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랑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사람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 낭만적 사랑을 반성하는 문화비평가 로라 키프니스와 함께
2013년 여름의 어느날 내 세상을 통째로 뒤집어놓을 깨달음의 순간에 발을 빠뜨렸다. 그런날 이 오고 있을 줄은 몰랐다. 돌이켜보건대 그건 학부생들을 지도하여 종종 제임스 조이스나 플래너리 오코너식으로 단편에 짜넣어보라고 했던 종류의 에피파니* 같은 것이었다. 소설은 극적 효과를 위해 그런 경험을 강렬하게 그린다. 나 또한 소설에 그런 사건을 쓴 적이 있지만 그런 일이 현실의 삶에서도 그처럼 딱 떨어지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늘 판단을 미루어왔다. 종교적인 사람이었던 플래너리 오코너는 마음이 일종의 은총을 통해 곧잘 넘쳐흐를 수 있다고, 그 은총은 심오하고 새로운 이해들로 이어진다고, 그리고 언제든 그에 따라 삶이 바뀌기도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아마 그녀는 진정으로 그렇게 살았겠지만 나로서는 우리 대부분은 이렇다 할 은총 없이, 이따금 변화의 가능성을 본 것도 같아 긴가민가하면서도 충분한 통찰을 얻을 만큼의 시간과 주의는 거의 기울이지 못한 채 길을 더듬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epiphany. 기독교에서 신의 출현을 가리키는 말. 여기에서는 주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존재나 영원성 등에 대한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그리는 문학기법을 뜻한다.
그해는 평범하게 시작했다. 현대의 삶을 사는 수많은 우리가 익숙한 그대로, 끝날 기미 없이 바빴다. 일하는 양육자이자 중견급의 전문직. 무언가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언제나 일정을 마치면 다음 일정으로 달려갔고 늘 답해야 할 이메일이 쌓여 있었다. 또한 장거리 통근이라는 사서 하는 고생을 십년 넘게 하고 있었으며 집에서 미취학 아동을 공동양육하는 매일의 노동은 끝이 없고 힘에 부쳤다. 나는 지쳤었다. 이십년 된 파트너와의 관계 또한 색이 바랬다. 저녁에 집에서 함께 보내는 얼마 안되는 쉬는 시간에 그는 텔레비전을 봤다. 나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흘러갔다.
어느 아침, 박사과정 신입생들을 상대로 대학 관료제에서의 첫 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러 갔다가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들에게 환영사를 하고 내 순서를 소개하기 위해 연구학장이 와 있었다. 아마 여섯달쯤 됐을까, 새로 부임한 사람이었다. 나는 십오년째 같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몇가지 사소한 행정적 문제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었다. 예정된 시작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반쯤 들어찬 강당 구석에서 소곤거리며 그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볼 일정을 의논했다. 그리고는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에 학장과 나는 서로 그리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는 최근 들어 내가 참석하기 시작한 월례회의의 의장이었다. 우리는 업무 관련 문제들에 대해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친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다였다. 그날 아침엔, 짤막하게였지만, 둘 다 아는 어느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독해는 명민했고 조리있었으며 사려 깊었다. 그가 나를 향해 웃었을 때, 그가 가진 무언가가 나를 무장해제하는 게 느껴졌다. 겪어본 적 없는, 있을 법하지 않은, 전혀 기대해본 적 없는, 깊디깊은 친교의 가능성이었다.
