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나멘
어두운 강의실에 앉아 그런 것을 떠올렸다
천 미터 상공에서 천 장의 종이를 뿌린 다음,
서로 겹쳐진 부분만 남긴다면
색색의 스프레이
분홍이나 파랑 초록 보라 빨강 빨강
포개진 영역만 표시한다면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내려다본다면
어떤 무늬일까?
우연을 실험하는 것
재미있지 않겠니
그런 생각을 했다
스물한 살의 여자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세계는 정방형의 빛이고
빛 속에는 어둠뿐이라서
벌어진 틈으로 잠깐 훔쳐본
돌 같은 것을 말한다
망가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찍어
가장 어두운 상자 속에 전시한다면
네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는 과정에 대한 작업
죽은 너의 살을 발라내 온몸의 뼈를 포개 쌓는 작업
죽은 연인을 가장 안전하게 만드는 공동생활
세계의 비밀에 가까워질 수도 없는데
끝없이 두들긴다
단단해질 것도 없는데 두들긴다
으스러질 때까지 두들긴다
단련…… 단련…… 단련……
유효할까
미치도록 아름다운
새가 될까
나는 어두운 바다를 앞에 두고 앉아
소리에 대해
소리를 만드는 힘에 대해
그걸 듣는 귀에 대해
멈춰 선 채 입술을 꿰맨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전부 겹쳐진 영역에 칠해진
색을 의미한다고 믿어
무늬와 무늬
네 꿈을 꾼 적은 없단다
네 꿈을 꾼다면
빨강뿐인 나무로 가득한 숲을 산책한다
네가 잊은 것들로 가득한 숲을
컨테이너가 산적한 부둣가처럼
어둠이 내리는 늦은 오후 창에 반사되는 아슬한 빛처럼
절박한 것이 전부 사라져서
이제 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쉽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죄를 지었다
안개로 향하는 긴 터널이었다
재미있지 않니
모든 여자가 스물한 살이었거나
스물한 살이 될 거라는 게
고통받을 거라는 게
보는 눈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생각을 한다
나는 생각을 한다는 말을 더 이상 적고 싶지 않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또 생각한다고 쓰고 말았구나 생각을 한다 생각을 한다는 생각을 생각 위에 생각을 생각 위에 생각을 돌처럼 돌을 본 눈처럼 검은 동자 속의 뿌연 상想을 하양 속 깊고 깊은 그림자를 그림자 속에서 호흡하는
집
섬
불
겹과 겁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실은 괜찮지 않아 미안해
그런 말을 했고
잠든 얼굴을 내내 바라보며
천 미터 상공에서 종이가 내려앉기까지의 시간
분포와 확률에 관한 예감
포개진 것들은 아름답고
경험
경험이 있습니다
경험을 주고 싶어
아름다움을 갖는 것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 것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
여러 개의 손으로
여러 개의 눈으로
어두운 시골 마을처럼
겹과 겁
겹과 겁
파도가 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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