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국회에는 왜 바보들이 득실거릴까?
정치 혐오를 넘어
국민 스포츠란 무엇인가? 절대 다수의 국민이 몸소 즐기는 스포츠다. 그런 점에서 피겨스케이팅은 국민 스포츠가 아니다. 체조도 마찬가지고, 골프도 그렇다. 이런 분야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경만 할 뿐이다.
사람들이 때때로 직접 참여하고, 반복해서 익히고, 또 즐기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에 박수도 아끼지 않는다면, 비로소 ‘국민 스포츠’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물론 어떤 종목이 그 영예를 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팬심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포츠도 아니면서 이런 국민 스포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런 성격 때문에 국민 스포츠라고 불려도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는 분야가 있다. 바로 ‘정치인 욕하기’다.
정치인은 선출직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이다. 실제로 선출되면 국회의원 같은 공직을 맡는다. 그러니 이런 정치인을 욕한다는 것은, 특히 공직에 있는 정치인이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걸 신랄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얼핏 이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이 제대로 일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고 객관적인 사실이니 절대 다수의 국민이 제 입으로도 욕하고, 다른 사람의 욕에도 박수를 보내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잠시, 이것이 보여주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국회의원은 어떻게 선출되는가? 정치인들을 욕하고, 그에 대해 박수치는 사람들이 뽑는다. 예를 들어, 현재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보자.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해 이들의 능력이나 성품은 열등하다. 그렇다면 그들을 욕하고 박수치는 사람들이 몸소 선거에 나서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당선될 거고, 모든 정치는 곧바로 훌륭한 정치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몸소 선거에 나서지 않는가. 더러운 정치가들과 달리 깨끗한 사람인 자신이 나서면, 일심동체가 되어 같이 욕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유권자들이 당연히 뽑아줄 것이고, 국회에서 길이길이 빛날 업적을 쌓아 재선 가도를 달리면 서로 좋은 일 아닌가.
기탁금과 선거비용이 약간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당선되면 돌려받고 보전받을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국민 스포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그대로를 공약하고 실천한다면, 모든 국민들의 열망을 따른 것이므로 당선은 떼어놓은 당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지금의 기탁금 제도와 선거제도 때문에 제대로 일하지 않는 정치인이 당선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 제도의 문제 해결을 급선무로 지적하는 사람이야말로 우선적으로 선출될 것이고, 그렇게 선출된 사람들이 제도를 바꾸면, 그다음부터는 제대로 일할 사람들이 전혀 어려움 없이 선출될 수 있다. 따라서 두 단계가 필요하지만, 어쨌든 두 번의 선거만으로도 더 이상 정치인들을 욕하지 않아도 되는, 일 잘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진 적이 없다.
정치 혐오라는 국민 스포츠에 참가해 일심동체로 정치인을 욕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정치인을 욕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그것이 신기루에 불과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어 펼칠 정책에 대해 명료하고 분명하게 말할 경우, 그 정책 계획에 대한 전적인 찬동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익 갈등 상황이라는 정치의 전제 조건 때문이다. 국회의원 전체를 욕하는 데 자주 참가하는 사람들은 사인私人으로서, 주로 자신에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 되는 것만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구체적인 이익을 원하는 만큼 충족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욕하는 데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는 나의 이익과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자신의 이익과 갈등하는 이익을 원하는 사람들을 아예 무시하는 것 이외의 해결책은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한 이익갈등 상황을 상정조차 하지 않는다. 어렴풋이 갈등을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식해도, 그것은 결코 자신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평소 이런 식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명료하게 말했을 때, 그 정책 제안에 별 동의가 없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둘째, 같이 욕하던 사람들 가운데 누가 나와도 믿을 수가 없다. 막상 같이 욕하던 사람이 선출직 공무원이 되었을 때 과연 깨끗하고, 투명하고, ‘제대로 된’ 선정을 펼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나와도 뽑지 않는다. 자신이 나와도 뽑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즉 자신이 타인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처음부터 서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경기에 참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투표에 임하면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대면하는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 욕하기가 국민 스포츠라는 현실은 결국 하나의 궁극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즉 이 사회의 유권자 전반이 공민성公民性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통로가 지금의 대의제도에는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민성이란 국민의 권리 보장을 비롯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당한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와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공민성을 발휘할 통로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떻게 물갈이를 해도 공직자는 공민성의 견제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 욕하던 사람이 당선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민들이 공민성을 발휘하고, 그러한 공민성을 배경으로 정치인이 일하게끔 하는 명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다면 진정한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
의회가 비효율적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회가 왜 비효율적인지 물어봐야한다. 효율성이란 어떤 도구가 갖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능력이다. 의회의 경우는 각 국가의 공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따라서 의회의 비효율성을 운운하는 자는 무엇이 현재의 공공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지 명백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만일 어떤 나라에서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론상으로라도 명백히 설정해두지 않는다면 제도적인 도구의 비효율성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이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어서 이를 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의 무능함과 부당함에 대한 대처가 단지 국민 스포츠에 참가해 한마디 말을 보태는 것일 수는 없다. 아무리 말을 보태도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현상 유지에 기여한다.
첫째, 정치인 일반을 욕하기 때문에 공민성이 부재한 정치 상태를 바꾸려는 정치인 역시 싸잡아 매도된다. 그 때문에 기존 상태를 변화시키는 정치가 기존 상태를 유지하는 정치와 전혀 구별되지 않고 묻혀버린다.
둘째, 지금의 제도하에서도 특출한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정치인의 인적 속성만 비판하기 때문에 공민성을 발휘할 제도적인 통로가 없다는 문제는 직접 다루지 않는다. 즉 제도에 대한 사고, 시스템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정한 대처는 제도에 의해 시민의 공민성이 발휘되고 고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제도는 다음의 세 가지 기능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첫째, 정보가 부족하고 무지한 상태에서 견해를 묻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토론을 통해 그 내용을 충분히 심의한 시민의 견해가 힘을 가져야 한다.
둘째, 시민들은 적절한 공적 추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
셋째, 선출직 공무원들의 결정과 그것을 도출하는 토론 과정은 더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 전반을 시민이 충분히 심의한 견해와 견주어 평가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