한 공백으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안 하고 날린 시간이 아니에요. 끝없는 고통 속에서 죽음과 맞서 싸운 투쟁의 시간이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신체적인 병이라면 투병을 핑계로 댈 수 있겠지만 우울증은 그러기도 어려워요. 아직도 우울증은 입시에서든 취업에서든 터부시되는 병이니까요. 그래도 한 번쯤은 진짜 솔직한 이력서를 써 보고 싶었어요. 내 병이나 인생을 수치스러워하며 숨기는 대신 “나 이렇게 열심히 싸워 왔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죠.
제가 우울증을 앓았던 기간은 약 20년이에요. 초반엔 은둔형 외톨이 생활이 7년 정도 이어졌고, 자해 충동이 강했어요. 이후엔 뒤늦게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원에도 다녔는데 이때는 자해 대신 자살 충동이 수년간 계속되었죠.
우울증 증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시작되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계속되었던 왕따 문제로 학교를 다니는 게 힘들어졌거든요. 처음에는 혼자 공부를 계속하면서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죠. 그러나 학교를 그만두면서 급작스럽게 시작된 사회적 고립은 곧바로 감당할 수 없는 우울증으로 이어졌어요.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고, 친하지는 않아도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고,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는 일상의 틀은 정신 건강에 굉장히 중요한 거였어요. 이런 일상이 무너지자 정신도 같이 무너져 버렸죠.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이 무척 아프게 느껴졌어요. 친구들의 일상적인 안부 문자나 전화는 비수가 되어 제 등에 꽂혔죠. 그래서 휴대폰을 없앴고 누구와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어요. 결국 나중엔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말았죠.
심할 때는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증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었어요. 집중력, 기억력도 점점 약해져서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죠.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친구들이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계속해서 n수생으로 남아 있게 되었어요. 우울증이 계속되는 한 공부를 못 할 테니, 결국 수험생 생활이 끝날 가망도 없는 거였죠.
_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어요.
그때는 무기력이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저는 자신이 지독하게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를 혐오하기 시작했어요. 자기혐오가 심해질수록 우울증은 더 깊어졌고, 우울증이 깊어질수록 일상은 점점 더 무기력해졌죠. 이 끝없는 악순환 속에 저는 꼼짝없이 갇혀 버렸어요. 급기야 내 몸뚱이 또한 견딜 수 없어졌고 먹는 것도 죄스럽게 느껴졌죠. 어느 날은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어느 날은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결국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이나 다리를 칼로 긋는 자해 행동을 시작했죠. 하지만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자해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혼자 이불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오열했죠. 아마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읽고 저만큼 ‘아즈카반’이라는 감옥의 고통을 이해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우울증은 모든 희망을 삼켜 버리는 디멘터*와 같았으니까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생물체 중 하나. 원래 마법사들의 감옥 ‘아즈카반’의 간수였으나 나중에 죽음을 먹는 자들의 편으로 돌아선다. 절망, 슬픔, 고통 같은 부정적 감정의 집약체로 사람에서 희망과 행복한 감정들을 빨아들이고 절망만을 안겨 주는 존재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끔찍한 기억밖에 남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집 밖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계속되는 대입 실패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던 저는 대학만 가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혐오는 대학에 다니면서 더 심해졌어요. 선배들에게도 누나라고 불리는 신입생, 고등학교를 자퇴한 은둔형 외톨이, 남들보다 한참 부족한 사회성, 못난 외모, 어색한 옷차림 등등. 게다가 또래들이 졸업할 때쯤 입학하는 바람에 생긴 나이 문제는 평생 발목을 잡을 것만 같았죠.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뭉치자 열등감, 불안감, 죄책감, 수치심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어요.
은둔형 외톨이일 때 경험했던 자기혐오는 사실 실체가 없었는데, 이제는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근거들이 여러 개 생긴 거였죠. 현실 세계에서 제 인생은 한참 뒤쳐져 있었고, 이미 망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저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상대로 열등감을 느꼈어요. 내 존재가 부끄러웠고, 그래서 숨고 싶었고, 이미 망한 것이 분명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 같아 불행했죠. 그런 와중에 시험 기간이라도 닥치면 목을 맬 나무를 고르면서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었어요.
_남은 답은 자살밖에 없는 것 같았죠
이미 망해 버린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산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했어요. 그렇다고 망한 채로 비루한 삶을 연명하고 싶지도 않았죠. 죽고 싶지 않았지만 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인가부터 학교 가는 길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죠. 더 이상 길을 건널 때 주위를 확인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엔 자살할 장소와 방법, 날짜 등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기 시작했어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제가 자살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겠죠. 제 인생에서 자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그날, 저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자살 시도를 멈췄어요. 하나는, 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죽지 않고 살고 싶다는 제 마음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 때문이었어요.
자살한 부모님의 시신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저라면 죽고 싶을 것 같아요. 제 부모님도 마찬가지겠죠. 자살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걸, 제 부모님은 저의 시체를 보는 것보다 폐인이 된 저를 평생 부양하는 쪽을 택할 거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우울증의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나서 깨달은 이 사실들은 자살을 향한 제 의지를 완전히 꺾었어요. 물론 이후에도 자살 충동은 끊임없이 올라왔지만 변한 게 있었어요. 이제는 우울증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에 의미가 생겼죠. 우울증에 맞서서 고통을 참아 내는 매 순간, 저는 부모님을 살리고 있는 거였으니까요.
그 뒤로 2~3년간 저는 삶과 죽음 사이에 갇힌 채 그저 버티고만 있었어요. 자살 충동이 올라오면 계단 난간이든, 의자 팔걸이든, 내 손목이든, 꽉 붙들고 이를 악물었죠. 고통이 모든 감정을 말려 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울지도 못했어요. 죽음을 기다리는 말기 환자처럼, 당시에 전 한 줌 햇살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겨우 숨만 쉬고 있었어요.
자살은 가족에 대한
살인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일 거예요. 죽음 바로 앞에 서면 그동안 우울증이 씌워 놨던 막이 한순간에 벗겨지고 삶이 가진 아름다움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하죠. 자살할 날을 정해 놓고 이런저런 준비를 할 당시 저는 마치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은 심정이었어요.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한편으론 죽고 싶다는 마음 또한 너무 확고했죠. 우울증의 고통으로 제대로 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죽기로 한 날, 저는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가서 제 마음을 돌이켜 줄지도 모르는 책을 한 권 빌렸어요. 자살자의 유가족들이 쓴 책이었죠. 돌아오는 길엔 문구점에 들러 점토도 샀어요. 엄마를 위해 저를 닮은 인형을 만들어 남길 생각이었죠. 엄마는 제가 만든 건 뭐든 의미가 있다며 소중하게 간직하셨어요. 생일 때도 백화점에서 사 온 지갑이나 가방보다 제가 점토로 만든 펭귄이나 바느질로 만든 코끼리 인형 같은 것들을 더 좋아하셨죠. 엄마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될 텐데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저는 ‘저’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나를 닮은 인형을 보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었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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