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집
산토끼
내가 이 학교에 와 며칠 안 되었던 어느 날 어느 교실엘 들어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어줄 때 한구석에서 누구인지 “시인이야, 시인.” 하던 가느다란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머물러 있다.
내가 항상 시를 좋아하면서도 시인이라는 팻말을 내 목에 걸어주는 것이 얼마나 싫던지 그 학생의 한마디가 이제금 불쾌하다. 마치 제 집엔 한 번도 얻어먹으러 간 적이 없는 나에게 “거지야, 거지…….” 이렇게 당하는 것 같은 모욕감이 다항多含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진한 어린 학생의 한마디에도 그토록 감정이 예리해졌음은 다름이 아니다.
첫째로 “시인” 하면, 내 자각지심自覚之心에 나 같이 옷깃이 구주하고 한 가닥 가느다란 정서에도 목을 메꾸는 생활인인 줄만 아는 듯해서요, 둘째로는 40도 30도 못 되는 내가 벌써 한적한 전원만을 찾았대는 졸렬한 노퇴심老退心이 튀어나온 듯해서요. 셋째로는 경고硬固한 테두리에서 옴짝 못 하는 기성인의 그것에 닮아가고 있음을 말함인가 하는 공포에서였다. 확실히 이는 내가 아직 젊다는 자혈심自頁心에서이리라.
사랑하는 것이란 항상 멀리 떼어놓고 사랑하는 것이 나의 슬픈 버릇이어서 나는 시를 좋아하면서도 내 몸에 지닐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귀여운 것이 있어도 내 것으로 삼질 못하고 남의 것이 된 후에 후회하는 것이 일쑤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는 죽어도 아니다. 한 번도 시 때문에 사람을 희생하려 하지는 않았다. 사람 때문에 시의 희생은 수없이 하더라도…….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없고 시만 있는 고독은 시와 함께 그 고독도 싫다. 그 고독도 시도 사람이 있는 고독이고 사람이 있는 시여야만 한다.
그러나 시는 사람과 꼭 같이 존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곳엔 시도 낳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그래서 나는 도리어 시도 사람처럼 꼭 같이 사랑하게 된다.
좀 더 인생의 골수까지 파고드는 시좀 더 온 삭신이 약동하는 시좀 더 말하는 시
이러한 시에 대한 빈곤은 나에 대한 빈곤과 함께 시대의 빈곤이기도 하다. 좀 더 사람을 아끼고 좀 더 사랑해야 하는 내가 가벼운 낙엽 하나의 정방靜訪에도 흔들림은 너무 살 줄 모르는 나의 빈곤에서 그렇다고 하자.
내 지성知性이 빈곤하고, 지성을 키우는 아스팔트가 또한 빈곤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와 함께 빈곤한 시대는 가랑잎 한 장에도 우나 보다.
나도 그들의 이성과 그들의 빈곤을 닮아 그들이 걸어가는 파라사이트같은 입장을 탈출치 못한 채, 여러분의 시우詩友가 된다면 천운으로 여기겠다.
모두 마흔 포기를 채우지 못한 이 시집은 내가 먹고개[墨峴洞]에 와 살던 석 달 동안에 쓴 것이다. 충실히 쓰려고 애쓴 것도 아니요, 남에게 보이려고 한 짓은 더욱더 아닌 것이었기에 잘되고 못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저 여러분과 함께 살았다는 표적이나 할 양으로 엮었을 뿐이다.
Ⅰ은 싻좋은 너와 나의 학교를 세우며 노래하던 것이요, Ⅱ는 내 살던 먹고개를 읊은 것이오, Ⅲ은 나 자신의 생활에 대한 반성과 독설과 실망과 용망湧望이다.
이 시집에만 고착되어 날 평評일랑 말라, 그저 너와 함께 손등을 짓쳐가며 솔뿌리를 파내고 나무를 베어다 교실을 세워 화단도 만들고 토끼도 길러가며 시를 이야기하던 사람이거니, 이렇게만 여겨두라.
생전 처음으로 이것도 시집이라고 나와 함께 엮어보았던 학예부 제학생의 노고에 대한 사의는 이 책자가 내 옆에 있는 한 잊지 않겠다.
1955년 6월 30일
먹고개에서
― 『산토끼』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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