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새긴 말
― 역자 후기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아랍권 전체에서 손꼽히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현대 아랍 시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거론된다. 영문 『팔레스타인』 현대문학선집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시인을 민족적 책무를 어깨에 진 영웅이자 해방자로 보는 옛 아랍 시의 입장과 가장 극명하게 결별했다. 개인적이고 고백적인, 거의 자기 비하에 가까운 시를 쓰는데, 그럼에도 그의 시에는 팔레스타인 민중과 함께하는 집단의식이 실려 있다.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1950년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에서 태어나 이라크 바그다드대학 아랍문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팔레스타인에서 이라크로 유학 가려고 국경을 넘을 때, 이스라엘 점령군은 그에게 단기 방문을 위해서라도 국경을 다시 넘어 들어오려면 2년 뒤의 특정 날짜에만 가능하다는 희한한 제한을 두었다. 2년 뒤 가난한 유학생인 그는 차표를 사기 힘들어 정해진 날짜보다 이틀 늦게 국경에 도착했고, 이스라엘 점령군은 그 이틀을 이유로 그때만이 아니라 무기한 그에게 국경을 닫아걸었다. 그가 다시 고향 땅을 밟기까지 25년이 걸렸다.
학업을 위해 집을 나섰던 청년은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키프로스, 튀니지 등을 난민으로 떠돌며 살다가 반백의 중년이 되어서야, 1993년 오슬로협정에 즈음하여 비로소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협정 체결의 공로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 라빈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기까지 했던 오슬로협정은 출발하자마자 좌초되었고, 팔레스타인에 환멸과 분노의 격랑이 일었다.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산문 「취한 새」, 「귀환」에 이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알 카멜』을 비롯한 아랍의 유수한 문예지들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해외 언론매체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고발하는 논평을 활발히 발표해왔다. 그런데 그의 예리한 붓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자살폭탄 공격 방식에 대한 반대도 분명히 했으므로, 그는 이슬람 율법회의에 회부되기도 했다. 2002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의 행정도시 라말라를 폭격하고 탱크로 유린할 당시, 그는 숨을 죄어오는 이스라엘군 수색조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양측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에 처해 있었다.
올해 2020년 초 그는 ‘마흐무드 다르위시 상’을 수상했다. 팔레스타인의 국민 시인이자 아랍을 대표하는 시인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를 기리는 이 상은 국적에 상관없이 인류의 문호 창달에 큰 기여를 한 인물들에게 수여되며, 올해의 공동 수상자는 미국의 사상가 노암 촘스키, 모로코의 시인이자 번역가 압델라디프 라비이다. 이 상의 운영위원회는 자카리아 무함마드를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는 한편으로는 아랍의 고전 문학과 옛 어휘에,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에 전해져온 이야기들에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생명 자체와 다양한 생명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도 관계가 깊다. 이 모두는 그의 시에 마치 예언자의 시대로부터 오는 듯한, 성가와 고대 찬가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목소리와 어조를 부여한다.
일단 그의 시에는 미사여구가 없다; 그것은 메시지로 승부를 보려는 언어이다. 방대한 상상력과 시적 이미지의 놀라운 뒤틀기와 뒤집기가 강점인데, 그러면서도 예언적 효력과 특별한 은유 감각을 견지한다. 이러한 언어는 한 이미지를 잘 다듬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작품의 모든 요소를 한데 묶어 전체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예술적 결과를 남긴다.
자카리아의 시는 시어를 되살린다. 매일 쓰이는 일상어이든 고전 어휘이든, 뜻밖의 중심적인 역할로 재활용되어 새로운 상징성을 낳는다. 그러므로 돌멩이, 개미, 흙, 낮과 밤, 대추야자나무, 까마귀, 양치기와 그의 지팡이, 그린게이지(개량 자두), 제리코(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에 있는 도시. BC9000년경부터 인간이 집단 거주했던 것으로 믿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해발 마이너스 258미터로 세계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낮은 도시이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 성’, 아랍어로는 달의 도시라는 뜻의 ‘아리하’), 시험산(예수가 40일 동안 이 산에서 마귀의 시험을 당했다고 한다) 등 흔히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들이 그의 시에서는 대단히 상징적이고 원초적인 느낌으로 변한다. 독자는 마치 아득한 옛날 지구에 첫발자국을 남긴 첫 번째 사나이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자카리아의 시는 독특한 존재론적, 실존적 차원을 얻는다. 거기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핵심이면서 전반적인 비유이기도 하다.
