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문득 옛날 영화를 다시 보고픈 그런 섬광과도 같은 순간이 있다. 우울한 일이 있어 혼자 술을 마신 오늘은 왠지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대만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허우 샤오시엔候孝賢, 1947~의 걸작 〈비정성시悲情城市〉가 바로 그 영화다. 내게는 ‘인생 영화’이기도 한 〈비정성시〉를 오랜만에 보며 이 에세이를 쓴다.
이 영화를 처음 만나던 서른 언저리의 푸르스름한 저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언어로 대체할 수 없는 먹먹한 감동, 아득한 잔향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도 이런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비정성시〉에 대한 아슴푸레한 기억이 이후에도 계속 마음에 남아 메아리쳤다.
제주4·3에 비견되는 대만 현대사의 최대 비극 2·28사건1947, 그 역사적 슬픔을 온몸으로 짊어진 가족사의 상처, 그토록 선연한 슬픔 속에서도 슬며시 싹트는 사랑, 혁명과 조국에 대한 의기와 헌신, 형제들의 커다란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지되는 살아남은 자의 견고한 일상, 대만의 관혼상제 풍습, 이 모든 사건을 무심히 바라보았을 지우펀의 바다……. 온전히 기억하고 싶은 장면 장면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아직도 눈에 밟히는 〈비정성시〉의 여러 장면 중에서 단 하나를 든다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 임가네 네 형제의 막내 문청이 연인 관미와 필담筆談을 통해 독일 가곡 ‘로렐라이’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몇 번이나 다시 봐도 너무나 애틋하고 아름답다. 관미가 눈짓과 손짓으로 부탁하자 문청은 축음기에 ‘로렐라이’ 음반을 건다. 영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여덟 살 때 귀머거리가 된 문청이 더 어릴 적 들었던 노래가 로렐라이였을까. 두 사람의 애절한 필담과 로렐라이의 선율이 마음에 번지는 그 3분여 시간을 나는 다른 영화의 어떤 매력적인 장면과도 바꿀 생각이 없다. 자연스레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장면을 이보다 탐미적으로,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장면은 대만 시국에 대한 친구들의 진지한 대화와 극적으로 대비되며, 사랑과 정치라는 영화의 이원적 주제를 자연스레 드러낸다. 문청 역을 맡은 청년 시절 량차오웨이梁朝偉, 양조위, 1962~의 풋풋한 연기는 이 영화를 더욱 마음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의 그토록 깊은 눈빛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허우 샤오시엔은 한 인터뷰에서 그 순간 왜 로렐라이였냐는 물음에 영화의 그 장면을 찍을 무렵 갑자기 생각나는 음악이 로렐라이였다고 답한 바 있다. 과연 그다운 선택이었다.
형제 중 막내인 문청의 순정한 마음, 저항의 길에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는 영화 내내 마음을 관통한다. 2·28사건이 터지며 군인들에게 끌려가 감옥에 갇혔던 문청은 가까스로 풀려난다. 나중에 그는 필담을 통해 감옥에서 총살당한 친구동지의 뜻을 전한다. “태어나며 조국을 이별했고, 죽어서 조국에 갑니다. 생사는 하늘에 달린 것, 슬퍼하지 마십시오.” 당시 수없이 희생당한 대만인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리라. 그 죽음이 문청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문청은 산에서 조직 활동을 펼치는 오랜 친구이자 관미의 오빠인 관영을 만나 “난 감옥에서 친구와 같은 길을 가기로 맹세했어. 그렇지 않으면 옛날처럼 생활할 수가 없어. 난 여기 있고 싶어. 너희가 하는 일을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라며 저항의 길에 동참하겠다는 의기義氣를 밝힌다. 하지만 결국 관영의 간절한 부탁으로 문청은 투쟁의 길을 포기하고 관미와 결혼한다. 평범한 사진사의 일상을 영위하며 관영의 투쟁을 틈틈이 재정적으로 후원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과 저항의 교직, 평범한 삶과 투쟁의 길의 대비가 영화를 수놓는다. 그사이에 간간이 등장하는 지우펀 바닷가 풍경은 그토록 슬픈 역사와 대비되는 변하지 않은 바다, 그 무심한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스토리는 점점 가혹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관영 일행은 군인들에게 연행되며, 문청 역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간다. 이 모든 비극은 편지에 의해 전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족사를 할퀸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식사 정경이다. 그 어떤 비극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들의 일상은 유지될 수밖에 없으리라. 네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셋째 문량그조차 미쳤지만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모습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통렬한 아이러니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비정성시〉를 관류하는 주제는 연애와 저항, 일상과 역사다. 이 영화를 통어하는 형식은 필담과 유서, 편지다. 특히 무성영화 기법에 가까운 ‘필담’의 제시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천지유정天地有情, 샤오시엔 감독이 좋아했던 표현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다. 나는 이 말을 변주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역사의 상흔이 깃들어 있다’라고 쓰고 싶다. 역사의 비극과 파고를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의 희생과 죽음, 저항, 순정, 사랑. 그 소용돌이에서 용케 살아남은 자들의 일상과 욕망. 〈비정성시〉는 바로 이 세계를 다룬 영화다. 이 애잔하기 그지없는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며, 모든 예술에 해당하겠지만, 영화 감상에 완성이나 끝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인생의 연륜,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해. 바로 그만큼 영화가 보일 테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영화에는 일본어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문청의 연인 관미도 때로 일본어를 구사한다. 해방 이후에도 대만 사람들에게 일본어가 매우 보편적인 언어였음을 알려준다. 일본 친구와의 기억을 아련하게 추억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특히 곧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일본인 친구 시즈코가 맡긴 기모노와 검, 전사한 시즈코 오빠의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관미의 태도가 극진하다. 시즈코는 관미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잊지 않기로 해요”라고 말한다. 그건 관미의 마음이기도 하리라. 영화는 같은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대만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감각과 정서는 우리와 꽤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전에는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던 대목이다.
해방과 친일, 한일관계를 둘러싼 격동의 시간이 전개되는 이즈음, 〈비정성시〉를 통해 한국사회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해방을 맞이하고 일본을 기억하는 대만의 역사와 슬픔, 그 섬세한 차이를 느껴보는 과정은 곧 이 땅의 역사를 온전히 인식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리라.
지금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이 걸작 영화 〈비정성시〉를 구하기 힘든 상태다. 내 판본도 아주 오래전에 지인을 통해 전해 받은 것이다. 누구나 〈비정성시〉를 쉽게 구해 그 깊은 전율을 느끼게 되면 좋겠다. 어느 푸르스름한 저녁에 〈비정성시〉를 보며, 문청의 깊은 눈빛, 로렐라이의 청아한 선율, 관미의 단아한 표정을 다시 내 마음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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