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하는가
─ 가정 폭력
이다혜
첫 영화는 「가스등」입니다. 1944년 작품이라 못 보신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최근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만은 많이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 기회를 빌려 전문가이신 이수정 박사님께 일단 가스라이팅이 무엇인가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지배력을 얻는 범죄
이수정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그 조작 대상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그렇게 의심을 하게 만든 자가 결국에는 그 대상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죠. 일조의 세뇌라고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합니다.
이다혜
세뇌라고 하면 흔히 ‘이걸 해라, 저걸 해라.’라고 직접 명시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생각하기 쉬운데,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도록 굉장히 교묘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인공 폴라의 남편인 앤턴의 이상한 행태, 정확하게는 범죄 행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신혼살림을 차린 부부, 앤턴과 폴라입니다. 앤턴은 런던의 광장 근처에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넌지시 암시하는 장소가 폴라의 이모가 살해된 집입니다. 폴라가 망설이자 앤턴은 ‘나 어릴 때 그런 데 살고 싶었어.’라면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앤턴은 마치 폴라가 결정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며 이모의 집으로 이사합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도입부 내용인데요. 이사 갈 집을 정하는 단계부터 이미 앤턴의 가스라이팅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수정
그렇게 볼 수 있죠. 그런데 앤턴이 폴라를 유인하고 회유하는 것은 분명 모종의 의도가 있기 때문이지만, 폴라의 성격적 특성도 상당 부분 일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폴라는 원래 성악가가 되고 싶어 했으나 성악가 되기를 포기합니다. 앤턴을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 앤턴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사는 곳까지 그의 주장대로 결정하게 됩니다.
오늘날엔 여성들이 주체성을 갖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지만 과거에는 이 영화에서 보듯 여성들이 자기주장을 펼치고 자유롭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적 이유로 인한 한계 또한 폴라로 하여금 앤턴의 주장에 쉽게 순응하도록 만들었다고 보입니다.
이다혜
영화 「가스등」 초반에 굉장히 재미있는 장면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폴라가 음악 교습을 받을 때 선생님한테 혼나는 대목입니다. 선생님은 폴라에게 ‘너는 생긴 건 이모랑 비슷한데 노래는 이모처럼 하지 못한다.’고 혼을 냅니다. 폴라가 생전에 뛰어난 가수였던 이모의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이런 상황이 폴라로 하여금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더 연마하거나 아예 다른 할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애정을 표하는 남자에게 쉽게 기대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포기한 상태에서 시작한다고나 할까요.
또 흥미로운 장면은, 폴라가 음악 교습을 그만두고 호수로 여행을 가는 부분입니다. 여행길에서 폴라의 옆자리에 말 많은 노부인이 앉는데, 이 부인이 갑자기 너무 재미있다는 듯 ‘어머머’하며 큰 소리를 냅니다.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는 거죠. 그 책 내용이 뭐냐 하면 어떤 남녀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지하실에 전 부인 여섯 명의 시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바로 『푸른 수염』의 줄거리입니다. 옆에 앉은 노부인이 『푸른 수염』을 읽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주인공이 남편 때문에 굉장히 공포스러운 일을 겪으리라는 복선으로 보이고, 그 때문에 이후의 일이 더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앤턴과 폴라가 런던 집을 함께 둘러보는 장면도 수상쩍습니다. 앤턴이 폴라에게 이모를 잊어버리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면서 이모의 물건을 모두 다락방에 넣고 문을 막아 버릴 것을 제안합니다. 앤턴의 제안에 대해 폴라는 잊어야 하는 건 사건이지 이모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앤턴이 그 말을 무시해 버리죠. 폴라의 말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앤턴의 태도 자체가 굉장히 분명한 메시지로 보입니다.
가스라이팅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 조건
이수정
가스라이팅이 실현되려면 몇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일단 조종 대상의 자존감이 높지 않아야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폴라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아마 그녀를 취약하게 만든 원인이 됐을 것입니다. 폴라가 본인의 커리어를 쉽게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로 보입니다.