시로써, 특히 산문시로써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새로운 지평으로 도약했고, 가장 유명한 현대 아랍 시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출간한 여덟 권의 시집에 고루 발현된 시인으로서의 능력 말고도 그에게는 여러 능력이 있다. 그는 하는 일이 많은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소설 『텅 빈 눈』과 『시클라멘』을 썼고, 민담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최고의 어린이 책들도 썼다. 그는 뛰어난 수필가이자 언어, 신화, 민속 연구자이기도 하다. 또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항상 사회적인 활동에 깊이 발을 담갔고 용기 있게 발언해왔다. 그가 어느 정도로 용감한가 하면, 자기가 이미 의견을 표명한 사안에서 다른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는 그 사안을 재고하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소설 『텅 빈 눈』은 1996년에, 『시클라멘』은 2002년에 발간되었다. 시평집 『미나렛의 수탉―팔레스타인의 문화적 사회적 문제들에 관하여』는 2002년에, 『팔레스타인 문화에 대한 질문』은 2003년에 나왔다. 작가의 한국 방문기 「한국의 승려」는 이 책에 실린 「연꽃 먹는 사람들」과 같은 작품으로, 2006년에 팔레스타인과 우리나라 양쪽에서 아랍어와 우리말로 발표되었다. 나는 그 짧은 여행을 필자와 함께했던 일행의 일원으로서, 또 2006년의 우리말 번역자로서, 기쁘고 뿌듯한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산문을 이번 그의 시집을 위해 다시 번역했다.
시인과 나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한국작가회의’는 현지에 가서 전쟁에 반대하고 실상을 기록할 자원자를 구했고, 내가 가게 되어 이라크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급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라 아는 바도 별로 없이 팔레스타인에 도착하긴 했지만, 설사 정보가 많았다 한들 점령당함을, 그것도 땅만 필요하고 그 위의 인간들은 필요치 않은 종류의 점령을 당한 것을 직접 목격했을 때의 충격이 크게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자기 땅으로 선언하면서, 그 땅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국민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들일 뿐이었다.
팔레스타인을 떠나기 전날 자카리아 무함마드를 인터뷰하면서, 나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는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다. 이듬해 그는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행사의 초청 연사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발행한 여권으로 입국한 최초의 사례였다고 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소설가 아다니아 쉬블리, 나즈완 다르위시, 시인 타릭 함단, 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 키파엘 파니, 평론가 파크리 살레, 레바논의 소설가 알라위야 소브, 이라크의 소설가 알리 바드르 등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그가 첫 번째로 발을 디딘 이 길은 점차로 넓어져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 문학 행사에서 팔레스타인 작가를 만나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게 되었다.
그 자신 2018년 광주 ‘제2회 아시아 문학 페스티벌’을 비롯한 여러 행사에 참가해 아랍 문학과 신화를 깊이 있게 소개해왔으며, 앞에서 언급한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비롯하여 팔레스타인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의 교환 칼럼을 묶은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2009, 열린길의 편집자이자 주요 필자였고, 우리나라 시인들의 작품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아랍권에 소개하기도 했다. 아시아 대륙의 동단과 서단이라는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먼 양자 간의 정서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시민단체가 한때 활동했고 나도 회원이었는데, 그 보이지 않는 다리의 가장 중요한 교각은 자카리아 무함마드였다.
