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방인 속의 이방인 - 엑스팻이 뉴욕을 만났을 때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는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 살던 미국인들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 중 주인공인 제이크 반즈Jake Barnes는 언론사 특파원이고, 그 밖에 창작의 자유를 찾아 미국을 떠나 파리로 온 작가 혹은 그저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영어로 엑스패트리어트Expatriate, 줄여서 엑스팻Expat이라고 한다. Ex는 ‘밖’이라는 뜻이고, Patria는 ‘조국’이다. ‘조국 밖’에 있는 사람이다. 꼭 이민자만이 아니라 국적은 조국의 국적이지만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는 사람들도 모두 포함한다.
나는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엑스팻으로 살았다. 학업을 위해 학생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처음 건너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산 것이 삼십 년이 훌쩍 넘었다. 전세계 인종들이 모여 산다는 뉴욕에 처음 발을 붙인 것도 삼십년이 되어 온다.
유학을 떠난 뒤 대학원 마치고 한 번, 로스쿨 마치고 한 번, 한국에 돌아와 병역도 필하고 직장도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살면서도 엑스팻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엑스팻으로 살다 보니 어디를 가도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학업을 위해 뉴욕시의 브롱크스로 이사했을 때 뉴욕이 나를 그리도 강렬히 끌어당겼는지 모를 일이다.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뉴욕에 이방인인 나는 강물에 떨어진 물방울 같기 때문이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수도 뉴욕
뉴욕은 도시명이기도 하지만 미국 연방 오십 개 주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뉴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 금융의 중심지, 자유의 여신상, 빌딩숲, 그중에서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의 단어들이다. 바로 뉴욕시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도 뉴욕시의 맨해튼을 떠올린다. 뉴욕시는 맨해튼Manhattan, 브루클린Brooklyn, 퀸스Queens, 브롱크스Bronx,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 등 다섯 개의 자치구5 Boroughs로 이루어졌다. 맨해튼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 제일의 도시라 자랑할 만하지만 실은 뉴욕시를 이루는 다섯 개의 자치구 가운데 하나이다. 맨해튼은 뉴욕시에 속한 구이고, 뉴욕시는 뉴욕주에 속한 시市이다.
뉴욕주는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보다 조금 작고 남한보다 크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현재의 뉴욕주는 맨해튼 고층 빌딩숲the Skyscrapers 네 배 높이의 얼음이 맨해튼까지 내려와 뒤덮고 있었다. 매머드, 늑대, 퓨마 등이 뛰어다녔고, 이로쿼이 원주민들이 대대로 살던 곳, 한때 ‘뉴 네덜란드’라 불리며 주의 많은 부분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곳이다. 현재 뉴욕주에는 이런 역사의 잔재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뉴욕주는 또다시 업스테이트Upstate와 다운스테이트Downstate로 나뉜다. 뉴욕주의 맨 남쪽 끝에 붙어 있는 뉴욕시와 그 근교를 제외한 모든 곳을 업스테이트 즉 주의 북부라고 부른다. 나는 대학원은 다운스테이트인 뉴욕시 브롱크스에서 다녔고, 로스쿨은 업스테이트인 시라큐스에서 다녔다. 지금도 시라큐스에 살고 있지만 나의 변호사로서의 대부분의 일은 맨해튼에서 벌어진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텍사스로 건너가 대학의 행사가 온 마을의 행사인 작고 조용한 고장에서 사년을 보내고 뉴욕시로 이사를 하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텍사스는 일년의 대부분이 찌는 듯 더운 날씨라 자가운전이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고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헌데 뉴욕에 오니 대도시답게 모두가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는 것이 인상 깊었다.
나도 대도시인 서울에서 나고 자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익숙했지만, 걷는 것은 그리 즐기지 않았다. 뉴욕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걷다 보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구경거리들에 심취해 나도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뉴욕시의 거리는 별별 건물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심지어 복잡하기 그지없는 브로드웨이 길 한복판에서 작은 양탄자를 깔고 기도를 바치는 이슬람교 신도도 봤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만 해도 뉴욕시는 범죄가 극심하고 위험한 지역이 많아 길을 잘 알고 다녀야 했다. 타임스 광장은 특히 우범 지역으로 해가 지면 기피해야 할 거리였다. 맨해튼 북쪽에 있는 클로이스터즈Cloisters라는 아름다운 박물관에 가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말고 환할 때 택시를 타고 다녀오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내가 다닌 포담 대학교Fordham University에 인접해 있던 남부 브롱크스South Bronx는 특히 험악하기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라 ‘어느 동네는 경찰을 불러도 아예 오지도 않는다’, ‘근처 지하철역이 미국 내 열세 번째로 살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역이다’라는 등 별별 소문이 흉흉했다. 저녁 늦게 대학원 수업이 끝나 혼자 밤길을 십오분 정도 걸어 아파트로 돌아가려면 늘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세계 제일의 가족 동반 관광지로 손꼽히는 근래의 뉴욕시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 시절 뉴욕은 그랬다.