또 다른 요건은 외부로부터의 차단입니다. 타인의 사고방식을 조종하려는 자들은 의심을 유발하는 외부 요인으로부터 조종 대상을 차단시킵니다. 이모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폴라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구금 상태, 감옥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폴라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만 앤턴 본인의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모의 집으로 들어가자는 제안에도 그런 의도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다혜
최근에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굉장히 여러 가지 맥락에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무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이래라저래라 행동을 조종하는 것까지 전부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단어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이수정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타인을 조종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조종을 당한 사람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혼란을 틈타 조종자가 조종 대상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게 됩니다.
이처럼 외부에서 가해지는 평가에 의해 자존감이 좌우되는 심리적 현상을 부르는 용어는 많습니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나 ‘낙인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같은 용어도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특히 교육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선생님이 학생에게 너는 재능이 있다 또는 없다, 이런 식으로 자꾸 말하면 결국 아이들의 성취도가 선생님의 말대로 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가스라이팅도 상당히 근접하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주변 사람, 타인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비판 의식이 살아 있는 상태라면 어떤 영향을 받아도 자존감을 포기하지 않지만, 비판 의식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조건, 예를 들어 사회적 격리의 상태라면 비록 부당한 영향력이라도 굴종하게 되고 맙니다. 굴종이 ‘결국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책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가스라이팅은 이런 과정을 총체적으로 이릅니다.
스톡홀름 증후군과 가스라이팅
이다혜
말씀하신 피그말리온 효과 등은 나이가 어리고 사회적으로 봤을 때 취약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되는 연령대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은데, 가스라이팅은 성인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 등이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영화 「가스등」에서 가스라이팅 범죄가 일어나는 방식은 이런 식입니다. 폴라는 이모가 살해되기 전에 받은 편지를 발견합니다. 그러자 남편 앤턴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면서 폴라를 몰아세웁니다. 알고 보니 이후에 밝혀지는 이모의 살해 사건과 관련 있는 편지였습니다.
영화에서 앤턴이 폴라를 길들이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남들이 있을 때는 굉장히 다정하다가도, 둘만 있을 때는 강압적이거나 거칠게 화를 낼 때도 있고, 그런 다음에는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랑한다며 사과합니다. 남편의 들쭉날쭉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폴라는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한테 실망을 주었나 자책하면서 자기 행동을 교정합니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서로 싸우거나 대화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폴라가 일방적으로 앤턴에게 맞춰 주며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거든요.
이수정
그런데 그게 사실은 가정 폭력의 본질입니다. 피해자가 점점 폭력에 노출되면서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 맹점입니다. 결국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러다 보니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의도만 중요하게 여긴 채 가해자가 제공하는 자원에 생사를 맡기게 되는 경우를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스톡홀름에서 일어난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질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은 특이한 경우였습니다. 그 같은 현상은 가장 배타적인 사회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폭력 행위자와 피해자 사이의 병적 집착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의 앤턴 역시 폴라와 둘만 있을 때 폴라에게 정신적인 폭력을 가하며 상대를 조종하고 위협합니다.
이다혜
최근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여기저기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가정 폭력의 경우에는 물리적인 폭력만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남편이 아내의 자존감을 계속 깎아내리는 관계일 때 그것 또한 가정 폭력 피해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것이 정말 폭력인가, 그냥 아내가 과민해서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아무 조치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피해자 스스로도 자신이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무서운 지점인 것 같아요.
이수정
그렇습니다. 한층 더 지능적인 가정 폭력 행위자들은 굳이 주먹질을 하지 않고도 상대를 완벽하게 정신적으로 조종하고 지배함으로써 얼마든지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합니다. 그렇게까지 되는 데는 물론 가부장적 사회라는 특성이 한몫을 합니다.
이 영화가 1944년작인데, 그 시절의 미국을 생각하면 여성들은 아무래도 사회 활동이나 경제적 활동을 하며 독립된 인생을 살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남자들과 혼인하여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사는 경우가 대다수였죠. 만약 그 당시의 여성들이 오늘날처럼 어렸을 때부터 주체성을 키우는 교육을 받고, 독립된 인생을 살거나 자신의 의사 결정권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며 살았다면 앤턴 같은 남자가 자신을 조종하려 할 때 그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 이모가 돌아가신 그 집에 내가 왜 들어가서 살아야 하느냐, 나는 그 집이 싫다, 이렇게 단호히 얘기하면 되는데, 폴라는 마음으로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모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이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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