서양 언론은 대체로 이스라엘 쪽으로 편향되어 있으며, 주로 그런 기사를 번역하여 싣는 우리나라 언론 또한 그렇다. 그리고 보도의 내용 이전에 거기 쓰이는 단어들 자체가 이미 이스라엘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테면 주요하게 등장하는 ‘이스라엘 정착촌’이라는 말은 정착하는 사람들, 곧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입장에 맞춰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정착촌이라는 말이 부당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어디 빈 땅에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영역 안에 들어와서 일단 깃발부터 꽂고 나날이 규모를 늘려나가기 때문이다. 기존의 팔레스타인 마을들 사이에 끼어들어 팽창하면서 그들을 서로 단절시키고 각기 밀어내버린다. 어떤 팔레스타인 마을은 사방으로 이스라엘 정착촌에 둘러싸여 보복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은밀히 다니지 않는 한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상 남의 땅을 빼앗는 이런 행위를 ‘정착’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이 온당한가 하는 질문과 비슷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정착촌과 정착민들을 지칭하는 말은 따로 있다. ‘강도들’. 분쟁, 테러, 전쟁 등등, 국제 언론에서 팔레스타인과 관련하여 빈번히 사용하는 여러 단어들도 어떤 이들은 다른 말들로 대체한다. 점령, 저항, 학살…… 그들의 시각에서는 아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어느 화면이나 지면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2017년 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최대 이익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추구를 위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평화를 위한 조치”라며 반겼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세계 3대 유일신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국가의 영토도 아니건만,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평화를 위한다니 반어법에 가까웠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선언을 전쟁 선포로 받아들였고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듬해 5월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미국 대사관 개관식에 그 대통령의 딸이 직접 참석하여 아버지의 선언을 자랑스럽게 재선포한 날, 팔레스타인에서는 시위대를 향해 이스라엘군이 발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팔레스타인 당국에 따르면 그날 하루 동안의 사망자가 52명 부상자가 1,200명에 달한다.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전체, 우리나라 제주도를 세 개쯤 합친 크기의 땅을 온전히 둘러싼 8미터 높이의 시멘트 장벽에 이르면, 급기야 언어는 무화한다. 초현실주의 영화 같은 현실에서 언어가 증발되어버린다. 유엔은 일찍이 2004년에 이 분리장벽이 국제법에 위배된다며 해체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이스라엘도 장벽도 끄떡하지 않았다. 또 유엔은 팔레스타인 자치영역 안에 확산되는 이스라엘 정착촌의 불법성을 수차례 지적해왔고 2016년에는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도 채택했으나, 도리어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에 박차를 가했을뿐더러 이 땅들을 자국 영토로 합병할 계획을 세웠다. 2020년 8월 아랍에미레이트와 평화협약을 체결하느라 이 계획을 잠정적으로 중단하면서도, 네타냐후 총리는 계획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만약에 이 계획이 실행된다면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정착촌들 사이에 가느다란 파편들로 남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시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시와 시를 쓰는 일의 의미에 대해 어디서나 시인들은 고민하겠으나, 팔레스타인은 그 고민의 강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산문 「시와 토마토」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이 지난했던 고민의 궤적을 담백하게 요약한 후 시인은 이렇게 결론 맺는다.
시는 사회적 의미가 있습니다. 시는 작고 달콤한 과실입니다. 그러나 시는 과중한 짐을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짐을 지우면 시는 등뼈가 부러질 겁니다. 시는 섬세한 도자기처럼 깨지기 쉽습니다. 바로 그 연약함이 시의 강점입니다.
그러므로 시를 부러뜨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압박을 자제해야 합니다. 시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대상은 몇몇 사람에게 한정됩니다: 시의 영향은 눈에 띄지 않지만 깊습니다. 콕 집어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아랍 시가 말하듯이, “가장 단단한 바위 위를 개미들이 다니면서 새겨놓는 길”과 같습니다. 옛 경구처럼, 시의 맷돌은 느리게 돕니다:
신의 맷돌은 느리게 돌지만
아주 철저하게 간다.
언어도단의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더,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시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분투했다. 천천히 돌지만 철저하게 가는 시의 맷돌을 꾸준히 돌렸고, 가장 단단한 바위 위에 인간의 길을 집요하게 새겼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절규와 눈물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의 선입견을 그의 시는 아주 멀찍이 벗어난다. 간결하고 차분하다. 그런데 울림이 대단히 크다.