하지만 그때도 뉴욕시는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수도였다. 뉴욕으로 이사해 한 달쯤 되었을까 한 어느 날, 나는 맨해튼의 66번가 링컨 센터 앞에서 지하철 1번 트레인을 타고 타임스광장인 42번가에서 내렸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로 가기 위해 맨해튼을 동서로 이어 주는 셔틀 트레인으로 갈아타야 했다. 역 환승 구역을 걸어가는데 한 재즈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몸집이 작은 소녀 같은 색소폰 플레이어가 앞으로 나와 신들린 듯 몸을 흔들며 애드리브로 솔로를 하기 시작했다. 그 소녀는 동양인이었다. 흑인과 동양인, 백인, 라티노 둥 온갖 인종이 모인 밴드였다. 신나는 음악에 취해 기차 놓치는 것도 잊고 보던 나는 ‘아, 이것이 뉴욕이다. 온갖 인종이 모여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곳’이라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그건 스물 몇 살 이상주의자가 단편적인 뉴욕의 모습을 보고 한 생각이었다. 현실은 그리 녹록하고 간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바로 그 순간 나는 뉴욕과 사랑에 빠졌다.
뉴욕시에서 이년을 살고 서울에 돌아와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이번에는 업스테이트의 시라큐스로 가 로스쿨과정을 시작했다. 원래 병역을 마치고 내 모교 포담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해 뉴욕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던 모교에서 내 응시 원서를 잃어버렸다. 결국 나와 수차례 국제 전화로 통화를 하며 사무실이 발칵 뒤집어진 뒤에 원서를 찾았지만 그때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학교 측에서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기다리다 그해 자리가 나지 않으면 다음해에 꼭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이미 시라큐스 법대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은 상태라 일년을 왜 허비하나 하는 생각으로 시라큐스로 진로를 정했다.
뉴욕주의 업스테이트와 다운스테이트
시라큐스는 스노우 벨트 안에 놓여 있다. 오대호Great Lakes 중 이 리호와 온타리오호가 업스테이트 뉴욕에 걸쳐 있어 그 영향으로 눈이 많이 온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강원도에는 눈이 많이 와 눈굴을 파고 다닌다고 들어 눈굴이 대체 뭘까 했는데 그 눈굴을 내가 파며 살게 되었다. 뉴욕시에, 사랑하는 포담으로 돌아가지 못해 시큰둥했던 나는 눈굴을 파가며 학교를 다니다 거의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다 학교 공부가 힘들 때면 차를 몰고 나가 이리저리 돌며 보니 차츰 눈에 들어오는 곳들이 생겼다. 업스테이트는 뉴욕시와 많이 달랐다. 시라큐스는 인구 60만 정도의 중소 도시로 대학이 여러 개 있어 비교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편이었지만, 조금만 운전을 하고 교외로 나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뉴욕시에 살다 업스테이트의 교외 시골길을 가는 것은 파리에 있다 남프랑스의 시골길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그런 정도의 차이였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뉴욕주가 낙농과 와인의 주라는 사실이었다. 맨해튼에서 기차를 타고 허드슨강을 따라 사십분 정도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금세 풍광이 바뀐다. 그래도 다운스테이트에 살 때는 뉴욕시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아 몰랐다. 시라큐스로 이사를 가서야 치즈와 요구르트를 만들고 와인이 익어가는 뉴욕을 새로 발견했다.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의 5부작 소설 『레더스타킹 이야기 Leatherstocking Tales』가 펼쳐지는 모호크 밸리 Mohawk Valley와 미국 인상주의 화풍의 전조인 허드슨 리버 스쿨Hudson River School이 탄생한 허드슨 밸리Hudson Valley 등 아름다운 자연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19세기 뉴욕의 찬란한 영광의 시작인 이리 운하는 시라큐스를 관통했다.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공원과 자전거 길이 되었다. 그 밖에 이로쿼이 원주민들의 유적, 네덜란드인들의 이름이 들어간 동네와 길 이름 등 역사와 문화와 자연이 곳곳에 숨어 있는 업스테이트는 뉴욕시의 왁자지껄했던 분위기와 또 다르게 나의 등줄기에 전극과도 같은 짜릿함을 흘려보낸다.
이제부터 나의 뉴욕주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려 한다. 여유로운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 뉴욕의 작은 마을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길게 머물며 천천히 그 마을의 분위기를 느끼고, 혹은 맨해튼의 휘황찬란한 거리로 나가 이방인 속에 나를 묻고 내가 이방인들의 이방인이 되어 크고, 작고, 일상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 삶의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이웃한 길이나 동네 이름에도 서로 다른 민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뉴욕을 업스테이트와 다운스테이트를 오가며, 현재와 과거를 자유로이 왕래하며 소개할 것이다. 이름 없는 고장에 찾아가 물어물어 구경하는 이야기도 적고, 주말에 장에 나가 동네 과수원에서 따온 딸기와 살구를 사다 잼을 만들고, 뒷마당에 심은 바질을 뜯어다 페스토 소스를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는 소소한 모습도 전할 것이다. 그러다 단골 식당 바에 앉아 나의 십년 지기 바텐더 저스틴이 가져다주는 와인을 마시며 그와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들도 적을 것이다.
인생은 여정이라 한다. 내 삼십년 엑스팻으로서의 여정을 축약하면 일주일 혹은 한달, 뉴욕의 한 도시에 머물며 엑스팻으로 살아보는 시도의 지침서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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