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967-1973
로맹 가리 지음, 크리스티나 비체프스카 옮김, 『하늘의 뿌리』
Romain Gary, Korzenie nieba, (trans.) Krystyna Byczewska,
Warszawa: PIW, 1967
『새벽의 약속』로맹 가리가 1970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은 책 주인에게 충성스런 책이 아니었다. 같은 책을 두 번이나 샀는데 두 번 다 잃어버렸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빌려줬는데 돌려받지 못했고, 두 번째는 확실치 않은 어떤 이유로 분실했다. 그래서 『하늘의 뿌리』를 구입하면서 앞으로 이 책이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했다. 무게가 꽤 나가는 커다란 판형의 책이니 아마도 책꽂이에 잘 꽂아두고 보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익숙해져버린 ‘구성상의 흡인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확실히 실험적인 산문은 아님에 틀림없다. 게다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서 동시에 정신적·물질적 특성이 온전히 결합된 총체로서 행동하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산문이라니. 그리고 그 총체는 스스로에게 사냥꾼들로부터 코끼리를 보호하라는 목표를 부여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그 목표를 실현해나가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은 채 철저히 혼자이다. 이처럼 순진무구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믿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질문 하나. 모렐Morel의 뒤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알고 보니 아무도 없었다. 질문 둘.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렐의 이타적이고 숭고한 광기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소설이 이토록 두꺼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모렐의 문제에 일반인들, 정치인들, 행정부처, 그리고 여론까지 개입한다. 저자는 주인공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물론 이 하늘의 뿌리들이 가진 힘은 바로 그 하늘의 뿌리가 실은 육지에 강하게 박혀 있고, 견고하게 얽혀 있다는 데서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나는 일부 지루한 전개를 곧바로 용서할 수 있었다.
응우옌 주 지음, 로만 코워니에츠키 옮김, 『연옥의 보석』
Nguyen Du, Klejnot z nefrytu, (trans.) Roman Koloniecki,
Warszawa: PAX, 1966
이 책의 원제는 『낌 방 끼에우Kim Van Kieu』이다. 베트남에서 민족의 걸작이자 위대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서사시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처럼 값지고 귀한 상품을 굳이 이렇게 과대 포장할 필요가 있을까. 출판사에서 홍보를 위해 이 베트남 서사시와 비교하고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 만약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이 작품을 『하녀의 오판誤判』과 같은 제목으로 소개했다면, 아마도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감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연옥의 보석』이라는 제목 대신 세 명의 주인공, 즉 심지가 굳은 낌Kim, 온화한 성품의 방Van, 그리고 아름답지만 불행했던 끼에우Kieu를 표지에 등장시키는 것이 마땅했으리라.
이 서사시는 중국의 연대기에서 그 배경을 가져와 베트남의 상황에 맞게 각색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내용이 다듬어지고, 심리학적으로 풍성해졌으며, 보다 심오한 도덕적 의미가 부여되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소설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 매우 이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비교적 사실적이 터치로 묘사되고 있는 세상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운명의 가혹한 장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성정은 변함없이 맑고 투명하다. 그리고 그 해맑음 속에 섬세한 감정이 담겨 있고, 수많은 망설임과 고뇌가 절묘하게 빛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사실 우리는 극동의 문학작품에 대해 너무나도 아는 게 없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해당 언어에서 직접 옮긴 번역서가 한 권도 없다는 사시이다. 이 번역본만 해도 프랑스어에서 중역重譯되었다. 외국어가 가진 고유한 스타일을 접목시키기가 유달리 어려운 바로 그 언어를 거쳐 폴란드어로 옮겨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전原典 고유의 형식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서문을 읽으며 더욱 아쉬움이 느껴진다.
알렉산데르 레르네트-홀레니아 지음, 에디 베르펠 옮김, 『모나리자』
Aleksander Lernet-Holenia, Mona Liza, (trans.) Eddy Werfel,
Warszawa: PIW, 1967
모나리자의 미소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는 지나칠 정도로 복잡한 일화를 고안해내고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 와중에 누군가 한 명은 광기에 휩싸인다. 레오나르도로 하여금 저 유명한 미소를 그리게끔 하기 위해 과연 이렇게나 많은 사건이 벌어져야만 했을까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창작의 비밀이란 실제로는 훨씬 단순한 반면 덜 감상적이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그 뒤의 다른 이야기들을 읽을 땐 거부감이 훨씬 덜했다. 성숙한 내레이션 기법으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연’과 그 ‘우연’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인생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불과 몇 분의 시간 차이로 수감된 사형수가 목숨을 건지기도 하고, 마라톤 전투의 전령은 마차를 몰던 마부와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바람에 죽음을 맞기도 한다. 만약 헬리오도로스가 발을 다치지 않았다면, 과연 은둔자가 되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19세기 사실주의자들이 예술적 의미 부여를 거부했던 포르투나Fortuna, 즉 눈먼 행운은 분명 존재한다. 결코 있음직하지 않은 것들이 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 「7월 20일」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우연들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한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뜻하지 않게 반反나치 항쟁에 가담하게 된 두 남녀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게 된다. 황급하게 도망치다가 구불구불한 미로에 들어가게 되는데, 결국 그 미로가 밖으로 나가는 탈출구였던 것이다. 그들의 이 예기치 않은 행운, 다시 말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세상의 법칙이 생각보다 훨씬 위협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일례가 아니었을까. “운이 좋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와 같은 표현들이 그저 단순한 농담에 그치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당시의 통계학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한 일종의 모험이 아니었을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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