나는 내 시가 바닷속에서 폭발해서, 수면에는 단지 거품만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그 거품을 보고 독자들은 저 깊은 데에서 큰 폭발이 있었음을 알아챌 겁니다. 좋은 시는 독자들 앞에서 폭발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다른 산문 「연꽃 먹는 사람들」에는, 시인이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강연하는 장면이 있기도 하다. 그의 시는 때로 단 한두 줄이기도 하지만, 저 밑에 엄청난 폭발이 있다.
소년은 보았다.
검정말
이마에 흰 별 찍힌
검정말은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한 발을 땅에서 들었다.
이글대는 태양 아래
초원은 짙푸르고
말의 앞 갈기 아래
별은 하얗게 타올랐다.
말에게 굴레는 없고
입에 재갈도 물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말은 씹고
또 씹었다.
머리를 채면서
입술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도록.
소년은 놀랐다.
검정말이 뭘 씹고 있는 거지?
혼잣말로 물었다.
뭘씹지?
검정말은 씹고 있다.
기억의 재갈을
녹슬지 않는 강철로 만들어져
씹고 또 씹어야 할
죽을 때까지 씹어야 할
기억의 재갈을.
—「재갈」 전문
팔레스타인 문학을 간략히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가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이 시에 나오는 ‘검정말’을 이스라엘의 비유로 해석한 적이 있다. 검정말이 과거의 기억 속에만 있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재갈을 씹고 있듯이, 이스라엘은 과거 자신들이 당한 홀로코스트의 비극으로 오늘날 자기들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르는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 후 시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해석을 전하자 시인은 시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고 답하면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좀 더 이야기해보니, 시인 자신에게 검정말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상흔에 얽매인 모든 사람의 비유였다. 이스라엘인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일 수도 있고, 한국인일 수도 있고, 국적은 상관이 없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응시했고, 그의 시는 나의 섣부른 해석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고백하건대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를 읽고 번역하는 일은 내게 문학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인간과 인간 사회를 떠받친다고 믿어졌던 원칙들이 무너질 때, 현실이 너무나 무도해서 그런 것들은 말짱 다 거짓말처럼 보일 때, 그때도 그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문명의 빠진 주춧돌을 메울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카리아 무함마드가 시를 지키고 있는 것에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바위에 새겨진 전언과도 같은 그의 시가, 비록 번역의 한계가 뚜렷할지라도, 한국 독자들에게도 와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그의 여덟 권의 시집에서 시인이 스스로 뽑아준 것들이다. 현재의 두 배쯤의 분량에서 우리에게 보다 호소력이 있을 법한 시들을 내가 추렸고, 순서 또한 편집자와 내가 상의하여 이 책 나름의 흐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의 시들이 대개 제목이 없든지 있어도 ‘무제’인데, 우리에게는 그런 형식이 낯설기 때문에 시인을 설득하여 시의 첫 행으로 제목을 삼았다. 시 안의 단어를 제목으로 뽑는 경우에는 시인의 허락을 얻었다.
(중략)
내가 잠들면
내가 잠들면 오는 친구가 있어. 나는 묻지. “넌 어디에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사라져버렸어?” 그는 미소만 짓고 답하지 않아. 말 너머의 미소, 내 가슴이 따뜻해져.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는 그가 삼십 년 전에 죽었다는 걸 깨달아. 매번 그래. 매번 나는 그의 죽음을 새로이 알게 돼.
잠 속에는 죽은 사람이 없어. 거기에는 손실이 없어. 생시에 잃은 것을 잠 속에서 찾지. 그게 내가 잠자기를 즐기는 이유야. 어떤 이들은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듯이, 들에 나가듯이 잠자리에 들어.
강물처럼 내달리는 친구가 있어. 나는 둑에 서 있고 그는 아래에서 흐르지. 나는 그를 멈추게 할 수도, 그 안에 뛰어들어 헤엄칠 수도 없어.
“어디 가는 거야?” 나는 그에게 말해. “이리 와. 나와 함께 깨어나자. 이리 오라고!”
내 의식의 문턱 바로 밑으로 흐르게끔 진로를 바꾸라고. 하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아.
내 잠 속에 흐르는 큰 개울이 있어. 낮의 짧은 손은 그 물을 한 국자 떠서 내게 줄 수가 없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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