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
우리가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농담
장의 한쪽 끝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소인 입이 있다. 그 반대쪽 끝에는 항문이 있다. … 이런 상황은 인간 생물학이 하는 지독한 농담 같다. 우리를 저 높은 곳에서 저 깊은 곳으로 끌어내려 어떤 황홀경에 휩싸이든지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똥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 같다. 똥이 웃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웃지 않았다가는 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프로이트는 항문이 생식기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사람이 겪는 노이로제의 모든 원인은 아니라고 해도 확실히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물론 요즘은 프로이트와 거리를 두며 ‘나는 그렇게까지 멀리 가지는 않을 거야’라거나 ‘프로이트는 정말 성에 집착했어’라고 말하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멀리 한번 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진실로 대부분의 인간은 성에 집착한다.
솔직히 말해서, 장은 골칫덩이다. 장이 하는 일은 ― 우리 몸의 내부 기관이 모두 그렇듯이 ― 신비롭고 당혹스러울 뿐 아니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다. 장이 상징하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프로이트의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의 한쪽 끝에는 여러 가지 다른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소인 입이 있다. 그 반대쪽 끝에는 항문이 있다. 항문은 썩은 냄새를 풍기고 더러우면 독한 방귀를 생산한다. 그뿐이 아니다. 역시나 냄새도 끔찍하고 질병도 유발하는 끈적끈적하고 지독한 갈색 오염물질인 똥도 만든다. 그 독한 물질은 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는 신체 기관 바로 옆에 있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신체 기관 옆에 있는 구멍으로 말이다. 이런 상황은 인간 생물학이 하는 지독한 농담 같다. 우리를 저 높은 곳에서 저 깊은 곳으로 끌어내려 어떤 황홀경에 휩싸이든지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똥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 같다. 똥이 웃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가 똥을 생각할 때마다 웃어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웃지 않았다가는 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죽음의 부정The Denial of Death』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는 항문과 그 항문이 생산하는 배설물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고 했다. 테러라고 했다. 항문과 변은 우리 살이 부패한 모습을,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보여준다. 아이는 스스로 이렇게 묻고 답할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일까? 나는 훌륭하고 극찬을 받고 건강하고 맛있고 형형색색이고 굉장한 음식을 먹는 존재야. 그런 음식을 먹은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똥으로 변하는 거지!” 매일 조금씩 부패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베커는 “항문과 항문이 만드는 이해할 수 없는 불쾌한 생산물은 물리적 결정론과 한계뿐 아니라, 육체를 가진 모든 존재의 숙명인 ‘부패와 죽음’을 나타낸다”라고 했다.
내 친구의 세 살짜리 딸이 어느 날, 자기가 먹은 음식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친구는 “몸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흡수하고 나머지는 똥이 되는 거야”라고 답해줬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아니야, 엄마. 아니야, 아니야!” 아이는 계속해서 아니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작가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도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Nothing to Be Frightened Of』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죽음 공포증’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같은 슬픔을 표현했다. 밤에 깨어난 반스는 “홀로, 오롯이 홀로, 주먹으로 베개를 치면서 ‘오, 안 돼, 오, 안 돼, 오, 안 된단 말이야!’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울부짖었다.” 똥은 죽음이다. 죽음은 심각한 일이다. 우리는 똥을 보며 웃는다. 똥은 너무나도 심각해서 절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입과 항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창자는 아름다움을 부패로, 군침 도는 식욕을 구역질로 바꾸어버린다.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몸과 맺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유산이 될 부패와 부식을 매일같이 경험한다. 몸은 신비롭다. 우리야말로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여기, 창자이다. 음식을 전혀 다른 형태로 바꿀 능력을 가진 우리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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