*
세미나를 마친 후 다음 순서를 소개하는 학장을 두고 먼저 나와 늦여름 아침 속을 걸었다. 학기가 막 시작한 때였고 캠퍼스는 다음 강의나 면담에 가는 길을 찾는 중이거나 높다란 나무 아래 잔디밭에 모여 앉은 학부 신입생들로 붐볐다. 나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교직원 몇 명이 지나가며 고개인사를 했다. 나도 고개인사로 받았다.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했지만 무언가 분명 옳지 않았다. 두려웠다. 달떴다. 오직 위험한 앎만이 가져다주는 그런 현기증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그후로 며칠인지 몇주인지가 지나고 나는 학장에 대해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며 그를 생각했다. 밤에 어린 아들을 재우면서 그를 생각했다. 책을 읽어야 할 때에도 그를 생각했다. 그만 생각하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그리고는 실패를 즐겼다. 2월의 어느 아침, 이 문제에 대한 내 관점이 무너졌다. 충격이었다. 그 끌림은 그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지적인 것이었고 감정적인 것이었으며 깊숙이 인간적인 것이었다. 롤랑 바르뜨가 『사랑의 단상』1977이라는 훌륭한 글에서 아름답게 말했듯, 언어란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과하면서도 너무 모자란 매체이다. 나는 평행공간으로 흘러들어갔다 ― ‘잠들지 않으면서도, 잠의 영역’으로.
3월의 어느날 일정이 있어 운전을 하던 중 우연히 국영방송의 라디오 드라마를 들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던 중 화자는 상사를 사랑하는 어느 비서 캐릭터를 묘사했다. 배경은 1950년대였고 그녀의 상사는 결혼해 아이들이 있었다. 참을성 많은 이 여성은 독신으로 지냈다. 그녀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이윽고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이 의문의 남성과 삼십년째 일하고 있으며 솔직한 감정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시대의 여성들은 그랬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의 가슴 아픈 침묵은 사회적 관습에 대한 존중혹은 그것이 행하는 억압과 한데 얽혀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녀처럼 굴지는 않겠다.
동시에 내 고통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특히나 학장에게는 결코.
집에서는 애절한 눈빛을 하고서 오랜 시간을 보낸 파트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후 지난 이십년간 해온 모든 선택이 나를 이리로 이끌었다. 일, 대출금 상환, 운전, 가사노동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빤한, 조금은 지치는 일상사. 힘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내가 잘못된 이야기 속에 갇혀버린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결국은 사랑이 다야, 그렇잖아?
*
간통에 관한 로라 키프니스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이 늦여름의 에피파니보다 한해 전이었다. 그녀가 『비판연구』에 실은 ― 나중에 『사랑과 맞붙기』에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장이 된 ― 한 에세이는 실력 좋은 방해꾼으로서의 간통범이라는 유쾌하고 도발적인 주장을 편다. 간통이 정치적 행위냐는 질문에 키프니스가 생각 끝에 내리는 답은 딱 떨어지는 ‘예스!’다. 소리내어 웃어가며 이 에세이를 읽었기에 그녀의 책을 주문했다. 강고한 문화비판의 능력과 한데 어울린 키프니스의 다크 유머는 사태를 직시하게 하면서도 청량감이 있다. 그녀가 농담조로 무기의 정치적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 사실을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다시 한번 확실히 해두고 싶지만, 『사랑과 맞붙기』는 내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해 동안 느껴왔던 제약들의 여러 측면에 온전히 초점을 맞춰볼 수 있었다. 동거에 내재하는 복잡성과 모순에 대한 이 저자의 명확한 지적이 나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자아낼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로라 키프니스는 노스웨스턴대학교 시카고캠퍼스의 매체이론 교수인데, 뉴욕에 있는 집에서 여기로 통근한다. 그녀의 첫 번째 책은 잘 알려진 『묶이고 재갈 물린』1996으로 포르노그래피에 초점을 두고 있다. 후에 출간한 『스캔들이 되는 법』2010은 우리가 스캔들에 느끼는 문화적 매력에 주목하며, 최근작인 『원치 않는 진보』2017는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성적 공격의 정치학을 솔직하게 살펴본다. 키프니스의 글쓰기는 예리하고 장난기 어린 지성과 복잡하거나 역설적인 것에 대한 매료의 산물이다. 미대를 졸업한 그녀는 초기에는 영상작가로서 작업을 선보였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는 영화제작과 비판적 문화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중에는 오랫동안 열리고 있는 롤랑 바르뜨에 대한 강좌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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